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첫해, 스톡홀름에서 살아내기
. 남편의 해외 주재원 첫 발령지는 스웨덴 스톡홀름이었다.
남편은 스웨덴으로 주재원 발령을 받고 몇 개월 동안 주재원 나갈 준비를 마친 후에 먼저 스톡홀름으로 떠났다. 처음에는 두 살, 한 살 연년생 아이들을 혼자 데리고 비행기 환승까지 해서 스웨덴에 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친정엄마께서 걱정되신다며 선뜻 동행해 주셨다. 3개월 뒤에 나는 친정엄마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이 있는 스웨덴으로 갔다.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가는 직항이 없어서 핀란드 헬싱키를 경유해야 했다. 남편은 우리가 걱정된다며 헬싱키공항으로 마중을 나온다고 했다. 몇 개월 만에 헬싱키에서 남편을 만나니 긴장도 풀리고 안심이 되었다. 스웨덴 도착했을 때 한국은 새벽 시간이었지만 현지 시간은 저녁이었다. 오랜 비행과 시차 때문에 아이들의 잠투정이 심해져서 모두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무사히 스웨덴에 도착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스웨덴에 먼저 도착한 남편은 집을 구해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이삿짐도 다 정리해서 도착하자마자 아이들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스웨덴 집은 오래된 상가주택이었는데 1층엔 가게가 있었고 우리 집은 3층에 있었다. 집에 대한 첫 기억은 엘리베이터가 아주 작았다는 것이다. 휴대용 유모차가 겨우 들어가는 2인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집안에 들어가니 현관이 무척 넓었고 벽 한 면엔 옷걸이 행거가 붙박이로 설치되어 있었다. 현관 옆에 바로 부엌이 있었고 방이 세 개, 거실이 두 개, 화장실이 두 개 있는 특이한 구조의 집이었다. 안쪽 거실은 장난감과 책장을 두어 아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꾸며 주었다. 집 천장이 한국보다 1미터는 높았고 긴 창문이 있어서 훨씬 더 넓게 보였다. 창문은 이중창이었는데 방음이 정말 탁월해서 거리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아 조용하고 따듯하게 지낼 수 있었다. 집 앞에는 슈퍼와 빵집이 있었는데 필요한 것을 바로 살 수 있어 편리했다. 지금도 집 앞 빵집에서 먹었던 프린세스 케이크가 생각난다.
블루마블 보드게임에서만 봤던 스톡홀름이란 도시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 스웨덴에 도착하고도 실감 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희망과 설렘이 있었다. 살아가는 장소를 바꾸는 일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하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앞으로의 스웨덴 생활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