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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흔한기적

엄마의 에너지가 안좋을 때 아이에게 일어나는 일

by 이지은

아이가 기타가 잘 안쳐진다고 울상이다.

되던것도 안된다고...

아무리 해도 안될것 같다고...

절망적이고 두렵다고 한다.

이제 몇달 뒤면 공연인데 망쳐버릴까봐 걱정이 된다고 한다.

아이가 운다.

자기가 연습을 게을리 해서 그렇다며 자책을 한다.

세상이 무너진 사람처럼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



문득 떠오른다.


아이가 기타를 꺼낼때쯤 영어공부 문제로 내가 에고로 뱉은 말들...

"영어 성적표는 네가 받는거지 내가 받는게 아니야"

화나지 않은 척...

하지만 에고인 것을 나는 안다.


나의 낮은 에너지에 아이가 영향을 받은것이다.

너무 귀신같이 반응하는데

하도 반복되니 이제 신기하지도 않다.

다시 한번 아이의 세상은 나의 에너지가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부자리에 누워 우는 아이를 다독인다.

"내일은 다를거야. (너가 아니라 나)"

"슬럼프가 있을수도 있지. (너가 아니라 나)"


다음날 저녁 어김없이 아이는 또 기타를 꺼낸다.

어제처럼 또 안될까봐 아이는 긴장이 됐을것이다.

아이가 연습을 시작하기 직전

세상이 안전한지 확인하듯이 나를 부른다.


"엄마 거기 머리끈 있어?"


노트북에서 눈도 떼지 않고 저기있다고 손으로 가리키며 네가 직접 가져다 쓰라는 무언의 에너지를 보낼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제와 다르게 해봐야지'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여기에는 없지만 저기에는 있지~"

방긋 웃으며 호다닥 아이에게 머리끈을 가져다 건낸다.

아이도 방긋 웃으며 머리끈을 받아 머리를 묶는다.

순간 연결됨이, 에너지장이 어제와는 다름이 느껴진다.


아이가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며 조금 앉아있다가 나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기타연습을 끝낸 아이가 나에게 와서 말한다.


"엄마! 오늘은 안되던 것도 잘되고 연습이 잘됐어!

어제는 정말 슬럼프였나봐.

나 할수 있을것 같아!"




사랑 받는 아이는 뭐든 잘 할수 있는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고

그래서 조금 틀려도 계속할 힘이 난다.

결국 잘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려움이나 분노를 받은 아이는 위축되기에 힘이 부족하다.

뭔가를 할시간에 전전긍긍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


이제 너무 많이 경험해서 확인할 필요도 없이 자명한 사실이다.


아이가 엄마의 의식수준에 크게 영향받는 다는 것은 부담스러울수도 있다.

죄책감이 느껴질수도 있다.

하지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조금만 변해도 아이는 나와는 다른 삶을 살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희망이 있는 것이다.

남의 손이 아닌 바로 나에게.


천국으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지체하며 낮은 에너지에 아이와 함께 머물어도 된다.


하지만 적어도 방향타를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은 기쁜일이다.

지옥을 향해 한참 왔더라도

나는 언제든 천국쪽으로 그것을 돌릴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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