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날로그

by 배준현

노량진 골목에서 친구 진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이 대략 4시였나 그랬는데,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 가방에 있는 전화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시간을 확인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나는 속으로만 시간을 예상하면서 북적이는 역을 빠져나왔다. 지상에 올라와 좁은 골목길을 지나는데 문득 시곗방이 보였다. 나는 현재 시간을 확인하려고 가게 앞을 기웃거렸다. 4시가 좀 안 됐나 싶다가도 어떤 건 5시 다른 건 7시였다. 오전, 오후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헷갈리고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몇 초를 더 두리번거리다 생각했다. ‘아, 시계가 많다고 시간을 알 수 있는 건 아니구나!’ 그리고는 가방 속 전화기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괴테의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임창용 선수의 어록이라 믿었다. 남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내 갈 길 가겠다는 의지의 고급진 표명이다. 어쨌든 괴테의 명언으로 무장한 임창용 선수는 한국 나이 33살에 일본 프로야구 MVP를 거머쥐고 미국 프로야구인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 자신 만의 시간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던 그의 방향성에 많은 이들이 용기와 힘을 냈던 기억이 제법 또렷하다. 왜 갑자기 괴테의 명언이 생각났을까. 이유는 모르지만 노량진 골목의 그 많던 시계 앞에서 나는 당시 출처도 불분명한 이 말이 떠올랐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곗방에 시계가 정말 많았다. 전자시계, 뻐꾸기시계, 각종 알람시계. 그렇지만 어느 하나 내게 제대로 된 시간을 알려주지는 못했다. 괴테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양한 시간의 속도감은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시간은 없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전자시계다. 다양한 시계들 중에 전자시계는 내 시선을 단박에 빼앗았다.


전자시계는 보는 순간 시간이 머릿속에 딱 꽂혔다. 반면 아날로그시계는 오래 봐야 시간의 맥락이 잡힌다. 시간 파악이 '고관여 정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의 관여도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건 집중해야 보이지만 어떤 건 그냥 자극과 반응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대한 나만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았다. 디지털은 즉각적이고 아날로그는 좀 더 집중을 요한다고. 그래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시인의 말도 아날로그적 메시지가 된다. 아날로그적 감성이 왠지 모르게 따뜻한 이유다. 디지털 앞에 서면 그냥 투입-산출이 돼버리는 내 모습에서 이진법의 세계가 그대로 느껴질 때가 있다. 차가운 A.I.처럼 이진법의 프로토콜에 나를 숨길 때도 있다. 인간 이하의 온도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며 상대의 반응 시간에 갈수록 민감해진다. 심지어 딕펑스의 노래 제목은 ‘그 일(1)’이다. 종종 이용하는 키오스크도 마찬가지다. 편리할 때도 있지만 그냥 점원에게 '이거요.' 하고 결제하면 될 일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놓았다. 사이드 메뉴, 곱빼기 등등 자잘한 걸 다 확인하다 보면 뭔가 피로감이 몰려온다. 옆 기계의 어른들을 보면 슬퍼질 때도 있다. 모르면 그냥 도태된다. 물론 나보다 더 기계를 잘 다루는 어른들을 보면 얄미울 때도 가끔 있다.


제시된 틀 안에서 입력-산출만을 되풀이하는 디지털 세계의 나를 느낀다. 기계뿐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 2~4년, 군대 2년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이 체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군 생활을 남자의 2년 보다 더 오래 하는 여성도 있고 취업을 일찍 해 대학생활을 단축하는 경우도 있다.) 저기서 끝이 아니다. 빠르면 20대 중후반 늦으면 서른 초중반이 되면 직장과 결혼이라는 다음 퀘스트가 또 열린다. 미션에 실패하면 짜게 식은 주변의 언어 마사지가 우리를 기다린다. 어쩌면 삶 자체가 먼저 디지털화돼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다들 두리번거리며 산다. 다른 사람 시계는 몇 시인지 내 시계는 잘 가고 있는지를 걱정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확실한 시간은 알 수 없다. 시계가 많다고 해서 시간이 정확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할 순 있어도 늘 해석이 필요하다. 결국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었나?


(!) 아 근데, 저 멋진 말에 딴지 걸긴 싫지만 사실 저 문장에는 이미 역전앞, 족발과 같은 이중 의미가 담겨 있다. 이공계식 개그긴 하지만 속도에는 이미 속력과 방향을 가지고 있는 벡터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생은 ‘속력이 아니라 방향이다’가 더 적확한 말이다. 감성의 온도가 짜게 식는다. 임창용 선수에게도, 괴테에게도 미안해진다. 이래서 나는 공대식 개그가 재미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