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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Feb 15. 2023

비 오는 날 슬퍼지는 까닭  이풀잎 詩

2022.08.30 씀





몸을 휘두른 쓸쓸한 장막이

비가 되어 나풀거립니다.


커튼은 여름내 흐트러진 모양새로

볕을 모으고 모았습니다.

창문은

바람을 홍해처럼 가르고

태양은 산산이 조각난 채로 방안을 도둑질했었습니다.


그렇게

배불리 계절을 훔쳐 먹었던 여름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이제 늙어가고 있습니다.

곧 죽음을 앞둔 것처럼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밥 먹듯 회피라는 걸

먹어대던 XX 씨는

섭식장애를 앓는 것처럼

쌓이고 쌓인 묵은 체증을

끊임없이 토해냅니다.

토하고 또 토해도 늘 찌꺼기는 달라붙어

번민을 육중하게 불립니다.


자기 연민을 위한

화려한 드라마가 막을 내리고

낯선 새 드라마인

자기 합리화와 마주한 순간

XX 씨의 눈에는

체념이 눈물처럼 고입니다.




안개비보다는 는개를 만난 오늘이었습니다.

무성한 초록사이로

갈색이 드문드문 바닥에 깔려있었습니다.

그립고 그리워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기를

숨 쉬듯 해야만

살 수 있는 해바라기는

고개를 숙인 채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줄기라도 토닥여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마음 한 줄기도

제대로 간수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저 눈으로만 인사를 건네는군요.









비 오는 날 슬퍼지는 까닭


작은 뜨락을

홀로 서성이는 고독 위로

달빛이 떨고 있네요

난 이런 날이 좋아요

가로등은 푸른 별 아래 잠이 들고

창가에 걸어놓은 우울이

메마른 갈색 노래를 부르는

어제보다 더 쓸쓸한 오늘이 좋아요

그러나 동그란 하늘 틈 사이로 비가 내리면

낯익은 그리움에 울어버리죠 눈물 그치고 나서

하얀 고독으로 종이배를 만들어 띄우지만

차가운 빗물에 찢겨지고 말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그대여

사람들이 

비오는 날 괜히 슬퍼지는 건

쏟아져 나온 내 그리움 때문이에요

                                          - 이풀잎 -




비가, 

가슴속에 내리면

비는 온통 감정 폭풍을 몰고 옵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

비는 위험물질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볕에 말리려고 창가에 걸어두었던 우울.

아직 채 마르기도 전에 저만치서 다른 우울이

우표도 없이 비를 우체부 삼아

이곳에 전해놓습니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지금 잠자고 있는 

별처럼 쏟아지는 그리움을 

한 개 한 개 세어볼까 봐요.

세다 세다 다 못 세도

오늘이라는 이불이 잠을 데려와

살포시 덮어주겠지요.


내일이라는 날이 툭하고 당도했을 때

구겨진 우울을 탈탈 털어 

다시 널어놓으면

가을볕이 몰래 와서

말려놓고 가겠지요.

안전하게요.






#비오는날슬퍼지는까닭 #이풀잎 #詩 #우울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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