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이 된 아들(여섯 번째 이야기)
사건이 있은 후 두 달쯤 지나고 있을 때 등기가 도착할 예정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출근해 집에 없는 상황이라 우편함에 넣어 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온 문자로 전화를 걸었다.
법원에서 발송한 등기라 꼭 본인이 수령을 해야 하고, 가족 한 명이 대표로 수령할 경우 가족관계증명서를 원본으로 지참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수신인은 남편과 나와 아들 3명이었다.
사실 상담 이후 약간은 가벼워진 마음이었는데, 법원에서 온 문서이고, 꼭 본인이 수령해야 한다는 이야길 들으니 그간 잊고 있었던 긴장감이 다시 올라오면서 심장이 쪼여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남편이 일찍 퇴근할 수 있었던 날이라 서류를 준비해서 등기를 받았다.
소환장.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성적 목적 다중이용 장소 침입)
처음 받아보는 종이에 쓰인 글들은 분명 한글인데도 글씨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무서운 단어들만 잔뜩 써 놓은 기분이었다.
국선보조인 선임이 가능하다는 종이까지... 그리고 글 속에 등장하는 우리 아이는 여전히 변태성욕자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소환일자까지 한 달여 남았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찾아보기 시작했다.
변호사 자문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찾던 중 대한법률구조공단이라는 곳을 알게 됐다.
나라에서 법률자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법률자문을 해주는 좋은 제도였다.
빠르게 예약을 했고, 열흘 뒤쯤 예약이 가능했다.
그 사이 준법지원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심리기일 당일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판사님과 이야기를 다 할 수 없어 그전에 아이의 자라온 환경과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먼저 진행하는 것이라 했다.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도 그날 이야길 다 하면 된다고 했다.
재판이 아니고, 재판에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하고 가면 된다며 맘 편히 오라는 이야길 덧붙여 주셨다.
소환장, 법 위반, 재판, 준법지원센터, 심리기일....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들 속에서 긴장감은 더 높아졌다.
다행히 준법지원센터에 가기 전에 법률구조공단을 먼저 갈 수 있어서 궁금했던 질문을 준비하고, 자료를 챙겨서 가면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등기로 받았던 서류와 아이가 푸른 아우성에서 받았던 상담 서류를 챙기고, 판사님께 드리려고 준비한 편지까지 챙겨서 법률구조공단으로 향했다.
등기로 받았던 서류에 사건 경위와 아이가 자란 배경, 지금의 상태 등을 기록하는 란이 있었는데...
사건 경위에 귀신 관련 내용을 기록한 걸 보고 법률구조공단 변호사님이 크게 화를 냈다.
이렇게 쓰시면 안 됩니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쓰셔야지요.
당황한 나는...
아 그게 사실은...
상담을 받은 이야기, 아이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고 판사님께 드릴 편지까지 읽어봐 주실 것을 말씀드렸다.
변호사님은 다 듣고, 읽고 나서는...
"가장 큰 문제는 입증의 문제입니다.
이 아이가 귀신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 피해자를 귀신이라고 생각했다는 걸 어떻게 입증할 겁니까?
부모님이니 당연히 믿으시겠지만, 판사님께 그걸 어떻게 믿으라고 할 거냐고요.
입증을 해야 하는데 입증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제 생각엔 아이에게 설명을 하세요.
엄마 아빠는 네 말을 믿는다. 그렇지만 재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성적인 궁금증에 그랬는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반성한다. 잘못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하시는 게 오히려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아직 촉법소년이고 가볍게 끝날 수 있습니다.
소년원에 가는 것도 아니고, 교육정도로 끝날 수 있습니다.
국선변호인은 신청했습니까?"
"아니요."
"어허... 여기 문서를 받고 48시간 내에 신청하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무조건 신청하셨어야죠!"
"아... 제가 놓쳤네요... 혹시 지금이라도 신청할 수 있을까요?"
"지금 바로 법원 가셔서 신청서 제출하세요. 아직 심리기일 남아있으니 받아줄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법원으로 뛰어갔다. 국선변호인을 신청한다는 서류를 제출했다.
입증...
입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성적 호기심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란 걸 입증해야 한다.
그 변호사님 말씀처럼 성적인 궁금증에 그랬다 반성한다는 말을 아이에게 주입시키고 싶은 마음은 단 1%도 생기지 않았다.
아이에게 네가 그럴 아이가 아닌데 왜 그랬을까라고 먼저 묻지 못했던 지혜롭지 못한 엄마가 또다시 아이의 마음 문을 닫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반드시 입증할게...
그 피해자에게 엄마와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만들어 버린 건 정말 아이가 두고두고 미안해하며, 용서를 구해야겠지만 그 원인이 성적인 호기심으로, 아이의 변태성욕으로 인한 것은 아니란 걸 반드시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입증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 제목을 출력해서 준비해야 할까... 유튜브로 본 내용을 확인시켜야 하나... 그렇다면 그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