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은 May 02. 2023

배워야 소통할 수 있는 엄마여도 괜찮다.

힐링육아 프로젝트

어렸을 때는 영어를 하는 외국인들이 참 신기해 보였다. 나는 공부하고 노력하는데도 간단한 말 한마디 하는게 이렇게 어려운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입만 열면 영어가 술술 나오는걸까? 나도 모국어인 한국말은 술술 하는데 그 땐 그 생각을 못했나보다.


누구나 모국어는 유창하다. 뱃속에서부터 듣고 자란 말이니까 입에 그 말들이 붙어서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나간다. 어떨때는 뇌보다도 빠르게 나가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의식 깊이 박힌것이 모국어다.


소통도 이 모국어와 같다. 사랑 가득담긴 말, 배려받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은 자신의 아이에게도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비난과 명령, 협박, 훈계와 같은 언어를 많이 듣고 자란 사람은 자신의 아이에게 비난과 명령, 협박, 훈계가 술술 나온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사랑의 언어를 하기 위해서는 더듬 더듬 배우는 시간이 어쩔수 없이 필요하다. (사랑도 못받았는데 추가수업까지 받아야 하니 매우 빡치는것 나도 200000% 인정)


나는 혹독한 모국어를 가진 사람이었다. 무슨 실수라도 한 날이면 엄마는 차가운 눈으로 독한 말을 어린 나에게 쏟아냈다. 마치 상한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더 이상 견딜수 없어 토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럼 그 아픈 말들은 내 가슴에 내 혀에 내 머리에 끈적끈적하게 쌓여갔다


더 힘든건 그 말이 얼마나 아픈지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면서도 막상 내가 엄마가 엄마와 똑같이 아이에게 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특정 상황이 되면 고장난 라디오처럼 그 말들이 내 머릿속을 뱅뱅 돌았다. 그 단어들을 떨쳐내려고 머리를 흔드느라 다른말을 생각해 낼수 없을 지경이었다. 특정상황은 내가 그런말을 들어야 했던 비슷한 순간들이었는데 지금 보면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트리거와 같은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난 내가 미친 엄마여서 그런줄 알았다.


큰 맘을 먹고 소통수업을 들으러 갔다. 교실에는 10여명의 부모님들이 와계셨다. 그중에 미친듯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자식에게 내가 받지못한 사랑을 주고싶은 선한 분들이었다. 그재야 안도감이 들었다. 나같은 분들이 많구나. 저렇게 멀쩡한 분들도 소통이 어렵구나. 나도 이런 평범한 부모 중에 하나구나. 


그 수업에서 선생님은 아이에게 하면 안되는 말 10가지를 가르쳐주셨다. 

  

    명령  

    지시  

    경고  

    주의  

    으름장  

    훈계  

    설교  

    조언  

    제안  

    해결책 제시  


이걸 보고 내가 처음 떠올린 생각은

"그럼 도대체 뭔 말을 하라는 거야?" 였다.


나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언어도 없었다. 상대방에게 그럴만하다 공감해주는 언어도 없었다. 어떻게 하고싶냐며 물어주는 언어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차근차근 소통을 배워갔다. 그 모습은 한단어 한단어 흔들리며 썼다 지웠다 선생님께 보여줬다가 빨간펜으로 첨삭하고 다시 쓰는 외국어 수업과 똑같았다.


처음부터 외국어가 유창한 사람은 없다. 당연히 나도 아이에게 실수를 많이 했다. 가끔은 할말이 떠오르지 않아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럴때면 엄마는 왜 말도 없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냐며 아이가 화를 냈다.


가끔은 어떤말을 해줘야 할지 알지만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주는 것이 억울해서 내 엄마처럼 현란한 모국어를 아이에게 쏟아내 버리기도 했다. 그런날이면 상처받고 우는 아이를 안고 엄마가 미안하다고, 엄마가 했던 말은 엄마의 옛날 상처때문이지 진심이 아니었다고 울며 사과했다.


그래서 소통을 배우는 것은 어린 시절에 묻어둔 감정들을 정화하는 작업과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사랑을 선택하려고 노력해봐야 그 분노와 슬픔, 내 상처가 불러일으키는 저항을 느낄 수 있다. 그 저항을 풀어낼수록 사랑을 선택하는 힘이 강해진다. 사랑에 나침반을 맞춘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반드시 만나지만 그것을 넘어 새로운 육아를 창조할 수 있다.


관계에서 오해는 늘 생긴다. 나조차 나를 잘 모르는데 하물며 타인이 나에대해 어찌 다 알수 있을까. 그러니 서로 잘 지내려면 공격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100%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실수도 많이 하겠지만 종종 스스로도 대견하다 싶을 정도로 멋진 언어를 말할 때도 있을것이다. (아니 내 입에서 이런 말이?!!) 10에 6만 잘하면 된단다. 그러니 실수에 너무 목숨걸지 말자. 솔직하게 사과하고 계속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도 아직 가끔은 모국어가 머리속에 동동 떠오른다. 예전처럼 토네이도는 아니고 식혜 위의 귀여운 잣같이 말이다.


괜찮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아이에게 나의 모국어가 아닌 제2외국어를 물려주기로 선택했고 그 언어를 쓰는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누가보면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사람 처럼 제법 제2외국어를 유창하게 쓸 수 있게 됐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언어는 입밖으로 뱉어내며 연습해야 는다. 오늘부터 연습해보자.


나의 모국어 점검


당신이 물을 쏟았을 때, 당신이 약속을 잊었을 때, 당신이 넘어졌을 때 당신은 어떤 말을 들었는가? 


당신은 지금 어떤 언어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는가?


글 : 이지은 @written_by_leejieun

그림 : 정정민 @jungmin_day

이전 07화 당신의 무의식적 세계관을 체크해볼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