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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Apr 04. 2023

19. 우박처럼 쏟아진 추억


걷기를 마치고 마을 구경을 위한 다시 한 번의 걷기가 시작됐다. 마을과 밖을 연결하는 다리. 다리 위에서 마을을 둘러보니 돌벽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고, 다리 아래에는 가지런히 심어진 나무들과 천이 흐르고 있었다. 시원하게 발이라도 담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물에 넣은 발은 침에라도 쏘인 듯 찡한 차가움으로 머리까지 쭈뼛하게 만들었다.  


“으악!” 비명과 함께 목도리도마뱀처럼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물을 빠져나왔지만 묘하게 중독되는 맛에 또다시 발을 담그러 들어갔다. 그리고 또다시 비명과 함께 오만 호들갑을 떨며 뛰쳐나왔으니, 인간이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이니……. 그리고 물이 있으면 자고로 물수제비 한번 떠줘야 하는 게 우리 시대의 감성이니(스페인 감성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맨들맨들하고 판판한 돌멩이를 골라 괜한 강물에 패대기를 쳐댔다. 


그렇게 특별할 건 없지만 재밌게 놀고 있는 와중에 긴 낚싯대에 방수 바지까지 입으신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안 그래도 “물고기 하나 없네?”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마치 “내가 그 물고기를 보여주지!”하고 나타난 가이드 같았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요란하게 놀아댔으니 물고기를 못 봤던 게 당연할지도). 할아버지는 모기 모양의 루어를 낚싯줄에 매달고 살살 흔들어 대다가 쭉 하니 낚싯줄을 뿌렸다. 그리곤 살살살살 줄을 감아 회수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그렇게 두 번을 연습 삼아 낚싯대를 던지곤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어 던진 낚싯대 끝이 거짓말처럼 파닥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와!!!” 찬물에 온몸을 담근 것처럼 요란스럽게 소리치는 우리 무리. 할아버지도 관객들의 반응이 꽤나 만족스러웠는지 잡은 물고기를 잡고 멋지게 포즈를 취하셨다. 그리고 고리에 걸린 물고기를 다시 물에 놓아주셨다. “우 와…….” 물고기가 할아버지의 기준보다 작아서일까? 아니면 애초에 ‘캐치 앤 릴리즈(catch and release)’를 즐기시는 걸까?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할아버지의 방생에 어린아이와 같은 여린 감탄사가 나왔다. 


그렇게 알차게 물놀이를 하던 중 스물스물 하늘을 뒤덮는 먹구름이 심상치 않아 알베르게로 돌아갔고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이에 서둘러 덜 마른 빨래를 안으로 들여놓았고 잠시 후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비. 따다다닥! 딱딱딱! 휴! 다행히 비가 오기 전에 빨래를…… 응? 평소 듣던 빗소리와 데시벨이 좀 다른데? 뭐지 하는 호기심에 창을 자세히 보니 우박이 내리는 게 아닌가? 오메! 이게 얼마만의 우박 구경인지. 스페인까지 와서 우박을 만날 줄은 몰랐지만, 오랜만의 우박이 반갑기도 무섭기도 했다. 


이후 주방에서는 우리 일행의 셰프 ‘준’동생이 만든 푸짐한 한상 음식과 더불어 오스피탈레로 아저씨가 나눠준 와인, 산티아고 복장으로 나타나 모두를 유쾌하게 웃게 해준 순례자, 옆 테이블 외국 일행의 노래까지. 쏟아지는 우박처럼 강렬한 추억거리로 한가득 채워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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