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작은 천사가 깃들다
내가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건강했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의미 없는 고민과 미안함에 휩싸여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와 달리, 아내는 냉정하고 또 적극적이었다.
'인공수정은 요즘 젊은 부부들도 많이 한대~'
'정부에서 많이 지원해 주니까, 잘 알아보면 큰 비용은 안 들 거야.'
정자 채취 전까지 건강한 음식과 운동으로 건강한 정자를 잘 준비한 후, 므흣한 영상물을 보며 정자를 채취하면 끝나는 남자의 경우와는 달리,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을 위해 여자가 겪는 일련의 과정은 혹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단, 과배란 주사를 스스로 배에 놔야 하고 질정을 넣어야 하고, 주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해서 받아야 하는 검사들과...
밑이 빠질 것 같은 통증과 생리통보다 훨씬 심한 복통.
호르몬 과다 투여로 인한 미친듯한 감정의 오르락 내리락, 불안과 우울, 눈물과 한숨의 연속이다.
착상 후 아기가 안정되었다는 말을 듣기 직전까지.
소위 '졸업'하기 전까지의 12주의 여정은 오롯이 엄마를 준비하는 여자만의 몫이다.
나의 아버지는 난임 관련한 유튜브와 TV 프로그램의 다큐, 드라마, 예능에서 듣고 보신 게 많으셔서인지, 사랑하는 며느리가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으로 아기를 가지지 않고 자연임신이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셨다. 30대 후반의 며느리가 직장 생활을 하며 감당해야 할 힘든 과정이 눈에 선했으니...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을까?
불임 클리닉 예약일을 며칠 앞둔 아침이었다.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긴장된 목소리.
'나 임신인가 봐... 두 줄이야...'
천사가 깃들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이번이 자연 임신 시도의 마지막이었고, 바로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을 하려 했었는데, 기적과 같이 아기가 찾아온 것이다.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우리 부부는 잠도 자지 못하고 밤새 뜬눈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몸과 마음의 괴로움이 한순간에 씻겨 나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우리는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힘없이 꺼져간 촛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불꺼진 촛불 이미지
https://m.blog.daum.net/yes9040/3972?np_nil_b=-2
시술을 얼마 앞두고 갑자기 우리를 찾아온 아기는 우리의 기쁨이었지만, 우리는 임신기간 내내 아기의 건강에 대해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겨드랑이에 작은 물집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집 앞 개천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온 며칠 후였다.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 물집들. 대상 포진이었다.
아내는 자신의 통증보다, 아기에게 어떤 나쁜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괴로워하고, 또 자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