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라 봄 Oct 09. 2024

이스오타 : 수고했어 회사, 고생했지 나의 회사

중소기업 5년 ~ 11년의 이야기

직책 요약 - 사원 : SW(S), 대리 : DR(D), 과장 : GJ(G), 차장 : CJ(C), 부장 : BJ(B)



또다시 파벌


사채업자가 회사를 장악하던 시점에서 무작위로 각 팀별로 한 명 두 명 자르기 시작했다.


나는 B2B운영파트에서 대출보증 업무 전산 실무 담당자였지만 막내 중에 한 명인 박D가 퇴사를 하면서 담보 보증 업무도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회사가 망해가고 있는 와중에 나는 일이 두 배가 늘었다. 


한창 잘 나갈 때 12명 이하던 업무를 나 혼자 하게 된 것이다. 


나의 파트장 영 G는 신입에서 대리 때까지 정말 사람이 멍청하다고 느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해서 그런지 과장에 진급하면서 연타가 왔는지 일정관리 빼고는 모든 개발과 운영에 손을 떼었다. 


거의 4년간 아무것도 안 했고 나만 죽어라 일을 했다. 


물론 상대적인 거겠지만 나 또한 일은 했지만 감당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B2B운영파트는 고정적으로 매달 억 단위 수수료 수익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잘릴 일은 없었다. 


문제는 개발 SI 파트였다. 


회사 분위기상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약해서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붕 떠버렸다. 


동G, 이D가 퇴사하고 새로 온 유D, 그리고 우리 개발팀 팀장이신 민B 셋이서 따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B2B운영파트인 영G와 나, 그리고 최G(나의 선배) 팀장님을 존경하고 따랐기 때문에 따로 뭔가 하고 있다는 얘기에 배신감이 들었다. 


왜 같은 개발 SI 파트인 최G는 뺏는지, 우리와도 상의해도 되는 거 아닌지


점점 감정의 골을 깊어지고 어느 날 팀 회식을 할 때 조용한 적막이 흘렀다. 


회식이 끝나고 전철역으로 걸어가는 중에 영G가 부장님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점점 언성이 높아지면서 길거리에서 민B와 영G의 말다툼은 점점 심해졌다. 


민B 입장에선 "B2B운영파트는 내일 당장 잘릴 일이 없지만 우린 아니다."라는 입장이었는데 사업 구상하는 멤버에서 최G를 뺀 것도 이해가 안 가고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란 생각이지만 그때는 다들 장기근속 10년째이고 회사가 망하면 막막함과 좌절감이 느껴질 때였다. 


회식 이후 사이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개발팀이 완전히 두개로 쪼개져 버린 것 같았다.  



인수합병, 흡수합병


경쟁사에서 인수합병? 흡수합병 얘기가 들려왔다. 


회사가 나락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나름 업계 1위였고, 대출보증은 16개 은행을 연동한 상태고 담보 보증은 웬만한 대기업 20개를 연동한 상태였기 때문에 경쟁사 입장에선 기존 우리와 연동한 대기업 10개만 가져와도 거래 수수료로 따져도 충분한 이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업 관리팀 최B가 이사로 진급하면서 인수합병에 관하여 회의실에 나를 불렀다. 


"경쟁사에서 합병 얘기가 나왔는데 전 직원 중에 15명만 뽑아서 제안할 생각이다. 일단 전산 담당자로 네가 대출, 담보 다 할 줄 알기 때문에 너는 꼭 필요하다. 갈 생각 있냐?"라는 말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저는 안 갑니다. 저희 팀 사원인 이S(퇴사한 이D가 아님, 새로 온 신입) 데려가세요. 아무리 그래도 업계 1위를 7년을 했는데 허리 굽히고 들어가기 싫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니 최 이사는 역정을 내면서 


"야 너 그거 젊은 날의 객기야!!! 처자식 생각 안 하냐?! 생각 좀 하고 말해!!"라고 했다.


나는 "전 아무리 설득하셔도 안 갑니다. 그러니 우리 팀 과장급들 한 명씩 불러서 제안해 보세요" 하고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에서 나왔다.


회사가 이지경인데 눈치 볼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최 이사가 얘기했던 말이 가슴에 박힌 것 같다. 


그때 이후로 "객기"라는 단어가 너무 싫어졌다.


예전에 보았던 글귀가 생각이 났었다. 



동G는 갈 생각이 있었지만 B2B운영 업무 안 한 지 너무 오래되었고, 담보 보증 업무를 모른다는 이유로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그럴 바엔 이S를 리스트에 올렸다. 


최 이사는 합병 인원 추리는 게 무슨 권력인 거처럼 사람들을 막대했고, 하지만 콜센터나 다른 팀 사람들은 최 이사에게 온갖 아부와 아첨을 부렸다. 


이해는 갔다. 


