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은 그들의 아침 산책에 대한 고찰
동이 트지도 않은 이른 겨울 아침
쌀쌀한 바람에 코트를 여미며 밖으로 나선다.
아파트에서 나와 딱 열 걸음만 더 걷다 보면 이제 할아버지와 말티즈가 등장할 거다.
역시, 오늘도 오전 6:38분 단지 앞 놀이터 모퉁이에서 할아버지와 말티즈를 마주쳤다.
귀도리가 달린 방한용 모자를 쓰시고 단단하게 매듭지은 목도리를 두른 할아버지 옆에는 앙증맞은 모자가 달린 강아지용 패딩을 입고 폭신하고 따뜻해 보이는 털신발을 신은 말티즈 한 마리가 내 앞을 지나간다.
이 귀여운 커플은 하나의 끈에 서로를 의지한 채 나란히 걸어가는데 엉성하지만 나름 힘차게 걷는 정정한 걸음걸이마저 똑 닮았다.
나야 정해진 출근 시간에 맞추다 보면 분 단위로 정확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자의적으로 매일 오전 6:38분에 같은 장소에서 산책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 참으로 기특(?)하다.
어느 날은 비 내리는 아침에 마주친 할아버지와 말티즈를 보고 귀여워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우비를 입고 모자를 뒤집어쓰신 할아버지가 커다란 우산을 들고 걸어오시는데 그 밑에는 노란색 강아지용 우비를 입고 모자를 야무지게 쓴 말티즈가 서 있었다. 둘은 한껏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정정한 걸음걸이로 나란히 빗 속을 걸었다.
할아버지와 말티즈에게 아침 산책이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무언의 약속 같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한결같은 것들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만들어낸 약속을 한결같이 지켜내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삶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노견이 되어 푸석푸석해진 털들을 가지런히 잘 빚어놓아 항상 단정하게 관리가 되어있고 눈 주위를 감싸고 있는 하얀 털에는 희미한 눈물자국조차 찾아볼 수 없이 말끔하다.
날씨가 추운 날엔 솜이불처럼 따뜻한 패딩과 폭신폭신한 털 신발을 신기고 비가 오는 날엔 우비를 목덜미까지 야무지게 채우고 귀가 빠져나오지 않게 모자를 단단히 씌운 뒤 방수가 되는 반질반질한 신발을 신긴다.
이렇게 언제나 완벽하게 관리된 채로 매일 아침 할아버지를 따라나서는 말티즈를 보면 말티즈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애정을 넘어서서 할아버지 본인의 삶에 대한 애정까지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삶에 애정을 가지면 나를 둘러싼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기 시작한다. 내가 머무르는 공간, 내가 매일 쓰는 물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케어하는 반려동물
이 모든 것들 또한 자신의 삶의 일부이니까
사랑을 담아 세심하게 보살피게 된다.
예전에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자신이 키우는 잉글리시 쉽독이 버거워져 좁은 베란다에서 키운다고 했다. 산책은 일주일에 한 번만 시킨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단번에 그와의 에프터를 접었다.
그의 사람이 된다면 얼마 안 가 6일 내내 좁은 베란다에 갇혀있는 가여운 잉글리시 쉽독과 같은 신세가 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삶 속에 있는 것들에게 어떤 대우를 하는지 살펴보면 하나만 봐도 열을 알 수 있다.
애정을 담아 자신의 삶을 가꾸는 행위는 마치 식당을 운영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어떤 식당이든 단 하루만 지켜보아도 사장이 자신의 가게에 대해 얼마만큼의 애정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오픈 시간에 맞추어 재료 준비를 완벽하게 해 놓기 위해 매일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사장님이 있고, 본인의 기상 시간에 따라 매번 오픈 시간이 달라지는 사장님도 있다.
항상 신선한 재료를 공수하기 위해서 매일 새벽마다 거래처에 들러 재료를 사 오는 사장님이 있고, 번거로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부분 미리 얼려둔 재료를 쓰는 사장님도 있다.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 직원을 고용해도 매일 주방에 들어가 조리과정을 체크하는 사장님이 있고, 직원을 고용하고부터는 카운터만 체크하는 사장님도 있다.
이 두 가게의 차이점은 "한결같음을 유지하는가"이다.
확실히 자신의 가게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이 만들어낸 약속을 지켜내며 한결같은 맛을 유지할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의 삶에 애정이 담긴다면 한결같이 꾸준해진다.
매일 아침 6:38분에 놀이터에서 산책을 즐기는 말티즈를 흐뭇하게 내려다보시는 할아버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