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N의 인턴후기
Q. 인턴을 시작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그때는 어땠나요?
Int. N : 저는 3월에 정형외과를 돌았어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사람이 이렇게까지 힘들 수 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정형외과 인턴은 남들 자고 있을 때 출근해서 남들 잘 때 퇴근하거든요. 심지어 정규시간에도 수술방에 계속 있으니까 햇빛을 볼 일이 없었어요. 정형외과 인턴이 끝나고 나니 피부가 새하얘져 있더라고요? 장점이라면 장점일까요 하하..
하루 종일 수술방에 있으니 다른 인턴들을 만날 일도 적었어요. 밥도 수술방 옆에 있는 식당에서 10분 만에 해치우고 다시 수술방에 들어가기를 반복하다 보니 다른 인턴들과 친해지기가 힘들었죠.
처음 경험하는 어마어마한 업무량에 이어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할 시간도, 방법도 없다 보니 3월 한 달은 너무나도 힘들었어요.
하루 종일 물조차 못 마셨던 적도 있어요. 이러다 탈수가 오겠다 싶어서 터덜터덜 자판기 앞으로 걸어갔는데 제 눈에 게토레이가 딱 보이는 거예요.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게토레이를 뽑았죠. 캔을 따고 게토레이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온몸이 짜릿하는 쾌감이 느껴졌어요. 도파민이 폭발해버렸죠. 제가 살면서 마셨던 음료 중 제일 맛있었다고 자부해요. 그 순간의 쾌감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그날 이후로 자판기만 보면 그때가 기억나서 왠지 친근하더라고요. 살면서 자판기에 호감을 느낄 줄이야
그리고 3월에는 잘 모르는 채로 무작정 열심히 했었어요.
Pre-OP로 챙겨야 하는 동맥혈 채혈 하나, 관장 하나 심혈을 기울여가면서 했어요. 지금이면 금방금방 해치울 수 있는 일들도 시간을 오래 들여가며 했어요. 숙련도가 부족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인턴 초반에는 도와달라는 말을 잘 안 했어요. 어떻게든 혼자서 또는 같은 과에서 일하는 동기들 선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누구에게 부탁하던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일을 해결하는 게 맞았어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처음에는 괜히 미안했죠. 본인들 일도 바쁠 텐데 쉴 수 있는 시간에 제 일을 대신해달라고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인턴 일을 하면서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들이 자주 생기더라고요.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턴들에게요.
그래서 한번 부탁을 하면 두 번 들어주자는 생각을 갖고 서로 부탁을 주고받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인턴 생활에 한결 숨통이 트이더라고요.'도움을 주고받자' 가 인턴생활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Q. 힘들었던 기억은 어떤 것이 있나요?
Int. N :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여러 가지가 있네요 하하. 일단 주치의를 처음 맡았을 때가 힘들었어요. 저는 8월에 처음 주치의를 맡았어요. 다른 인턴들은 이미 주치의 업무를 여러 번 해봤던 터라 일이 익숙해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인계를 받을 때도 그냥 '콜을 받으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라는 식으로 간단하게 받았어요.
그래서 큰 부담 없이 업무를 시작했는데, 막상 콜을 해결하려고 하니 막막하더라고요. 열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몰랐어요. 체온이 몇 도일 때부터 해열제를 주어야 하는지, 경과를 지켜봐도 되는지, 아니면 혈액배양검사를 나가야 하는지 등등.. 의사는 되었지만 임상경험이 일천하다 보니 기본적인 상황조차 버벅거렸던 거예요.
제 능력은 부족한데 간호사 선생님들, 환자분들은 저만 바라보고 있으니 부담감이 상당했죠. 동기들의 도움을 받고, 따로 공부도 해가며 어찌어찌 한 달을 잘 버텨내었네요
체력의 한계를 마주하게 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죠. 특히 수술과에서 근무를 할 때 그렇죠. 하루 종일 수술방에서 어시스트를 서고 중간에 짬이 날 때 10분 만에 밥을 먹고 와요. 그리고 또 수술방에 들어가서 어시스트를 서죠.
정형외과 수술방에서는 환자의 다리를 들어야 할 때가 있어요. 몇십 분, 혹은 한 시간씩 다리를 들어야 하죠. 다리를 놓치는 순간 바로 오염(Contamination)이 되기 때문에 죽는 한이 있어도 다리를 떨어뜨리면 안 돼요. 노인분들이나 소아들은 괜찮은데, 건장한 성인 남자의 다리를 들 때면 팔에 진동기가 달린 것 마냥 부들부들 떨려요
저는 힘이 센 편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악으로 깡으로 버틴 덕에 한 번도 떨어뜨린 적은 없어요. 만약 다리를 떨어뜨리게 되면 수술방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이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고함을 들어야 할지도 몰라요. 하하
수술방에 있느라 정규 근무는 쌓여만 가고, 또 제 일이니까 다른 인턴들에게 미룰 수도 없죠. 수술방에서 나와 밀렸던 일을 처리하다 보면 새벽 1시가 넘는 경우가 허다해요. 정형외과에서 근무를 할 때, 응급수술을 들어갔던 적이 있는데 수술이 아침 5시 30분에 끝났어요. 수술방에서 나와 세수를 하니 출근시간이 되었죠. 다음날 거의 졸면서 일을 했던 것 같아요. 무시무시한 하루였습니다.