여기서 살아남아야 했기에, 하지만 이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결국 리스트에 핵심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합병건은 무산되었다.


은근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분들도 더러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내가 미안할 일은 아니지만 나 때문인가란 생각도 들었다.



신뢰가 없다.


최G(나의 선배)가 퇴사를 결심했다. 


기존 우리 독수리 오형제 첫째인 진D 처럼 사이버수사대 경력 채용에 도전하였다. 


정말 안타깝게도 필기, 체력 모두 합격하고 면접에서 최종 불합격을 하였다. 


최G는 1년에 해보자는 마음에 퇴사를 하고 다음 해에 사이버수사대 경력 채용에 합격하여 경찰이 되었다. 


최G가 퇴사하고 나서 몇 달 되지도 않은 무렵 우리 파트장인 영G도 퇴사를 하였다.


영G는 와이프 인맥으로 나름 규모가 있는 회사 팀장으로 이직을 하였다. 


10년간 최G 다음으로 제일 친했던 영G였지만 4년간 나만 고생한 거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제일 나쁜 사람이었다. 


개발팀 신입부터 과장까지 함께했던 두 명도 나가버리고 정말 남은 인력도 없었다. 


항상 혼자 나 혼자만 운영 업무하면서 바빴던 것 같다. 


이제 나밖에 없으니 민B가 같이 사업 아이템을 찾아보자고 했다.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선결제 사업에 관해서 투자자 설명해도 해봤지만 쩐(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실패하고, 학원 쪽도 알아보았고, 실버산업 관련하여 지팡이 디자인해서 공장도 알아보았다.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은 건 다 알아보았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얘기가 나온 게 PG 안에 작은 PG 사업 아이템이었다. 


PG(Payment Gateway) 쉽게 생각하면 이니시스 같은 결재 대행사의 구조에서 승인 대사, 정산 대사하는 업무가 복잡한데 이 부분을 우리가 정리해 주는 사업을 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구현해야 되는 부분은 웹크롤링(스크린스크래핑)이라는 기능이었다. 


해당 사이트에 로그인했다 치고 특정 메뉴에서 조회된 결괏값을 가져오는 기능이었다. 


계정 정보를 받아서 여기저기 사이트에서 웹 크롤링을 해서 데이터로 만들어서 적재하여 통계를 내서 보여주면서 금액적인 부분에 대사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구상하였다. 


사업 아이템은 그럴싸했다. 


하지만 사람이 문제였다. 


이전 글을 보면 민B가 최초로 입사했을 때 SI, SM 팀을 쪼개려고 했을 때 동G가 이B에게 쪼르르 일러바쳐서 민B가 퇴사한 적이 있었다. 


동G는 개발 능력이 좋은 게 아니라 여태 처세술 하나로 과장까지 올라왔다. 


민B의 자식들(아들 둘) 생일까지 챙길 정도로 열심히였다.


비하하는 게 아니다. 


충분히 인정하는 부분이고 그 사람이 사회생활하는 방법이었다. 


민B와 둘이 술을 마시면 "동G가 잘해줄까? 뒤통수 한번 맞아봤으니 대안이 필요해요"라고 하고


동G랑 둘이 술을 마시면 "민B가 나를 믿어줄까? 예전에 뒤통수 친 적이 있어서 날 계속 안고 가줄까?" 이런 말을


술을 마실 때마다 서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말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일단 나는 웹 크롤링 환경 설정을 하고 특정 사이트 하나를 뚫는데 성공했다. 


동G가 1년 동안 못한 걸 나는 일주일 만에 해냈다.


하지만 기존에 운영 업무도 바쁜데 이러다가 나 혼자 다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계속 고민하다가 와이프에게 고민을 얘기하니 와이프는


"잘 돼도 문제 안되면 더 문제 같아, 잘되면 위에 두 명 떠받들고 가는 거고 굳이 오빠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어. 서로 불신만 하는데 밑에서 고생하는 건 아닌 것 같아. 퇴사하자"라고 말했다.


와이프 말에 오랫동안 했던 고민은 사라졌고 퇴사를 결심했다. 


하지만 기존 내가 운영하고 있는 대출보증, 담보 보증 업무 사이즈가 사원급이 감당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었다. 


그래서 10년 동안 나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이 회사에 선물을 주고 가자란 생각을 했다. 



업무 자동화


예전에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본 적이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60617005000091

억대연봉 美 프로그래머 "컴퓨터에 6년간 일 맡기고 놀았다" | 연합뉴스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임화섭 특파원 = 업무를 자동화해 컴퓨터에 맡기고 본인은 사무실에 출근해서 놀다가 6년만에 들통나는 바람에 해고됐다는 ...


미국에 개발자가 자기 업무를 자동화 해놓고 6년 동안 놀다가 걸려서 해고되었다는 기사였다. 


