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화되는 것들

반가운 마음에 들어선 구둣방에서 먹먹함을 느꼈다.

by 손서율


길을 걷다가 오랜만에 구둣방을 발견했다.

마침 하이힐 밑창이 닳았는데 반가운 마음에 주저 없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오세요 뭐 하시게?"


"밑창이 닳아서요"


나는 슬리퍼로 갈아 신고 아저씨에게 하이힐을 내어준 후 난로 앞에 앉아 손을 녹였다.




"밑창이 많이 닳았네, 그래도 가죽이 좋아서 버티고 있었던 거야"


"구둣방을 찾기 힘들어서 계속 못 가고 있었어요"


"요즘 구둣방이 많이 없어져서 찾기 힘들긴 해 대부분 그만뒀거든"


"왜요? 장사가 잘 안되세요?"


"그럼.. 나도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사는데"


"에이~ 그래도 삼성역 한복판에서 하시는데 돈 많이 버시잖아요 여기 회사도 많은데"


"아니야, 정말 수위 월급이 나은 수준이야.. 아가씨가 몰라서 그래"


"코로나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응 코로나 영향도 있지 다들 재택근무하느라 구두 신고 나올 일이 별로 없잖아"


"아 맞네.. 재택근무 영향을 받으시겠네요.."


"응 그렇지, 그리고 요즘은 회사원들이 정장을 안 입더라고?"


"맞아요 요즘 대부분 회사들이 캐주얼 복장으로 제도를 바꿨어요"


"그래.. 다들 스니커즈 신고 다니느라 구두를 안 신잖아"


"와.. 그게 타격이 갈지는 상상도 못했네요 저한테는 참 좋은 제도였는데.."




구둣방 아저씨는 커다란 고무판을 가져와서 구두 밑창에 대어보더니 C자 모형의 칼을 꺼내 시원시원하게 자르기 시작했다.


구두약이 잔뜩 묻은 투박한 그의 손에서 어느새 구두 모양에 딱 맞게 재단된 고무 밑창이 완성되었는데 대충대충 하는 것 같은데도 결과물이 완벽한 걸 보니 오랜 내공을 가진 장인이 틀림없었다.


나는 아저씨의 현란한 손기술을 넋 놓고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야... 어떻게 그렇게 뚝딱뚝딱하세요?"


"평생을 해왔는데 그럼~"


"수입이 별로 없으신데.. 구둣방은 계속 운영하실 거예요?"


"나도 직업을 바꿀까 생각도 해봤지 그런데 내 나이에 평생 해온 게 이거뿐이라 이젠 바꿀 수도 없어"


"참.. 오랫동안 성실하게 하셨는데.. 상황이 그렇네요"


"세상이 바뀌니 퇴화되는 것도 있는거지.. 내가 마지막 끝물일 거야"


세상이 바뀌니 퇴화되는 것들이라.. 아저씨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거대한 전광판에서는 화려한 색채의 3D 광고들이 나오고 있고, 차도에는 멋진 외제차들이 빽빽하게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고, 명품 스니커즈를 신은 사람들이 바삐 걸어 다니는 삼성역 한복판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1평짜리 외딴섬에 나는 앉아 있있다.


그곳을 지키는 구둣방 아저씨는 낡은 난로가 내뿜는 온기에 기대어 지금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뚱뚱한 소형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고 계셨는데 뉴스에서는 연이어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오랜만에 온 손님과의 대화가 즐거우신지 이미 광이 나는 구두를 한참 동안 닦고 또 닦으시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자~ 다 됐어 아가씨"


"세상에.. 새로 산 것 같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세상은 무섭게도 빠르게 변한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사무실 사람들이 파티션 옆에 구두를 내어놓으면 매일 정해진 시간에 구둣방 아저씨가 나타나 구두들을 거두어 가셨고 얼마 뒤 반짝반짝 광이 나는 새 구두로 돌려놓고 사라지시는 요정 같은 존재였는데


4-5년 전부터 기업들은 하나둘씩 캐주얼 데이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매주 수요일마다 청바지를 입을 수 있는 캐주얼 데이가 생겼고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전일 자유 복장으로 바뀌면서 더 이상 구두를 신을 필요가 없어졌다.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회사를 갈 수 있다니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모두가 환호할 때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시던 구둣방 아저씨는 어느 순간부터 볼 수 없게 되었다.


슬프게도 그게 언제부터인지조차.. 우리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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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화되는 것들은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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