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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보르미 Oct 13. 2024

불안과 귀신

성폭력범이 된 아들(여덟 번째 이야기)

조사관은 본인을 임상심리사라고 소개했다.

"소년재판일 경우 사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자라온 환경과 심리상태 등 전반적인 내용을 토대로 재판이 진행이 되는데 심리기일 당일 판사님과 아이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아주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심리기일 전에 저랑 이야기를 하고 이 자료를 정리해서 판사님께 드리게 됩니다.

심리기일에는 아무래도 하고 싶은 이야길 다 하지 못하게 될 테니 지금 저랑 이야기하시면 되고요,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그리곤 우리 부부의 나이, 직업, 교육정도, 사는 환경, 월 소득까지 꼼꼼히 체크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누가 키웠는지, 부모님 성격은 어떤지, 사는 곳이 자가인지...

그간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의 모습들을 돌아봤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든 이 이야기가 혹시나 아이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까봐 대답하기 전에 생각하고 또 생각하느라 대답을 바로바로 하지는 못했다.

"아이가 귀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언제 알게 되셨나요?

"귀신에 관심이 있는 건 조금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인 줄을 몰랐어요.

그냥 보통의 아이들 어릴 적에 귀신 이야기하고 그러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푸른 아우성 상담 센터에서 상담하고 나서 정확히 알게 되었어요.

어릴 적부터 무서움은 많았어요. 지금도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하고, 잠도 혼자서 못 자고요. 샤워할 때나 화장실 갈 때도 문을 조금씩 열어 놓고 있어요."

"네..."

이야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판사님께 꼭 하고 싶은 이야기 있나요?

"제가 써 놓은 편지 꼭 읽어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네"

"그리고 이건 재판과 상관없이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예요.

저는 임상심리사여서 아이와 이야기하면서 느낀 점을 좀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내용은 기록되지 않을 거고요.

보통 아이들이 무서움을 표현하는 건 불안할 때 그렇습니다.

그 불안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표현법이 귀신이고요.

아이가 지금 아주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이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아이가 본인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게 진짜 잘 몰라서 못하는 건지, 아님 마음을 꼭꼭 숨기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아이가 가족 내에서 본인이 왕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가 볼 때 종합심리검사를 한번 받아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꼭 병원에서 받을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고, 찾아보면 검사를 하는 곳이 많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재판엔 아이의 불안함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어필하시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제 생각입니다. 이상입니다. 고생하셨어요"

불안함. 왕따....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눈물이 눈가에 맺혔지만 꾹 눌러 담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그냥 유난히 무서움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불안함의 표현이었다니....

이번 일로 본인이 우리 집의 왕따라고 생각한다니...

아이는 작년까지 미술심리 상담을 6개월간 받았었다.

방과 후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방과 후 선생님이 계셨다. 그 선생님께서 아이가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냥 이대로 두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상담을 해 볼 것을 권하셨다.

상담이란 걸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시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상담 센터 같은 곳도 있으니 그런 쪽이라도 찾아보라고 자세히 알려주셨었다.

그것과는 다르게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친구들과도 무척 잘 지내고 큰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방과 후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얼마나 잘 알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그냥 듣고 지나칠 만한 내용이 아니라 담임선생님께 이 문제를 논의했다.

담임선생님은 방과 후 선생님께서 아이를 일대일로 만나다 보니 담임 선생님이 보시지 못한 부분도 볼 수 있을 거라며 방과 후 선생님 의견을 따라보라고 권하셨다.

그렇게 해서 시에서 운영 중인 청소년 상담 센터에서 미술심리 상담을 받게 됐었다.

아이는 미술놀이하듯 다녔다.

한 달에 한 번은 선생님께서 상담 과정을 피드백해 주셨다.

선생님은 본인도 아직 공부 중이라고 하셨고, 처음부터 그렇게 밝히시니 사실 신뢰도가 조금 떨어졌었다.

TV에 나오는 오은영 박사님이 늘 이야기하듯, 아이의 모든 행동의 문제는 부모님의 잘못이라는, 부모님의 문제라는 지적을 하셨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하고,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던 시기였는데, 선생님이 느끼시기엔 함께 집에 있어도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고..

엄마가 요리할 때는 아이를 요리에 동참시키고, 책을 읽더라도 함께 읽고 나누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상담일에 선생님은 종합심리검사 이야길 꺼내셨다.

한번 받아보시면 도움이 될 거라고...

사실 미술심리 상담을 받는 동안 처음부터 큰 문제를 느끼고 갔던 것이 아니었고, 만난 첫날부터 선생님은 아직 공부 중이라고 하셨어서 모든 것을 가볍게 생각했었다.

우리 가정은 특히 우리 부부는 관계도 무척이나 좋은 편이고, 아이들 앞에서 싸운 적은 없었고, 함께하는 시간도 굉장히 많았고,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가정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선생님께서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늘리라고 지적했을 때도, 여기서 어떻게 더 늘리라는 거지? 하는 생각이 더 컸었다.

종합심리검사를 권하셨을 때도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었다.

...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있었던 사람들....

도대체 나는 왜 눈치채지도 못하고, 왜 보지도 못했을까....

종합심리검사에 대해 두 번의 권유를 받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어떤 검사인지 검색하고, 찾아보고, 확인했다.

종합심리검사는 일명 풀배터리 검사라고 하고, 가까이에 검사할 수 있는 기관이 많지도 않았고, 검사 비용도 꽤 비쌌다.

예약도 많이 밀리 상태라 당장에 검사를 받기는 어려웠다.

가까운 곳은 9개월치가 꽉 차 있어, 빨리 검사가 가능한 곳을 찾았지만 그래도 재판 일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다시 입증의 문제에 부딪혔다.

귀신에 몰입했다는 입증.

아이가 불안했다는 입증.

나는 그 둘 다를 입증하지 못한 상황에 재판 일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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