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km.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출발해 ‘묵시아 (Muxía)’를 지나 ‘피스테라(Fisterra)’에 도착했다. ‘세상의 끝’이라는 별칭에 걸 맞게 바다를 마주한 절벽엔 일몰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세상의 끝에서 보는 일몰이라. 해가 바다에 떨어져 사라짐과 동시에 이 세상도 번쩍하고 사라지는 건 아닐까? 아니면 일몰을 바라본 우리만이 사라지는 걸까? 당연하게도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시간, 함께한 사람들, 지나온 길이 주마등처럼 스쳤을 뿐이다. 누군가 세상의 끝에 도달한 기분에 대해 묻는다면 난 뭐라고 대답할까? 대답에 앞서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뇌며 한동안 사색에 잠겼다가 먼 곳을 응시하며 자본주의의 폐해와 기아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세계평화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득도의 경지에 이른 자로서의 깨달음에 대해 설파할까? 물론 이따위(?) 대답은 하지 않을 것이며 마땅한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세계의 끝은 그저 육지와 바다가 마주한 해안이었으며, 비석에 새겨진 '0'이라는 숫자 역시 끝도 시작도 아닌 앞뒤로 도열한 무수한 수 중에 그저 하나일 뿐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나 역시 그랬다. 지금까지 한 여행에 대한 기억과 남은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 약간의 두려움까지.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간처럼 나 역시 끝이라는 마침표를 찍기엔 너무 젊었다. 앞으로도 이 길에서 쌓은 좋은 추억처럼 수많은 경험과 사람들도 알찬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길을 걷고 있는 모두들, 부엔 까미노(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