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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보르미 Oct 13. 2024

판사님께

성폭력범이 된 아들(아홉 번째 이야기)

재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소년보호재판의 경우 재판이라고 하지 않고 심리기일이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의 심리기일당일.

남편은 양복을, 나는 정장을 챙겨 입었다.

평상시 옷이 몸에 닿는 감촉에 무척이나 예민한 아이는 붙는 옷을 잘 입지 못한다.

날씨가 쌀쌀해졌지만 여전히 촉감이 부드러운 기능성 여름옷을 입고 다녔던 아이였다.

그러나 날이 날인만큼 아이에게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니트를 건네줬더니 아무런 불평 없이 옷을 받아 입었다. 평소였음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아이도 많이 긴장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된다고 그리고 나오는 결과는 그냥 하나님께 맡기자고 하며 차를 탔다.

남편에게 출발 전에 기도를 하고 가면 좋겠다고 미리 이야기해 뒀더니 남편이 출발 전 긴장된 우리 맘을 위해, 아이의 지혜로운 입술을 위해 기도해 줬고 덕분에 마음이 많이 평온해졌다.

드디어 법원에 도착했다.

소년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정 앞에 아이 이름 중 두 글자가 적혀 있다.

그 외에 다른 아이들도 있었고, 우리가 도착한 뒤로 다른 많은 아이들이 속속 도착했다.

목발을 짚고 할머니와 함께 온 아이, 아빠랑만 온 아이, 보조인(변호사)을 대동하고 부모님과 온 아이...

나와 같은 마음을 가졌던 부모님들이라 생각하니 짠한 마음이 들면서 왠지 동지애가 느껴졌다.

판사님께 미리 제출했던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봤다.

[존경하는 판사님께.

먼저 이런 물의를 일으켜 피해자에게나 또한 이렇게 일 처리를 해야 하시는 분들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 7월 퇴근길 아이가 경찰서에 연행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경찰서로 향하던 그날의

떨리는 마음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자 화장실에서 옆 칸의 여자를 훔쳐봤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제 아이가 그런 것이 맞는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20대 저 또한 똑같은 일을 당했고, 옆 칸의 남자가 화장실 문틈 사이로 쳐다보고 있던 그 눈빛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기억합니다.

그 일로 저는 아직까지도 공중화장실의 중간칸은 사용하지 않고, 들어가서도 옆 칸에 누가 있으면 경계를 하고, 위로 아래로 살피는데 이런 일을 제 아들이 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고, 또한 저 같은 피해자가 생겼다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아이를 보는데... 제가 그동안 애지중지 예쁘게 키운 제 아들이 맞나 싶어 많이 슬프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두려웠습니다.

제 아이가 변태성욕을 가진 것은 아닌지, 그간 성에 대한 어떤 행동도, 궁금증도 제가 파악하고 있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이런 제가 부모 될 자격이나 있나 싶어 자책하고 또 자책했습니다.

맞벌이로 그간 아이에게 너무 소홀했던 건 아니었나도 되돌아봤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왜 그랬냐고 도대체 얼마나 큰 잘못을 한 건지 아냐고, 아이를 다그치고, 혼내고, 매까지 들었습니다.

아이는 그냥 그 여자가 궁금했다고만 대답했습니다.

도대체 그 여자가 왜 궁금했냐고, 벗은 모습이 궁금했냐고 했더니 그것은 절대 아니고 그냥 그 여자가 궁금했다고. 그 말 외엔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남편과 상의한 끝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고, 性전문 상담기관인 「푸른 아우성」에 상담을 예약했습니다. 남자 선생님이 좋을 것 같아 보름 이상을 대기한 후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 사이 아이가 性적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있나 싶어

등산, 농구, 축구 등 체육활동으로 에너지를 발산시키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상담에서 예상 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평소 귀신에 관심이 많은 건 알고 있었습니다.

저한테도 엄마가 어릴 적에도 홍콩할매 귀신 이야길 했었냐고 물어봤고, 그런 건 어떤 책을 찾아보면 나오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으며, 신비아파트 오싹오싹 무서운 이야기, 꼬마흡혈귀등 책을 대여하는 것도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아이는 귀신에 몰입해 있었고, 그간 도서관에서 컴퓨터를 1시간 사용할 수 있는데(저희 아이는 핸드폰이 2G 폰이라 게임이나 영상 시청은 핸드폰으로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집에서 TV도 주말만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 유튜브로 “경이로운 소문”과 “악귀”를 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귀신에 심취해서 그 옆 칸의 여자가 지나가는데 아이의 손이 차가워지며 온몸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 그 여자가 귀신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야 될 것 같았다고...

상담 선생님과 상담 후에야 저희는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간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상담 선생님은 자신의 말을 믿어줄 것 같아서 이야기했다고 했습니다.

상담 선생님은 아직 性적으로 상담할 준비는 안된 아이라 性상담은 하지 않았고, 시청연령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을 경우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설명해 주셨고, 저희에게도 아이가 보는 프로그램에 대해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함께 보는 것도 권유해 주셨습니다.

이 재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상담을 요청하고 전후 사정을 설명드렸습니다.

변호사님께서는 아이의 말(귀신 관련)을 어떻게 믿을 것이며, 어떻게 입증을 할 것이냐가 가장 큰 문제이다, 그냥 性적인 호기심이 생겼었다, 잘못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로 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판사님...

저는 부모로 누구보다 아이의 말을 믿어줘야 하는 사람이고, 性적 호기심으로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믿기에 아이에게 거짓말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아이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철저하게 잘못된 일임을 알고 있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판사님!

저는 연령에 맞지 않는 미디어 시청이 이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性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란 것에 큰 안도를 했지만, 놀라고 당황했을 피해자를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앞으로 또 이런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더욱더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잘 양육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디어 시청 시 함께 하도록 노력하며, 허구의 상황에 대한 설명도 잘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를 잘 양육하지 못하여 일어나 이 일에 대해 부모로서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잘못을 구합니다. 피해자의 상처가 깊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용서를 구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 마음이 판사님께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있을 때 아이 이름이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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