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이 된 아들(열한 번째 이야기)
지난여름의 사건을 겪고 권유받았던 종합심리검사.
재판 전 당장 검사를 받아서 결과를 판사님께 제출하려고 했는데 종합심리검사의 대기는 각 기관마다 엄청났고, 심지어 가까운 곳은 1년 정도는 대기로 걸어둬야 한다고 했다.
정신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가진 선생님이 계신 곳을 찾았고, 그나마 좀 빠른 곳으로 예약을 잡았다.
긴 시간을 기다렸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종합심리검사, 일명 풀배터리 검사라고 하는 이 검사는 아이의 심리상태, 현재의 감정과 지능 등을 총괄적으로 평가하는 검사이다.
총 7종류의 검사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 웩슬러 지능검사 - 언어의 이해 능력과 추론 능력, 처리 속도, 작업 기억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검사다.
지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여 수치화해 주는 검사 방법이라 잠재 학습능력과 행동 특성 모두를 파악할 수 있다.
2. 다면적 인성검사 - MMPI라고도 하는 검사로 기본적인 성격과 정서 상태를 확인하는 검사다.
현재 정서 상태와 주변 상황에 대한 적응 수준을 다차원적으로 평가하여 나태는 검사 항목이다.
3. 문장 완성검사 - 검사지에서 미완성된 문장을 제시하고 나머지 부분을 채워 넣게 하는 검사로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심리 상태와 함께 잠재의식 속의 생각까지 확인해 보는 검사 방법이다.
4. 그림검사 - 종이 한 장을 주고 집, 나무, 사람을 직접 그려보도록 하는 검사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사물과 사물들 사이의 위치 관계를 분석하여 현재 심리 상태와 성격, 대인 관계 상황에 대한 파악이 가능한 검사다.
5. 로샤검사 - 특정 형태로 잉크 반점이 찍혀있는 카드를 보고 연상되는 사물이나 생각을 이야기하도록 하는 검사. 인지적 정서적 성향을 파악하는 검사
6. 벤더게슈탈트검사 - 몇 가지 기하학적 패턴이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며 따라 그리는 검사.
발달적 성숙 정도를 파악하고 지각 왜곡을 측정하는 검사
7. 동적 가족화검사 - 종이에 가족과 자신의 행동을 그린 후 설명해 보는 검사, 가족 내에서 본인이 느끼는 위치와 주관적 감정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보는 검사
보통 아이와 검사 후에 부모와 상담이 이어진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슈가 생겨서 왔고, 내가 가기 전 오게 된 자세한 상황을 글로 적어서 갔더니 선생님이 부모상담 후에 아이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하셨다.
간단한 상황설명과 상담이 이어졌고, 다음으로 아이 검사가 진행됐다.
그사이 나도 부모양육검사와 심리검사를 같이 진행했다. 엄청나게 긴 문항의 시험지를 시간 내에 풀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우리는 장장 5시간을 검사와 상담에 쏟아부었다.
모든 검사가 끝났고, 선생님은 아이가 상당히 독특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우선 상상력이 너무나 풍부하고, 지적인 문제는 없어 보이며, 말도 능수능란하게 너무 잘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낮은 자존감을 보이고, 누나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꼭 누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투영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더 분석을 해봐야 알겠지만 보통의 아이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라고 하셨다.
굉장히 밝은 이면 뒤에 어두움이 있고, 순한 면모뒤에 예민함이 있으며, 능수능란한 말솜씨뒤에 어눌함을 가졌다.
그에 반해 엄마는 예민하고, 정도를 걸어야 하는 사람이며, 정해진 틀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 틀밖으로 나가는 아들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그 힘듦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져 스트레스 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안전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허용적인 편이라고 표현하는 엄마는 실상은 통제가 많은 편이며, 아이가 통제를 따르지 않으면 훈육하는 방식이 안전에 관한 것 외에 허용적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을 정도록 통제적인 편이다.
돌아오는 길에 나의 양육방식과 양육태도에 대해 돌아봤다.
나는 정말 허용적이라고 말하면서 통제하고 있었던가....
그 통제는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고 실상은 내가 안심하려는 욕심 때문이었던가...
올봄 아이가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갑자기 파자마파티를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5명의 친구들이 한 아이의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그곳은 친구의 집이 아닌, 외할머니 집이었고, 부모님 대신 조부모님이 밤새 아이들을 돌봐줄 거라고 했다.
나는 미리 약속된 것이 아니었고, 4학년 아이를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물론 조부모님이 계시긴 했지만...) 남의 집에서 재운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아이에게 가서 노는 건 좋으나 9시에 데리러 가겠다고 했고, 9시에 나온 아이는 친구들은 노는데 본인만 나왔다며 오는 길 내도록 울었다.
그래서 아이 마음을 달래줘야겠다는 마음에 다음에 우리 집에서 파자마파티를 하자고 제안했다.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5명의 아이들이 우리 집으로 왔고, 낮부터 밤까지 함께했다.
게임이 되지 않는 공신폰을 사용하는 아들과 다르게 친구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었고, 한집에 모여서도 각자의 게임에 열중했다. 중간중간에 축구도 조금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그러긴 했지만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있었다.
친구들 하는 걸 구경하는 아들에게 집에 있는 공폰을 손에 쥐어줬고 아들도 게임에 참여했다.
저녁까지 배부르게 먹은 상황에 10시가 넘었는데 아이들이 편의점에 가서 불닭 볶음면을 사 와서 먹어야겠다길래 너무 늦은 시간에 나가는 것도 위험하고 지금 먹는 것도 별로 좋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유독 한 아이가 막무가내로 나가겠다고 했다.
안전을 위해 내가 사다 주겠다고 했더니 정작 먹겠다는 아이는 그 아이 혼자였고, 라면을 다 먹지도 못했다.
12시가 다 돼 가는데 아이들은 게임에 빠져있다.
지난번 파자마파티땐 새벽 4시까지 게임을 하고 잠들었다며 여긴 왜 안되냐고 불닭 볶음면을 먹었던 아이가 불만을 계속 표했다.
우리 집은 우리 집만의 규칙이 있다. 우리 집은 보통 10시 전에 잔다. 그렇지만 오늘은 12시까지 봐준 거다. 12시에 불을 끄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애들이 웅성웅성 불만을 표현했지만 12시에 재워야 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날이 밝았고, 아이들은 돌아갔다.
아이들이 말도 잘 안 듣고, 뭔가 나는 나쁜 사람이 된 것 같고... 다시는 파자마파티는 하고 싶지 않다고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이 사건을 선생님은 지적했다.
파자마 파티를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가끔 한 번씩 하는 거고, 그날 하루는 아이를 풀어줄 수 있지 않았냐고. 또 힘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자주는 하지 말자고 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극단적으로 파자마파티를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표현을 썼다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비슷한 연령의 아이를 키우는 회사동료에게 물었다.
뭐? 핸드폰이 공신폰이라고? 그것부터 이상해.
애들 다 가지고 있는데 왜 스마트폰을 안 사줬어? 어쩔 수 없이 언젠가 노출은 될 텐데 그냥 노출시키고 적당히 통제하면서 자율성을 조절해 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 의견에 동참한다고 했다.
하루쯤은 그냥 아이들 하는 대로 내버려 두지 뭘 그렇게 간섭하고 통제하냐고...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정말 내가 고리타분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