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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보르미 Oct 13. 2024

10분 만에 끝난 재판

성폭력범이 된 아들(열 번째 이야기)

차를 타고 오는 길에 혹시나 해서 우리를 재판하는 판사님을 검색창에서 검색해 봤었다.

다행히 판사님은 올해의 우수법관으로 뽑히신 분이셨다.

소송 진행 시 친절하고 정중하면서 품위 있는 언행으로 당사자들의 의견을 경청할 뿐 아니라 사건의 쟁점 등을 잘 파악하는 등 소송지휘권을 적절히 행사했다고 평가받은 분이라 우리 이야기도 잘 들어주실 것만 같아서 긴장됐던 마음이 조금 풀리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속으로 외쳤다.

검색을 통해 사진까지 확인하고 들어갔는데...

앉아 계신 분은 다른 분이셨다^^;

아마 동명이인의 다른 판사님도 계셨나 보다.

조금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웠다.

평소 티브이나 드라마에서 봤던 재판장과 실제 모습은 같은 듯 다른 느낌이었다.

사실 많이 긴장한 상태라 정확히 그 안이 어떠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남편, 나, 아이는 선 상태로 진행이 됐고, 판사님 한 분과 아래에 속기사 두 분이 앉아서 진행이 됐다.

날씨가 쌀쌀하기도 했지만 긴장한 탓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우리에게 이름과 주소를 물었고, 아이는 아파트 이름과 동호수만 이야기하고 다른 주소를 답하지 못했다.

내가 옆에서 살짝 일러 주자 판사님이 주소도 몰라요? 하면서 당황 반, 짜증 반 섞인 목소리를 냈다.

갑자기 더 긴장이 되긴 했지만, 명상에서 배운 호흡법으로 계속 마음을 진정시켰다.

판사님이 아이에게 물었다.

"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학원에 갔다가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갔는데 남자 화장실이 다 차서 여자 화장실을 갔어요.

여자 화장실에서 어떤 여자분을 봤는데 그 사람을 본 순간 손이 차가워졌어요.

그래서 볼일을 다 보고 변기 위에 올라가서 그 사람 머리를 보고 내려왔는데. 조금 있다가 누가 문밖에서 똑똑 두드려서 나왔어요."

"뭔가 이상한데요?

손이 왜 차가워지고, 손이 차가워졌는데 왜 변기 위에 올라갔다는 거예요?"

아이의 이야기에 문맥이 맞질 않았다.

중간에 끼여 들 수도 없고 해서 옆에서 속삭였다.

"손이 차가워진 게 귀신일 것 같았다고 이야길 해야지"

아이가 대답했다.

"손이 차가워져서 그 사람이 귀신이라고 생각해서 확인해 보려고 그랬어요"

"말이 안 되잖아요. 귀신이라고 생각했다면 무서워서 숨어야지 그걸 어떻게 확인할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 않아요? 귀신이 보고 싶었어요?"

"네... 궁금했어요."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귀신이 궁금하다니!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과정에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가 갑자기 귀신이라 생각해서 궁금했다니.

자기가 한 잘못에 대한 변명치고는 너무 앞뒤가 안 맞는 거 같지 않아요?

변명을 해도 좀 그럴싸한 변명을 해야지 이건 너무 허무맹랑하잖아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귀신 무섭잖아요. 그럼 화장실에서 숨어있어야 정상적인 거 아니에요?

안 그래요?"

"저는 궁금해서 확인하고 싶었어요"

"평소에 호기심이 많아요? 궁금한 건 꼭 확인해야 해요?"

"네."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옆에서 무슨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부모님이신가요?"

"네"

"성함은요?"

이제 질문은 남편과 나를 향해 쏟아졌다.

"아이가 뜬금없이 귀신 이야길 하는 게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 보려고 하는 변명일 거라곤 생각 안 하세요? 언제부터 이 귀신 이야길 한 거예요?"

