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문과 손거울

by 서쪽하늘


어르신은 말라서 엉덩이 뼈가 도드라져 있다. 욕창 예방차원에서 두툼한 폼드레싱을 한다. 드레싱을 하기 전 다리를 옆으로 했더니 아프다고 하셨다. 알고 보니 작년 10월에 고관절에 골절을 입었다. 몰랐던 나는 죄송하다고 했고 어르신은 괜찮다고 하셨다.

죄송한 마음도 있고 다른 어르신들에 비해 의식이 명료해 보여 예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여쭤봤다.
"그건 왜 물어보세요?"
실례를 한 걸까.
"어르신이 무슨 일을 하셨나 궁금해서요."
"예전에 무슨 일 한 게 중요한가요.
지금은 여기 누워있는데...
말하면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고. "
그러면서도 조용히 말씀하셨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어느 날 어르신이 울고 있다고 했다.
울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날 목욕을 했는데 초보 직원이 물을 어르신 얼굴에 조심성 없이 뿌렸다고 했다. 물이 코에 들어가서 숨쉬기 힘들었고 두려웠다고 했다. 죽지는 않지만 매우 고통스러운 게 물고문이라며 울먹이듯 말하셨다. 물고문을 당해보신 걸까.
나는 다른 일을 제쳐두고 작정하고 어르신의 하소연을 들어 드리고 위로해 드렸다. 어르신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더니 조금 전에는 비록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위로해 주는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미소 지으셨다. 휴

엊그제 어르신이 치아 사이에 뭐가 끼었다며
계속 파내느라 피가 난다고 했다. 가서 보니 치아 상태는 처참했다.

"아프지 않으세요? 치과에 가야 할 것 같은데요."

괜찮다며 아 사이에 낀 걸 보고 싶다고 했다.
다른 직원이 손거울을 빌려주니 들여다보며 열심히 이쑤시개로 쑤셨다. 이물질이 없다고 해도 계속 거울을 보며 신경을 쓰셨다. 어르신께서는 거울을 하룻밤만 빌려주면 안 되겠냐고 하셨다. 직원은 자기 거울이라 안고, 빌려드리면 계속 보며 신경 쓸 것 같다고 했다. 어르신은 두세 번 더 얘기하다 포기하셨다.

'빌려 드리지'

그날 밤 퇴근해서 거울을 찾았다. 작고 동그란 거울을 하나 찾아서 다음날 가지고 갔다. 다행히 치아가 불편한 건 괜찮아지셨다고 했다.
"어르신 손 내밀어 보세요. 제가 선물 가져왔는데 뭔지 맞춰보세요."
"거울?"
깜짝이야.
"어르신 어떻게 아셨어요. 우와."
어르신은 수줍게 미소 지으며 눈을 반짝이셨다. 자식들이 면회올 때마다 말하려다 까먹는다며, 손거울을 손에 쥐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할 땐 사춘기 소년 같았다.

어르신은 너무 오래 살았다며 미안해서 가족들에게 자주 오지 말라고 하셨단다. 만 나이와 보통 나이를 정확히 말씀하셨다. 내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분이 97세라니.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다. 옆 자리는 일 년 사이 두 사람이나 왔다가 떠났다고 했다. 아직은 정신이 맑은데 자유롭지 못한 육체에 힘들어하셨다.

오늘 어르신은 친절을 베풀어주는 허간호사를 잊지 않겠다고 하셨다. 처음 뵐 땐 표정이 없던 어르신의 얼굴에 이제는 웃음이 가득하다. 어르신께 또 무얼 해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나는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