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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물젤리 Jul 21. 2023

"편하게 둘러보세요" 집 소개하는 여섯 살

여섯 살 미남이


이사 때문에 집 매매가 진행 중이었다.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오기로 약속날이었다.

어린이 집 차에서 내린 미남이랑 놀이터에서 잠시 놀다  

시간 맞춰 우리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 타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 신이 나 있었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할머니 한분이 의자에 앉아 계셨다.

미남이는 오 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구입한 제법 큰 젤리 한 봉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녀석도 과자욕심이 많다.

평소에는 친구랑 나누는 것도 큰맘 먹어야 가능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더니 그날은 들고 있는 젤리가 두둑 해서였는지 할머니께  과자 드시라며 젤리를 꺼내 드렸다.

"아이고 이쁜 새끼, 할머니는 이가 없어서 과자를 못 먹는다. 너 많이 먹어라"

이쁜 새끼란 말이 외모 칭찬이 아닌데  녀석은 왕자병 유병자라  곧이곧대로 들었을 것이다.


"할머니  그럼 죽이나 수프를 드세요 "

"오냐오냐"

웃으시는 할머니 얼굴 주름이 더 깊어진다.


잠시 후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미남이에게 어디 가냐고 물으셨다.

"이모할머니집 가요" 

"어딘데?"

"쩌기요"

엄지 손가락을  쭉 펴서 우리 집  방향을 가리켰다.


우리가 기다리는 74번 보다 먼저 도착한 6번 버스를 타고 할아버지가 가셨다.

 나는 미남이에게 어른한테 할 때는 손가락으로 알려드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두 손을 가지런히 펴서 "저는 저쪽으로 가요"  이렇게 알려드리는 거라고  장난 삼아 시범까지 보여줬다.

실제로 애가 하면 좀 징그럽겠다 생각했지만  특별히 써먹을 일도 없겠다 싶었다.


버스에 타서 미남이는 빨간색 버스 나는 노란색  지나가는  버스 찾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절반쯤 왔을까

"하.. 하... 하  할머니. 공사장이에요 공사장!!!"

흥분한 미남이가 소리쳤다.

순간  레미콘 트럭 덤프트럭 몇 대가 작업 중인  공사장이 보였고

미남이에게 이게 얼마만의 성지순례인가 싶었다.

내 손은 이미 버스 하차벨을 누르고 있었다.


"내리자!!!!"

정류장에 멈춘 버스에서 뭐에 홀린 듯 내려 공사장으로 뛰었다.


코앞에서 한 번에 중장비차 몇 대를 구경하는 미남이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먼저 제정신을 찾은 내가  카카오 택시를 호출했지만

집과 너무 근거리라서 인지 계속 허탕이었다.


약속시간은 다가오고 마음이 급해졌다.

미남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 빨리 뛰어서 부동산 사장님보다 일찍 도착해 보자고 했다.

중장비차 보고 에너지를 가득 충전받은 녀석은 아이돌이 아닌  아이들계의 우사인 볼트가 되어 바람을 가르고 뛰었다.


덕분에 제시간에 도착했는데 막 도착해 있던 손님들과 함께 가쁜 숨으로 헉헉 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저곳 살펴본 손님들이 이모 방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미남이가 쪼르르 앞서 달려가 방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방문 앞에 얌전히 서더니 방 안쪽을 향해

<두 손바닥어깨높이로 가지런히 펴서는>

"여기가 저희 이모  이. 시. 구. 요"

"편하게 둘러 보세요" 라며 잠시 전 손님들한테 했던 내 말까지 따라 하고 있었다.



중개사 사장님께  집소개를 잘한다는 칭찬을 받고 우쭐해진 미남이는 현관까지 따라와서 여섯 살 되고서는  좀처럼 하지 않던  꾸뻑 90도 인사까지 잘 마쳤다.


다녀간 부동산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집소개 잘하는 것과 계약서 도장 찍는 일은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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