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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골드 Dec 27. 2021

연말 앓이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진정한 연말이 왔다.

연말은 사람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그 마력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작년과 올해 그 마력에 빠져들었다.

특히, 작년 연말에는 심란함을 넘어서 인생 최대의 우울함에 빠져 허우적 댔다.


시작점은 코로나 때문이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일주일에 2~3일 정도 출근했었는데 11월 말부터 급격히 코로나 확진자 수가 증가하며 전일 재택근무로 전환했고, 외출도 거의 안 하며 집에만 있었다. 코로나와 재택근무에 적응이 잘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연말이라는 특별한 시기라 그런지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업무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라 일이 바쁘지 않고, 외부 활동도 일절 없으니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 차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끝없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근데 신기한 건 생각은 하면 할수록 희망적이 아닌 부정적인 생각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나의 이 끝이 없을 것 같던 생각들의 결과는 극심한 우울함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집에만 있으니 너무 갑갑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사라져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내가 코로나 이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만남의 기회를 만들었어야 했다는 후회를 시작으로 코로나 이전의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 생각들이 계속 이어지다 헤어진 지 1년도 넘은 전 남자 친구에 대한 원망에 이르렀다. 그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며 이별을 통보하고, 전 여자 친구에게 환승한 나쁜 사람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많이 슬퍼했고, 뒤늦게 진실을 알고 배신감으로 꽤 오랜 시간 힘들었었다. 힘들었던 그때가 생각났을 때 멈췄어야 했는데 이미 깊숙한 생각에 빠졌던 나는 그가 행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근황을 찾아보았다.

그의 카톡 프사는 여자 친구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으로 되어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분노가 솟구쳤다. 잘못한 그는 여자 친구와 행복하게 지내는데 왜 아무 잘못 없는 나는 혼자 이렇게 우울하게 지내야 하는지 너무나 화가 났다. 그 사람에게 그렇게 상처 받아서 힘들지 않았다면 진작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며 그를 원망하며 울면서 지냈다. 며칠 이러다 말 줄 알았는데 가족들이 걱정할 정도로 기간이 길어지고 심해졌다. 병원을 찾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가 되자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과 위로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조금씩 안정을 찾으며 무사히 새해를 맞았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고 보니 그때 나의 우울함의 원인은 그가 아니었다는 알았다.

그때의 나는 모든 상황이 원망스러웠고, 집중적으로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런 나에게 그는 딱 맞는 원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시간은 흘러 다시 12월이 왔고,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작년 같이 극심한 연말 앓이를 할까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걱정대로 연말의 마력에 빠져들어 여러가지의 심란한 생각들이 시작됐고, 그 중심에는 몇 달 전 헤어진 전 남자 친구가 있었다.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어머니의 병환까지 겹치며 헤어졌었다. 나는 상황상 헤어진 거라 그의 어머니가 건강을 회복하시면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 시기가 지금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고, 나와 달리 그는 나에게 미련이 없음을 깨달았다.

다행히 그 감정과 생각들은 더 진행되지 않고, 딱 거기서 멈췄다.

그래서 작년처럼 그의 근황을 찾아보지 않았으며 원망의 마음도 들지 않았다. 만약 저번처럼 그가 여자 친구와 찍은 사진을 카톡 프사로 올린 걸 봤다 해도 분노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내가 굳이 기분 나쁠 일을 만들 필요는 없다. 지금처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면 된다.

작년에 겪었던 극심한 우울함이 예방주사가 되었던 걸까?올해 연말 앓이는 가볍게 끝날 것 같다. 작년에는 극심한 연말 앓이를 회복한 것만으로도 안도하며 새해를 맞이 했었는데 올해는 무탈하게 지나갔으니 남은 5일 동안 희망찬 새해를 보내기 위한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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