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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Apr 10. 2023

23. 익숙한 스페인의 향


 한 나라를 ‘안다’고 말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그 나라의 지리와 역사, 언어와 풍습, 문화 등 귀화 시험을 통과할 정도의 지식을 쌓아야 할까? 아니면 4박 5일 정도의 여름휴가로 유명 관광지 및 전통음식 서너 가지 정도만 경험해도 자격이 갖춰지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결국엔 원주민이 아니고서는, 외국인 신분으로는 ‘그 나라를 안다’는 명제 성립은 이뤄지지 않는 걸까?  


 ‘안다’, ‘모른다’처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은데 왜 한 나라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게 이리 힘들까? 수학 해답처럼 명확한 답을 가진 대상에서라면 쉬울지 모른다만 나라에는 문화와 정서, 결국 사람이라는 굉장히 주관적이면서 다채로운 대상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라도 느낌에 대해서는 누구든 자유롭게 말할 자격이 생긴다. 어디까지나 기준이 내 자신, 각자에게 있으므로 타인에 의해 딴 지가 걸리더라도 “내 마음이야!”라는 금강불괴와 같은 무적의 논리가 뒷배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서론이 길었지만, 그래서 내가 한 달여간 느낀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특성상, 대부분 작은 마을을 지나치는 여정에서 만나는 스페인 사람들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우리나라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이 살기나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한적한 마을을 걷고 있노라면 때때로 동네 어르신이 다가와 슬며시 말을 붙인다. 물론 스페인어로 하는 말씀에 난 알아듣지 못하며, 어르신도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걸 아는 듯했지만 그런 건 상관없단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냥 가는 길이 같아서 나란히 걸을 겸, 이런저런 얘기를 좀 해보는 거야. 굳이 귀 기울여 안 들어도 돼. 허허”라는 느낌이랄까? 그럴 때면 그저 어르신을 바라보며 한 번 씩~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어르신은 어느 정도 걷다 가 마을을 빠져나갈 때가 되면 가벼운 목례나 손을 흔들며 자연스레 떠나가신다. 그렇게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사람에 이끌려 다가오는 스페인의 어르신들은 꼭  우리나라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정감을 느끼게 했다. 


 이 외에도 이방인인 순례자에게 울부짖는 동네 개들을 향해 소리치는 할머니의 거친 면모와 가격을 잘못 알아들어 그저 동전이 가득한 손바닥을 내밀어도 쉽사리 돈을 가져가지 못하는 구멍가게 아주머니의 조심스런 수줍음에서도 왠지 모를 한국의 정서를 느꼈다. 조금은 멋쩍지만 무해함과 푸근함이 느껴지는 어르신들. 산티아고 순례길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 여행지’라는 타이틀은 이런 스페인 어르신들의 성향이 크게 작용했을 거라 생각한다. 


 축제에서도 한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는데, ‘열정의 나라’란 타이틀을 가진 스페인의 축제는 상상이하(?)였다. ‘산 페르민 축제’의 콘서트장에서도 각자의 흥에 취해 자기 자리에서 몸을 들썩일 뿐 눈에 띌 정도로 과한 열정을 과시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흥이 끓어올라 춤을 추지만 튀는 건 조금 그래, 민폐잖아?” 마치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만 같았다. 


 축제에서 서양인들은 앞뒤 안 가리고 미친 듯 날뛰며, 이 사람 저 사람 부딪히고, 그러다가 주먹질도 좀 주고받을 거라 생각했는데(네, 맞습니다. 저의 잘못된  선입관이자 미디어의 폐해라고 탓해 봅니다) 다들 사고 없이 잘만 놀았다. 분명 열기는 가득한데 과함을 방지하는 제어기가 달려 있는 상태랄까? 예상과 다른 성향에 좀 의아했지만, 순례길이나 마을에서 마주친 스페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했다. 


 흔히 서양인들은 쿨하고 표현에 거침없다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만난 스페인 친구들은 조심스러운 예의, 배려가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런 스페인 사람들의 푸근함과 배려심, 낯설지 않은 친근감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무사히 끝마쳤으며, 이후 스페인 여행도 편안하게 즐겼던 거 같다. 물론 얼마 안 된 시간이며, 대부분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경험이기에 스페인을 경험한 다른 사람들과 의견차가 있을 순 있지만, 내게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친근하고 정감 가는 나라로 기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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