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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흔한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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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Sep 13. 2024

마법의 주문 "귄챠나 귄챠나 딩딩딩딩~"

우리 아이는 하교를 하면 호다닥 가방만 벗어던지고는 소파로 쏙 들어간다. 소파의 가장 구석 부분이 우리 아이 지정석이다. 아이가 그곳에 쏙 들어가 있는 것을 하도 좋아하니 작은 보조테이블과 수납트레이도 그곳에 놓아줬다. 아이가 하교를 해서 그곳으로 쏙 들어가면 나도 하던 일을 내려놓고 쪼르르 달려가 그 옆에 눕는다. 그리고 밖에서 한참 있다 들어온 아이의 냄새를 킁킁대며 맡는다. 아이에게서는 햇빛 받으며 돌아다녔을 때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 나는 그 냄새가 참 좋다. 다행인 건 아이가 나의 그런 주접을 아직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컷 주접을 떨고 있다 보면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기 시작한다. 얼마나 세세히 말해주는지 거의 브리핑 수준이다. "오늘 학교에서 어떤 애가~ " 로 시작하는 브리핑은 인물정보는 적어도 사건의 개요와 감정 정보는 확실하다. 그러면 난 "어머! 정말~?"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열심히 듣는다. 


어제는 체육시간에 배드민턴을 친 모양이었다. 


"완전 쳐발렸어"


처음에 못 알아듣고 "치발리?" 하고 되물었다. 아이가 '쳐발렸다는건 내리 졌다는 뜻'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아~ 쳐발렸다고 ㅎㅎㅎ"


아이 입에서 처음 나온 단어라 못 알아들었다.  며칠 전에 나에게 욕하지 말라며 (내가 욕을 뭐 얼마나 한다고.. ㅠ_ㅠ 에이씨도 욕이란다. 억울하다... ) 욕하지 않기 연습을 같이하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한 딸내미이다. 아이의 욕에 대한 모호한 기준에 속으로 살짝 웃는다. 


"다섯 판을 했는데 다 졌지 뭐야. 한 번은 이기고 있었는데 역전패했어. 너무 기분 나쁘더라."

"아이고. 그랬구나. 많이 속상했겠다."

"...."


아이는 한참 동안 자신을 쳐바른? 그 아이의 무례함을 토로했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가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기분 나쁠 때 기분이 다시 좋아지는 방법이 있어. 긘챠냐~ 귄챠냐~ 딩딩딩딩~ 이렇게 말하면 돼. 오늘도 이렇게 말했더니 기분이 나아지더라고."


아이가 외국인이 나오는 웃긴 짤을 따라 한다. 얼마나 똑같은지 나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아이를 따라 해봤다.


"이렇게? 궨차나 귄차나 딩딩딩딩~"

"아니야~ 귄.차.나. 귄.차.나. 딩딩딩딩~ 이렇게 발음 하나하나에 힘을 줘야지"


돌연 성대모사 레슨이 시작됐다. 아 그렇네 정말 발음 하나하나에 힘을 줘야 비슷해지네. 아이의 가르침으로 나도 제법 비슷해진다. 


좌절을 이겨내는 것은 어른도 어려운 건데 아이는 나름의 방법으로 마음을 조절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웃겨서 극복하는 아이라니. 새삼 아이가 참 멋지게 보인다. 그래 정말 힘들 때 유머의 힘은 어마어마하지. 호킨스박사의 책에서 유머가 높은 의식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도 힘들 때 해봐야겠다.

"긘챠나, 귄챠나~ 딩딩딩딩딩"


오늘도 아이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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