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같은 것을 먹다 보면 놀랍게도 며칠 만에 텔레파시 주파수가 맞춰지기도 한다. 이러한 텔레파시는 특히 맥주를 갈망하는 마음에서 자주 발현한다. “맥주야 뭐 맨날 먹고 싶은 거 아니야?”라고 할 수 있지만, 엄연히 맥주가 땡기는 타이밍이 존재하는 법! 왜 똑같이 더워도 어떨 땐 아이스크림, 어떨 땐 아이스 아메리카노, 어떨 땐 그냥 시원한 얼음물 한잔하고 싶을 때가 다 다르지 않은가?
길을 걷는 도중엔 한두 번, 혹은 아예 하루 일정을 끝내기 전까지 맥주를 마시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맥주가 땡기는 시점에 옆 일행을 슥 쳐다 보면 눈이 맞는다. “음, 너도?”, “응. 나도!” 그렇게 텔레파시를 따라 마주 앉아 맥주를 한잔하고 있노라면 상대에 대한 왠지 모를 애틋함이 샘솟는다.
텔레파시는 일 대 일이 아닌 일행 전체에 걸쳐 광역적으로 통하기도 한다. 일행들과 묵기로 약속한 ‘폰페라다(Ponferrada)’를 앞두고 마주한 ‘몰리나세카 (Molinaseca).’ 산에 둘러싸인 마을은 소박한 시골 냄새와 함께 고상한 휴양지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특히 커다란 돌다리 아래 흐르는 강이 압권이었는데, 당장에 배낭을 풀고 강물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
‘아…… 이를 어쩐다?’ 혼자라도 이 마을에서 묵어갈까 하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 마을의 마트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일행들을 발견했다. 다들 이 마을에서 묵기를 원했기에 길목에서 일행들을 하나하나 맞이하고 있던 것. 와우! 어떻게 이런 일이! 내 마음이 네 마음이고, 네 마음이 내 마음이었구나! 뜻하지 않은 이심전심에 일행들이 더욱 애틋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시원한 강물과 푸르른 산새, 커다란 돌다리를 바라보며 스페인 태양에 달궈진 뜨끈한 돌바닥에 누워 있으니 수박 한 조각 딱 먹으면 여한이 없겠다 싶었다. 이심전심으로 얻은 행복의 시간은 매우 만족! 별 다섯 개짜리였다.
텔레파시에 점점 익숙해지다 보면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하는데, 길을 끝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마지막으로 '리디아'를 만나 인사를 하고 선물을 주고 싶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 텔라는 큰 도시였고 사람들도 많았기에 사실 연락 없이 리디아를 만나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하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에 무작정 거리로 나갔고 식당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는 리디아를 만났다. 그리고 내가 달고 다니던 가리비 중 하나(이전에 꼬마 소녀에게 샀던 무지개 가리비)를 선물했다. 마치 약속하고 만난 것처럼 자연스레 다가온 나를 반기면서도 신기해하던 리디아였다.
이렇게 텔레파시는 유용한 마법과도 같으며 서로의 애정을 더욱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텔레파시가 통하는 날이면 왠지 모두가 같은 꿈을 꿀 것만 같은, 그런 밤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