Q. 좋았던 기억은 어떤 것이 있나요?
Int. N : 휴가 때가 너무 좋았어요. 눈코 뜰 새 일에 파묻혀 살다가 휴가가 시작되는 순간 모든 것이 일시정지가 되어요.
계속해서 징징대던 휴대폰도 조용하고, 병원에서 그 누구도 저를 찾지 않죠. 이때 느끼는 홀가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퇴근하고 시간 맞는 동기들끼리 꼭 가보고 싶던 맛집에서 음식과 함께 소맥 한 잔 말아먹을 때도 아주 행복했어요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았을 때도 좋았죠.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받는 것 같았어요.
전 졸업하고 바로 레지던트를 하는 것 말고 다른 계획이 있어서 전공의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다른 동기들이 전공의 시험을 준비하느라 여념 없을 때 옆에서 조용히 놀았었는데 그때도 짜릿했어요.
시험이 다 끝난 뒤에 다 같이 노니까 그때만큼 짜릿하지는 않더라고요 하하.
상반기 병원을 마무리할 때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동기들이랑 사진을 찍었어요.
인턴 6명이 한 방을 썼는데, 각자 스케줄이 달라서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기가 불가능했었거든요. 마지막 날이라도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어요.
비록 힘들었던 6개월이었지만 마지막 추억을 남긴다고 생각하니 또 아쉽더라고요. 늘 지나고 나면 미화가 되는 법이니까요.
Q. 과를 지원할 때 어떤 기준으로 과를 선택했나요?
Int. N : 저는 인턴을 하면서 체력이 생각보다 별로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평생을 해야 할 과를 선택할 때, 체력적으로 무리가 안 가는 과를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사실 저는 인턴 입사하기 전에는 외과, 산부인과, 안과 같은 수술과를 처음에 생각했거든요. 인턴을 하면서 원하는 과가 바뀐 케이스죠. 힘들게 일하는 레지던트 선생님들을 보며 내가 저분들처럼 일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Q. 훌륭한 인턴은 어떤 인턴인가요?
Int N : 손이 빠른 인턴이요. 병원의 막내인 인턴은 시키는 일을 잘해야 해요. 전공의 선생님들의 손발이니까요.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선생님들이 원하는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일을 해야 하죠.
물론 주치의를 맡는 과에서는 현명한 판단이 중요하겠지만, 주치의를 하는 과보다는 안 하는 과가 훨씬 많거든요.
엉덩이가 가벼워야죠. 술기는 결국 단순 반복 업무라 언젠가는 모두가 익숙해져요. 빠르고 정확하게 성실히 일하는 인턴이 훌륭한 인턴이라 생각합니다.
Q. 순환근무는 어땠나요?
Int. N : 저는 순환근무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요. 우리 의료원 말고 다른 병원들은 한 달씩 파견을 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것보다는 한번 이동해서 그 병원을 제대로 경험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죠.
힘든 병원도 있으면 상대적으로 덜 힘든 병원도 있어서 인턴생활의 큰 변화를 줄 수도 있어요. 로딩 이외에도 변하는 건 많죠. 하반기 병원에 오면서 대형병원 특유의 지옥의 엘리베이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인턴들끼리만 쉴 수 있는 휴게실도 갖게 되었죠. 인턴업무도 바뀌어서 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일들도 더 이상 안 하게 되기도 했어요.
Q. 인턴을 마무리하는 지금,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Int. N : 아쉬워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처음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했을 땐 하루빨리 인턴이 끝나기만을 바랐어요. 정말 시간이 안 가더라고요. 한참을 일한 것 같은데 고작 1주일밖에 안 지났고를 반복했어요. 인턴생활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정말 끝이 다가왔네요. 그저 빨리 끝내고 후련하게 털어버리고 싶었던 인턴생활을 제가 아쉬워할 줄이야...
동기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게 가장 아쉬워요. 왜 선배님들이 인턴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했는지 이제는 이해가 되네요.
Q. 곧 인턴을 하게 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Int. N : 모르면 꼭 물어보세요. 사고 치지 마시고요. 도움도 많이 요청하세요. 대신 도움을 받은 만큼 도움을 줄줄도 알아야겠죠.
늘 일에 쫓기며 급급하게 살지 않기를 바라요. 1년 생각보다 길고 생각보다 짧아요. 상반기 6개월은 정말 시간이 느리게 흘렀는데, 하반기 6개월은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갔거든요.
늘 최선을 다하고, 겸손한 자세로 주위 동기들과 잘 어울리면서 1년을 보내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