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어른들은 어린아이를 지칭할 때 핏덩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비유적으로 쓰는 말임을 알지만 피라는 단어를 아기를 지칭하는데 쓴다니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괜스레 반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내의 출산과 함께 180도 바뀌게 됐다.
새벽부터 시작된 아내의 진통은 어느덧 저녁 6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첫 내진 시 주치의는 저녁은 편하게 드실 수 있겠다며 빠른 출산을 기대하게 했으나 예상과 달리 인내의 시간은 계속 이어졌다. 통증에 신음하는 아내가 당연히 가장 힘들겠지만 그걸 옆에서 12시간째 지켜보고 있는 나 또한 속이 말이 아니었다. 아내의 표정이 찡그려질 때면 괜히 아이를 갖기로 한 건가라는 후회가 밀려오기까지 했다. 물리적인 고통과 복잡한 심경을 뒤로한 채 마음가짐을 다잡은 지 10분 후, 갑자기 아내는 분만실로 옮겨졌다. 드디어 때가 된 것이다.
아내를 먼저 분만실에 보내고 나니 초조함이 몰려왔다. 의료진이 바빠서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보호자에게 출산 과정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었다. 남편은 계속 기다리기만 하는 건지, 분만장에 출입을 시켜주는지 등 궁금증 투성이었으나 혹여나 아내에게 가야 할 의료진의 의식이 분산될까 싶어 죄없는 손톱만 물어뜯었다. 아내 없이 입원실에 대기한 지 20분쯤 지났을까? 간호사 한 명이 다급히 다가와 바로 분만실로 가라는 말을 전했다.
분만실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풍경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의학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샤프한 느낌보다는 동네 의원급 처치실같이 꽤나 사람냄새가 나는 모양새였다. 아내는 나를 볼 틈도 없이 출산을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아내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마주하니 또 다시 죄책감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주치의가 의자 밑에서 무언가를 쑥 들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란 것도 잠시, 핏덩이 하나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 핏덩이는 큰 울음소리와 손짓, 발짓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분명 수 분전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었는데 그 핏덩이가 마치 빗물을 쓸어 내리는 와이퍼처럼 복잡한 내 머릿속을 한 번에 씻겨 줬다. 옆을 돌아보니 안도의 눈물을 흘리는 아내, 큰 소리로 우는 아들, 그 모습을 보고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나까지...이렇게 울보 3인방은 한 가족이 되었다.
이후 아기 신체확인, 탯줄 절단 등 절차를 밟고 먼저 분만실 밖으로 이동했다. 복도에 앉아 출산 상황을 상기하던 중 핏덩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어른들이 입에 올릴 때마다 괜히 싫었던 그 단어를 내가 내 아이를 처음으로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다. 그제서야 핏덩이라는 말은 아이를 처음 맞이하는 부모의 심경을 원초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이해가 생겼다. 역시 사람은 경험한 만큼 보인다는 깨달음과 함께 아빠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