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무환有備無患.
아는 것이 힘이고,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했거늘. 역시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옛말마저 딱 맞다 생각이 드니…… 조사와 정보, 계획 없이 길을 시작한 내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막판에 근심, 걱정, 고통을 선사했다. 사실 애초 정상적인 페이스를 유지했으면 큰 근심 없이 그냥 보통의 고통(?) 정도만으로 길을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건 정보로부터 시작됐다.
물론 정보는 유익하다만 문제는 그 정보를 늦게 알았다는 것. 그 정보는 바로 ‘성 야고보’, 바로 ‘산티아고 성인’의 축일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모든 순례자들이 축제날인 7월 25일 혹은 전야제가 있는 24일에 맞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입성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고, 원래라면 조금 더 늦게 도착했어야 할 내 일정 역시 축제라는 달콤한 유혹의 끌림과 함께 순례자 무리의 흐름에 휩쓸려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원래 계획보다(애초에 없다시피 했지만) 앞당겨진 D-day에 하루하루 조금씩 더 걸어야 하는 체력적 부담만을 예상했지만 난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무릇 축제에 사람 몰리는 건 지구촌 공통 사항이며, 이렇게 급격히 사람이 몰리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일어나니……. 예상치 못한 난관은 바로 잠자리, 숙소였다.
힘들게 하루 일정을 마치고(적어도 내 계획상으론) 알베르게에 들어서면 “컴플리또(completo)!”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나라였으면 네이버지도 켜고 근처 모텔이라도 뒤져볼 텐데, 이 스페인 시골구석에 알베르게를 제외한 숙소가 있을 리 만무했으며, 있다 한들 찾을 자신도 없기에 울며불며 다음 마을까지 내걸었다. 그렇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가까워질수록 컴플리또 팻말에 내팽개쳐지는 횟수는 늘어났다. 이미 알베르게 문 앞에서 서성이는 순례자들만 봐도 만석임을 알아차리지만 정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더 이상 걸으면 진짜 죽을 거 같아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들어서면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컴플리또.
이럴 때면 주저앉아 현실 부정 및 상상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그냥 길바닥에서 잘까?’하는 생각부터, ‘몰래 복도에서라도 잘까?’, ‘창고 같은 데서라도 재워달라고 할까?’ 등 하여간 걷는 거 빼곤 무슨 짓이든 시도해보고자 한다.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결국엔 또 걸어야만 한다는 우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맥주 한 잔을 들이켜고 나서야 엉덩이를 떼게 된다.
어떤 날은 50km 가까이 걸은 날도 있었으니. 아침 해뜨기 전에 출발해 밤 9시가 돼서야 알베르게에 들어섰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걷는 날이면 머리 위에 있던 해가 어느새 정면에서 비춰온다. 그리곤 “어이구~ 아직도 걸어? 불쌍도 해라~”하며 놀리는 거 같다가도, 해가 조금 더 저물어 빛이 부드러워지면 또 위로하는 것만 같기도 하고, 지친 체력에 감정 기복은 더욱 널뛰기를 해댄다.
그나마 다행인 게 알베르게 역시 이런 딱한 순례자들의 사정을 그냥 방관하지만은 않았다. 각 알베르게는 더 많은 순례자를 수용하기 위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주는 등 최대한으로 잠자리를 마련했다. 순례자들은 다락방에 깔린 매트리스만으로도 무릎을 꿇으며 기뻐하거나, 두 손을 번쩍 들고 “나는 승자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전쟁 같은 숙소 경쟁으로 인한 비자발적 강행 덕에 축젯날에 맞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솔직히 자발적 의지만으로는 힘들었을 강행군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앞당긴 일정은 길에서 만났던 수많은 이들과 재회하는 기쁨을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며 피날레 불꽃으로 즐겁게 마무리될 줄 알았던 길은 급격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며 마지막 시련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