기사 내용 자체가 흥미로워서 "자동화"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퇴사하기 전 내가 회사에 선물하려고 한 것은 담보 보증 업무 자동화였다.


대출보증은 은행 인터넷뱅킹에서 거래가 일어나야 끝나기 때문에 자동화는 불가하고 담보 보증은 대기업 데이터를 받아서 우리가 기금에 매매정보, 결재정보를 전송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자동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달 동안 고민하면서 실행에 옮겼다. 


DB 스케줄 7개, 윈도우 서버 예약된 작업 스케줄 4개를 만들었다.


DB 스케줄 안에 돌아가는 SP프로시져는 18개 정도 만들고


속도 이슈가 있는 부분은 별도 5개 DB 함수로 만들고  


전송 대상에 대한 성공, 실패 여부와 월별, 주별 통계를 한눈에 확인하기 위한 통계 테이블도 설계하여 적재하였다.


전송 시간대는 오후 8시쯤, 변동 사항에 대한 데이터 업데이트 작업을 시작으로


오후 9시부터 순차적으로 매매정보, 결재 정보를 새벽 시간 동안 전송하고 


다음날 오전 6시 반이면 전송 중지되도록 (Thread Kill 사용)


그리고 금요일이면 주말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 전송하여 월요일 오전 6시 반에 중지되도록 설정하였다.


구현하면서 막히는 부분도 많았다.


담보 보증 보증서 자체가 1년 단위로 연장되기 때문에  


거래일자가 만료된 이전 보증서의 시작일 종료일에 물려있는 건이 있으면, 보증서를 강제로 유효하게 살려놓고 진행을 해야 전송할 때 보증서 기간 체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차피 자동화인데 보증서 기간 체크를 뺄 생각도 있었지만, 관리자 페이지에서 담보 보증 업무 담당자가 수기로 전송하는 로직이 있어서 제외하기엔 수기 전송 부분도 손을 봐야 해서 전송할 때만 잠시 살려놓는 방향으로 갔다.  


전송 작업 자체가 끝나는 시점에 임시로 유효하게 살려놓은 보증서는 다시 만료 처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윈도우 스케줄러 bat 파일이 돌때 시간이 -7시간인가 잘못 인식하는 이슈 때문에 데이터가 전송시간 설정이 잘못되어 업무시간에도 데이터가 나가는 경우가 발생하여 전송된 거를 다시 다 찾아서 취소를 보내고 다시 보내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한 달간 모니터링하면서 통계도 내보면서 안정화를 다 하고  


 밑에 이S에게 인수인계를 해줬다.



퇴사


드디어 퇴사하는 날, 이미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한 상황이라 몇몇 분에게만 그동안 감사했다는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민B에게는 


"저는 퇴사하지만 동G 한번 믿어보세요"라고 했다. 


민B는 같이 하자고 했는데 내가 나가는 게 배신감을 느꼈는지


"좋게 보낼 때 조용히 나가세요.."라고 하셨다. 


내가 항상 존경하던 민B와 마무리가 안 좋았던 것 같다. 


퇴사하고도 연락을 간간이 드렸지만 퉁명스러운 말투에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한 회사에 10년 동안 내 모든 열정과 시간, 체력을 갈아 넣으면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군대 2년 다녀와도 평생 이야깃거리가 무수히 많은데, 


10년간 한 회사에 있으면서 등장인물도 많이 생략했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제일 기억이 많이 남는 일화들만 적은 것 같다. 


사내커플로 4년간 연애하면서 상견례 날짜 잡고 이별한 아픈 추억도 있다. ㅠㅠ


그리고 우리 팀 전통 중에 신규 인원은 직책 상관없이 회식 때 무조건 개발팀 사람들이 담아주는 대왕 쌈을 우걱우걱 먹는 전통도 있다. 


우연히 영화 "무도 실무관" 에서 고깃집에서 쌈 싸주는 걸 보니 생각이 났다.


마지막 글 제목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유 노래인 "첫 이별 그날 밤"의 가사 중 


"수고했어 사랑, 고생했지 나의 사랑" 이란 부분을 바꿔보았다.



이스오타를 마치며


그저 평범한 개발자의 중소기업 일화들로 개발자판 미생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이스오타 라고 정한건 기억에 남는 큰 실수인데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라서 지금도 가끔 "스토어"라는 단어만 보면 문득 떠오르는 단어여서 정했습니다. 


과거를 되짚어보면서 초심을 잃지 말자는 다짐도 생기면서 글 쓰는 거 자체가 너무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애들 제우고 새벽에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다음날 일할 때 골골대던 모습도 생각이 나고 가끔 초심 잃었을 때 처음부터 읽어봐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있습니다.


저의 변변치 않은 글에 라이킷 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스오타 : "는 마무리하고 브런치 작가 신청을 넣었을 때 작성하였던 저의 프리랜서 일화인 "자유는 무슨 : "으로 계속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