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다치게 한 적이 있는가? 나는 수도 없이 많다. 이불 속 아이 발을 이 육중한 몸으로 밟은 적은 뭐 셀수도 없고, 급하게 잡아끌다가 할퀸 적도 많다. 여리디 여린 아이 살은 엄마의 작은 실수에도 쉽게 피가 맺히곤 했다.
그때마다 아이는 "으앙~!"하고 커다랗게 울었다. 아픔을 숨길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직설적인 소리가 어찌나 듣기가 싫던지. 정작 아프게 한 사람이 나면서 나는 '아프긴 뭐가 아프냐'고, '왠 엄살이냐'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곤 했다.
당신은 자지러지는 아이 울음소리가 뭐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가? 나는 아이 그 소리가 마치 '엄마 때문이야!' '엄마는 나쁜 사람이야!' 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아이는 우는 것이 당연하니 우는 아이를 사랑으로 달래주라는데 그럴수가 없었다. 듣기 싫은 소리를 참아내야하는 나의 고통을 달래기도 벅찼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반대로 아이가 날 아프게 하면 화가 그렇게 났다. 그때만큼은 아이에게 화내는 스스로에게 면죄부가 생겼다. 이때다 싶은 사람마냥 신명나게 화를 쏟아냈다.
"조심을 했어야지!"
그러던 어느날 아이 귀를 파주다가 깜빡 졸아 손에 쥐고 있던 귀이개를 놓친일이 있었다. 유난히 크고 곧은 우리 아이 귀구멍 속으로 귀이개는 수직으로 떨어졌다.
"꺄악~!"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아이는 귀를 움켜쥐고 엉엉 울기시작했다. 아파하는 아이를 보고있자니 나 스스로에게 너무나 화가 나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겉으로는 아이를 달래고 있었지만 나의 온 에너지는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죄책감은 길다란 송곳이 되어 심장 한가운데를 깊숙히 찔렀다. 내가 나를 공격하는 그 생생한 아픔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급기야 다른 누군가의 탓을 하고 싶어졌다.
그러게 넌 왜 이런 밤에 귀를 파달라고 했어!
당신은 돈만 벌어오면 다야!
왜 매일 나만 고생해야해!
응급실에 가는 내내 미안해 어쩔줄 모르는 나에게 아이는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품에 안겨 아프다고 울기만 했다.
"엄마한테 화나지 않아?"
"화는 안나. 근데 아파."
다행이 귀 안쪽 피부에만 상처가 나고 고막은 손상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달 뒤, 아이가 실수로 내 발가락에 후라이팬을 수직으로 떨어트리는 일이 있었다. 후라이팬 손잡이가 발가락 관적에 떨어졌는데 정말 너무 아팠다. 평소같았으면 "씁~" 하면서 온 인상을 다 써가며 아픔을 참아냈을 것이다. 그러고는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냈겠지.
하지만 그날은 나도 아이처럼 펑펑 울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만분의 일초로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아이처럼 "앙~!" 하고 나도 울어버렸다.
"으앙~!! 아파!"
평소답지 않게 요란스레 우는 엄마를 보고 놀랐는지 아이도 엄마 괜찮냐며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숨기지 않고 울고 싶은 만큼 목청껏 나 아프다고 소리쳐 울어버렸다. 아이는 엄마가 우는 동안 마음이 힘들었을 텐데도 끝까지 옆에 있어줬다. 한참을 울고 나니 발가락이 서서히 괜찮아 졌다. 울음을 그치자 아이가 물었다.
"엄마 많이 아파? 괜찮아?"
"응. 펑펑 울고 나서 그런지 이제 안아파."
씩 웃는 나를 보고 아이도 웃었다. 안 아플때까지 운건지 울어서 덜 아픈건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한 점은 아이 실수였는데도 하나도 화가 나지 않았다는 거다. 오히려 사우나라도 다녀온듯 개운했다.
그때 느꼈다. 울어야 하는구나. 소리쳐 표현해야하는 구나. 감정을 억압하면 분노가 된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아이는 맘껏 울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는 것이 이런 말이구나. 우는것은 누군가를 탓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감정을 표현하는 것 뿐이구나.
머리로 알았던 것이 몸으로 겪고 깨달아 온전히 나에게 흡수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는 아이가 울음 소리가 한결 편해져 우는 아이를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달래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더 많이 편하게 울수 있었다.
얼마전 인스타에서 집나간 개를 겨우 찾았다는 게시글을 봤다. 주인이 개를 찾아 뒷 산을 한참을 헤맸는데 알고보니 덫에 걸려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불러도 대답도 안하고 쥐죽은 듯이 꼼짝도 안하고 있었던 통에 찾는데 오래 걸려 위험할 뻔 했다는 글이었다.
야생동물들은 아파도 티를 내지 않는 다고 한다. 아픈 티를 내면 천적에게 사냥당할 확률이 더 높아서 생존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야생동물이 아니니까. 아플때 아프다고 외치고 슬플때 슬프다고 표현해야 사는 사람이다. 그 개도 깽깽 소리라도 냈으면 더 금방 발견됐을거다. 이제 호랑이가 돌아다니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보호자가 애타게 자신을 찾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까.
우리는 울면 잡아먹히는 야생동물 처럼 아파도 슬퍼도 숨겨야 했던 세상을 살았다. 호랑이 같은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울음을 삼켜야만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울면 공감받고 지지 받고 아플때 도움받을 수 있는 안전한 세상을 사는 사람으로 기르자. 그러려면 일단 우리부터 많이 울자.
큰 소리로 나 이렇게 아프다고 펑펑 말이다!
글 : 이지은 @written_by_leejieun
그림 : 정정민 @jungmin_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