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퍼스타 Jul 20. 2023

가위

출처 : 픽사베이


말을 하세요

몸을 일으키세요

눈을 뜨세요

당신을 짓누르는 모든 것에 저항하고

당당하게 외치세요

다 꺼져 버리라고          



고요한 밤. 

고요하게 날 압박하는 더위에 가만히 앉아 있기에도 숨이 차는 밤이었다. 술 한 잔, 몽롱한 정신으로 온몸에서 진득하게 새어 나오는 땀을 견뎌봤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나의 체력은 완전히 고갈 되었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흉흉한 검은 기운과 붉은 기운이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엉킨 공간 사이로 한 남자가 날 사선으로 노려보며 서서히 걸어갔다. 그의 얼굴은 심한 자상이 새겨진 듯 얼룩덜룩 누더기와 같이 표피가 일어나 있었다. 끔찍했다. 평소 같았으면 재빨리 고개를 돌려 못 본채, 시한폭탄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려는 듯 걸음을 채근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내 눈에 닻이라도 내린 것처럼 나 역시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억지로 마주한 그의 얼굴은 바로 나였다. 심하게 변형됐지만, 그것은 분명 나의 모습이었고 이에 의구심이 극에 달한 순간 그는 팔을 돌리며 내게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누워 있는 내 몸은 굳어버렸고 머리에 파고드는 강력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반복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아!”

굳은 몸을 움직여 보고자 힘을 줬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은 희미하게 벌어져 계속해서 외쳤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아!”

나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건가? 도대체 나의 모습을 한 저 남자가 내게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건가? 그저 이 문장이 끊어지는 순간 뭔가에 잠식당할 것만 같은 본능.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외쳤다.


그렇게 나의 저항이 계속되자 나의 가슴에 간질간질한 촉감이 와 닿았다. 한 여자가 내 몸 위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리고 있었다. 난 더욱 격렬하게 외치며 몸을 움직이기 위해 힘을 줬다. 손가락, 발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몸 전체가 움직이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시한폭탄이 내 배 위에 있었다.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자가 얼굴을 들어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 여자가 아직 머리를 늘어트리고 얼굴을 숨긴 지금 난 몸을 움직여야 했다. 여자의 얼굴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안겨줄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드디어 눈을 떴다. 


“하아...”

방은 어두웠고 팬티바람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나. 창으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있었다. 어느새 더위는 사라지고 제법 쌀쌀한 바람이 창을 통해 불어오고 있었다.

“이 X발! X 같은 새X!”

다시 그 여자가 오지 못하게 거하게 욕을 내뱉고 다시 잠에 들었다.

오랜만에 가위에 눌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풍경 같은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