"사건이 있은 후에 아이가 성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돼서 성교육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이야기하지 못했는데 상담 선생님은 자신을 믿어줄 것 같아서 귀신 이야길 꺼냈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집에서는 거의 티브이 시청을 하지 않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경이로운 소문이라는 드라마와 악귀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더 귀신에 몰입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빌려오는 책들도 귀신에 관련된 내용이 많았고, 저에게도 담임선생님에게도 홍콩할매 귀신에 대해 아느냐고 묻기도 했었는데, 저는 그간 어릴 때 가질 수 있는 귀신에 대한 궁금증 정도라고만 생각했고, 깊은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상담 선생님은 성교육 상담하기엔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라 보고 성 상담은 하지 않았다고 하셨고, 연령에 맞지 않는 미디어를 보고 발생한 문제라 미디어 시청에 관한 교육만 받고 왔습니다.

아이가 죄를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고, 분명 자기가 잘 못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이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것은 잘못됐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아무리 남자 화장실에 자리가 없더라도, 절대 여자화장실은 들어가면 안 되고 급하면 다른 층을 이용하라고 일러뒀습니다."

재판이 있기 전에 써뒀던 글들이 생각나면서 긴장하지 않고 일련의 과정들을 잘 설명할 수 있었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딱딱하게 굳어 있던 판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을 보여주셔서 안도하는 마음이 조금씩 들었다.

재판은 길지 않았다.

시간 상으론 10분 정도였는데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길게 느껴진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판사님의 판결이 났다.

"우리는 아이의 진짜 속마음을 잘 모릅니다.

어쩌면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여기까지 왔을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니 아이를 믿어봅니다.

아이를 키우는 건 부모입니다.

아이가 왜 있지도 않은 귀신에 빠져 있는지 상담도 받아보시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주세요.

귀신에 빠져있다는 현상은 좋지 않습니다.

부모님께서 잘 교육하시고 대처해 주실 것이라 믿고 불처분 결정 내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뒤에 서 있던 청원경찰분이 우리 보고 나오라고 이야기했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데스크에 앉아 있던 분에게 물었다.

"재판이 끝났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1호 처분받으셨어요?"

"아니요. 불처분 결정이라고 하셨어요."

"아 그럼 그냥 가시면 되세요."

"뭐 서류 남기거나 하는 것 없이 그냥 가면 되나요?"

"네. 그냥 돌아가시면 됩니다."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이 들 만도 한데, 그런 생각보다 뭔가 더 남아있을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검색창에 불처분 결정 검색했다.

[제29조(불처분 결정)

① 소년부 판사는 심리 결과 보호처분을 할 수 없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하면 그 취지의 결정을 하고, 이를 사건 본인과 보호자에게 알려야 한다.]

법원에 문의했더니 보호자와 사건 당사자가 재판에 참여하여 불처분 결정이라는 판사님의 판정을 들었을 경우엔 더 이상 다른 절차 없이 그것으로 끝난다고 했다.

법원을 나오는 길 햇살은 따뜻했고,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은 너무 많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너를 도와줄 사람은 엄마 아빠다. 그러니 꼭 우리에게 너의 마음을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

우리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자...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나를 더 어른으로 만든다.

이제 더 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정도면 다 큰 거 아닐까 했는데, 나는 앞으로도 더 큰, 더더 큰 어른으로 자라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렇지만 우린 분명히 이 일을 통해 한 뼘 더 성장했고, 이것은 우리 삶에 큰 자양분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사건이 있고, 아이는 여전히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다닌다.

학교로도 학원으로도 불려 다니며 혼자서 눈물짓기도 여러 번이다.

우리는 종합심리검사를 예약해 뒀고, 아이와 어떻게든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아 두렵고 막막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아이의 손을 놓치는 않을 것이다.

두 번 다시 자기를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우리에게 말 못 하는 그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나는 끝까지 내 아이를 지지할 것이다.

내게 가장 귀한 선물을 주신 이는 하나님

그 귀한 선물을 책임져 주실 분도 하나님

이 선물을 선택하고 축복하여 주신 하나님이 보호하고 인도할 것임을 믿는다

- 『영심이의 작은 집에서』 블로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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