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아직 20대 푸르던 시절에 멈추어 있는데,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기고 내 아이가 그 시절 그때의 내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나는 사진 찍는 걸 참 싫어한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 적 사진 속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은 걸 보면 태어날 때부터 사진 찍기 싫어하는 유전자를 타고났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성장보다 노화가 시작된다는 30대 중반부터는 가족여행을 가더라도 카메라 앵글에서 슬그머니 빗겨서는 게 일상이 되었다. 사진 속 내 모습에서 리얼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별로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브이라인이라고 부러움을 샀던 양 볼은 어느덧 푹 파여 마귀할멈이 되었고, 쌍꺼풀이 없어도 왕눈이라 불렸던 두 눈은 축 처져 총기 잃은 듯하다. 우울하게 자리 잡은 팔자주름은 포기하기 시작했고, 따로 관리를 하지 않아도 매끈하던 피부는 레이저 시술 아니면 손 쓸 방도가 없는 잡티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실물도 그럴진대 사진 속의 나는 더 못나 보인다.
그래서 집에 남은 사진이라곤 죄다 뒷모습뿐이다. 앞모습이 나온 사진을 모두 삭제해버린다는 걸 안 남편은 언젠가부터 뒷모습을 주로 찍어준다. 그런 남편이 찍어주는 뒷모습 사진을 난 참 좋아한다. 물론 예쁘게 잘 찍은 남편의 사진이 작품으로서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 앞보단 뒤가 그나마 봐줄 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측은지심이 생긴다.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내뱉는 것 같아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그동안 나 자신에게조차 못했던 말을 사진 속의 나와 이야기하는 것 같아솔직해지는 기분도 든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늘 뒷모습 사진으로만 교체하는 내게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예쁘지? 뒷모습만 예뻐서 찍는 거 아니야. 뒷모습도 예뻐서 찍는 거야."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가끔은 이런 거짓말에서 위안을 얻는다.
남편은 늘 그렇게 지금도 예쁘다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내게 말해준다.시간이 흘러도 한결같이 한결같은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주위에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어른으로 살아가는 게 참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생판 모르는 남을 만나 가족을 이룬다는 것, 아이들을 온전하게 키워낸다는 것, 늙어가는 부모를 외롭지 않게 지켜낸다는 것, 그리고 세상 속에서 나 스스로 빛을 잃지 않는 것 또한 내겐큰 숙제다.
요즘 나온 노래 중에 '차라리 운전대를 못 잡던 어릴 때가 더 좋았었던 것 같아'라는 노랫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쓴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해결해야 할 일은 참 많은데 머리만 무거운 날은 내 나이가 더 절실히 다가오는 날이기도 하다. 그럴 땐 그저 엄마가 좋다며 엄마만 따라다니는 껌딱지 딸처럼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름의 걱정은 있으나 소소하고,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넋 놓아 울 수 있고, 아무것도 안 발라도 그 자체로 예뻤던 그때로. 엄마도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