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서, 혹은 걷다가 지쳐 잠시 쉬고 싶을 때 들르는 성당. 순례길 중 방문한 성당은 포근한 쉼터이자 돌풍에 어지러진 마당처럼 난잡해진 머리를 정화하는 공간이었다. 무교인 내가 이렇게 자주 성당을 방문할 일이 또 있을까? 아마 내 평생의 성당 방문을 이 길에서 다 채우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팔자에 없던 성당을 방문하다 보니, 스페인의 성당은 참으로 묘한, 이중의 분위기를 가진 장소라 생각됐다. 화려함과 순박함, 아늑함과 차가움, 친근감과 낯섦. 이 상반되는 아우라의 파장이 성당 전체를 조이고 있었다. 정말 작은 마을의 성당까지도 금박으로 장식한 제단 정면과 성당을 에두른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화려함과 위용을 뽐내지만, 칸칸이 줄지은 나무 의자와 테이블 및 회색벽의 내부 인테리어는 소박함을 보인다.
이러한 공간의 간극 때문인지는 몰라도 좌석에 앉아 있노라면 강한 존재로부터 보호받는 느낌과 동시에 우러 러보는 추앙심이 들게 한다. 아늑한 성당은 조용하지만,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감으면 조용함을 넘어 고요가 몸을 채우고 차가운 물 속에 잠수한 듯 서늘함을 느끼기도 한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성당은 언제나 눈치 없이 들어서 다리를 쉬이고 눈을 감고 기도하는 편안함을 주면서도, 신을 섬기는 장소라는 공간의 본질적 목적에서 오는 거리감도 받게 된다(내가 무교이기에 종교시설이 낯설어 그런지는 몰라도).
이처럼 마치 “나를 정의하는 것을 부정한다!”라는 느낌을 받을 만큼 뭐라 콕 집어 말하기 힘든 공간이지만, 세월의 힘으로 이 모든 게 하나로 어우러지지 않았나 싶다. 오래된 공간이 갖는 서로 다른 피사체의 융화. 세월의 붓질로 뭉개진 공간. 정말이지 성당에 들어서면 나 같은 무교인도 절로 기도 한번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실로 난 수많은 기도를 했다. 미사 전의 빈 성당에 들어서 홀로 앉아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면 머릿속의 생각들이 술술 대화하듯 쏟아져 나왔다.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해달라고, 가족 모두가 건강히 지내게 해달라고, 나의 길을 찾게 해달라고 빌기도 했으며, 지난날의 후회를 털어놓으며 한풀이하기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성당은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충전의 공간이자 무교인인 나의 일탈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