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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Jul 05. 2023

나는 악필이다

<출처 : pixabay>


나는 악필이다.

글을 예쁘게 쓰지 못하는 건

어려서는 혼이 나고, 커서는 창피하고

때론 남을 화나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난 그저 글을 예쁘게 쓰지 못할 뿐인데...



 초등학생 시절 대략 분기마다 찾아오는 어머니의 공책 검사 시간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어머니가 내 가방에 손을 넣어 공책을 꺼내면 난 이미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공책에 쓰인 삐뚤빼뚤한 내 글씨는 어머니를 악마로 변화시키는 주문서와 같았고 난 매타작 이후 집에서 쫓겨났다.


 그 어린 나이에 집에서 쫓겨난다는 건 단연 최악의 공포였다. 홀로 자립할 수 없는 어린 생명에게는 죽음이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한밤중 쫓겨난 난, 뒤에서 날 한입에 삼키려는 어둠에 도망가듯 문에 달라붙어 죄송하다고, 앞으론 글씨 예쁘게 잘 쓰겠다고 울며불며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렸다.

 

 아마 지금 같은 시대엔 상상도 못 할 민폐 형벌이지 않나 싶다. 그땐 그냥 “어휴. 저 집 아들놈 또 쫓겨났나 보네”하며 다들 불쌍히 여기거나 혹은 그저 허허 웃어넘기지 않았나 싶다. 나 못지않은 윗집 친구가 쫓겨나 우는 날이면 불쌍히 여기며 괜스레 걸음도 조심히 하던 나와, “으이구. 애 잡네 잡아. 하하하”하며 웃던 아버지처럼 말이다. 어머니의 공책 검사는 내가 더 이상 밤에 집에서 쫓겨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틈을 타 오락실을 가면서 끝났다.     


 크면서 더 이상 글씨로 혼내는 이는 없었으나 스스로 창피함을 느꼈다. 은행이나 우체국 혹은 행정기관 등 짧게나마 글을 써야 하는 순간. 나의 글을 타인에게 보여야 할 때 솔직히 좀 창피하다. 내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들고 “이거 ‘원’ 맞지요?”라며 나의 글을 확인할 때면 ‘으이구. 다 큰 사람이 글씨가 이게 뭐람?’하는 속마음이 들리는 듯하다. 이럴 때면 차라리 마음껏 울고 후드려 맞던 어린 시절이 마음은 더 편하지 않나 싶다.     


 한 번은 회사에서 서류에 내 이름을 적어낸 적이 있다. 형식적인 문서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고 휘갈겨 쓴 글씨는 상사의 심기를 건드렸다. 상사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글씨가 쓰인 페이지를 들고 흔들며 이걸 글씨라고 쓴 거냐, 글씨를 이렇게 쓰는 건 인성이 덜 된 거라며 모든 직원 앞에서 소리쳤다. 어릴 적 어머니를 악마로 만들던 나의 마력이 아직 남아있던 것일까? 

 그 순간 난 창피하지 않았다. 나 역시 화가 나 소리쳤다. 

 “인성? 글씨 좀 못 썼다고 인성을 들먹여? 이렇게 전 직원 앞에서 화를 내고 남을 모욕하는 네 놈의 인성이나 신경 쓰시지!”

 물론 속으로 외친 말이었다. 겉으로는? “죄송합니다. 다시 써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나 역시 글을 잘 쓰고 싶다. 그 흔한, 다들 간다는 태권도 학원도 안 간 내가 서예 학원만 5년을 다녔다. 결과는 말했다시피. 어머니는 아직도 친척 결혼식 축의금 봉투에도 내가 직접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할 정도다. 우리 모두가 아는 노래가사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처럼 꼭 “글씨를 잘 써야만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전 세계의 악필들이여 이제는 떳떳하게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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