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에 대한 단상
한국에 살 때, 동네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말은 보통 "아줌마"였다. 가끔 "아줌마"라는 말이 별로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엄마가 나를 부르는 말을 듣고 따라한 것인지 "ㅇㅇ 엄마"라고 나를 부르는 아이의 친구들도 있었는데, 듣는 입장에서는 그것도 어색하긴 했다.
친한 친구의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말은 "이모"였지만,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닌 아이들에게까지 가족 간의 호칭을 나에게 사용할 것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냥 아줌마라고 해."
라고 한 적도 많지만, 실제로 그 호칭을 들을 때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아줌마'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 멸시나 비하의 의미가 담기기도 하니까. 게다가 어원이라고 알려진 '아주머니=아이 주머니'도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물론 내 상황이 '아가씨'가 아니기도 했지만, '아가씨'도 상황에 따라 묘한 뉘앙스를 띠거나 비하의 의미가 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호칭으로 '아가씨'를 원한 것도 아니었다. 남성 어른에게 흔히 쓰이는 '아저씨'는 비하의 의미 없이 비교적 중립적이라 할 수 있지만 내가 그걸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를 '선생님'이라고 하라고 하기도 그렇고, '여사님'도 아니고, 회사에서나 과장이지 동네에서는 그것도 아니고.
한국어에는 '어린이가 사적인 관계의 여성 어른을 부를 수 있는 일반 호칭'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아줌마"보다는 차라리 내 이름을 부르라고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여기서 동네 어린이들은 나를 이름으로, 그러니까 "미스 앤지(Ms. Angie)"라고 부른다. 우리 아이와 친한 집 아이들도 그렇게 부르고, 만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도 그렇게 한다. 아주 친해지면 심지어 "미스(Ms.)"도 없이 이름만 부르는 경우도 있다는데, 나와 친분이 있는 어린이들은 죄다 초등 이하인지라 아직까지 그 정도로 격의 없이 지내는 사이는 없다. 우리 아이들도 물론 이웃집 여성들을 "미스 뫄뫄"로, 남성들은 "미스터(Mr.) 뫄뫄"로 부른다.
여담이지만, 내가 알고 부르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본명은 아니다. 앤지가 나의 본명이 아니듯이. 나의 본명은 아무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이 없어서 편의상 비슷한 발음의 영어권 이름을 골랐다.
아마도 영미권에만 있는 문화이지 싶은데, 'Preferred name'이라는 것이 있다. 번역하면 '선호하는 이름'이라고 하면 될까, 한 마디로 내가 ‘불리고 싶은 이름’을 의미한다. 퍼스트 네임(First name)과 같은 경우도 있지만 아예 다른 경우도 있고, 퍼스트 네임을 축약한 형태-예를 들면 Joshua를 줄여 Josh라고 하는 식-가 가장 흔하긴 하다. 이 Preferred name으로 음식점 예약은 물론 병원을 예약하거나 차도 빌릴 수 있고, 학교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진료 기록, 세금 신고나 급여 명세 등 아주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상생활 여기저기에서 본명과 별 차이 없이 사용되는 것이다. 앤지는 이곳에서 나의 Preferred name인 셈이다.
이름이란 일평생 내가 가장 많이, 중요하게 사용하는 것이지만 정작 내가 선택할 여지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내가 선호하는 호칭으로 불릴 수 있는 Preferred name이라는 것의 존재는 일견 부럽기도 하다.
새로 누군가를 알게 되면 Preferred name으로 통성명부터 하고, 다음에 만나면 그 이름을 부른다. 호칭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직함으로 사람을 불러주는 것이 일종의 존중을 내포하고, 직함이나 직업으로 얽힌 것이 아닌 관계에서는 이름과 더불어 나이를 공개하고 그에 따라 언니/형님 등으로 '호칭 정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에서 삼십여 년을 살아온 나에게, 어른부터 아기까지 그저 상대가 불리기를 원하는 이름으로 부르면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편리하고 때로는 '쿨하다'고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가끔 이게 오히려 더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상대의 이름을 한 번에 알아듣는 것이 어려울 경우였다. 예를 들면 진료 예약을 해주는 간호사, 식당에서 내 테이블의 주문을 받아주는 종업원, 구매한 물건에 문제가 있어 전화한 고객센터의 상담원과 이야기할 때다.
“Hi, my name is OOOO, how may I help you?”
부터 시작하기 마련인데, 보통 이런 대사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 속에서 이름을 캐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대화 중에 상대를 불러야 할 일이 생기면 이름을 들은 이상 반드시 이름으로 불러야 하기 때문에(그러지 않으면 실례가 된다.) 나는 언제나 긴장하며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미랜다, 레이첼, 로버트처럼 한국에서 들어본 풍월이라도 있는 이름은 조금 나았지만, 낯선 이름이나 비(非) 영어권의 이름은 외우기는커녕 한 번에 알아듣기조차 어려웠다. 되묻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고, 방금 말해주었는데 까먹었다고 하는 것도 실례일 것 같고. 그나마 가능한 경우에는 기회를 보아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읽어 보려고 흘끗 대곤 했다.
한국에서는 이럴 때 딱히 상대의 이름을 외울 필요 없이 학교나 병원이라면 "선생님", 식당에서는 "여기요", 고객센터에서는 "상담사님" 등으로 부르면 대충 상황이 해결되었었는데. 서너 마디 이상 섞으려면 꼭 이름을 불러야 하니, '이름을 한 번에 알아듣고 외워야만 한다'는 압박처럼 느껴졌달까. 차라리 "Ma'am"이나 "Sir"로 계속 부를 수 있으면 편할 텐데,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상황은 이웃의 나이를 알아 버렸을 때였다. 우리 둘째와 일주일에 여덟 번 같이 노는 이웃 꼬맹이의 아빠가 나보다 열다섯 살 정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꼬맹이 위로 형제가 둘 더 있기도 하고, 나보다 연상일 것이라는 정도야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랑 띠동갑도 더 되시는-그렇다, '된다'가 아니라 '되신다'라고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것이었다.
그 후로 한동안 그에게 "Hi, Bert!"하고 인사할 때면 어쩐지 내가 상당히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 신경도 안 쓰는데 나 혼자,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유생님과 갈등하며 '여기선 이게 맞는 거야. 여기서 갑자기 Mr. 를 붙이거나 하면 그게 더 이상하고 실례야.' 하고 되뇌었다.
이제는 듣는 귀도 처음보다는 많이 트였고, 다양한 언어권의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이름을 한 번에 못 알아듣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럴 경우 이름을 다시 한번 물어보는 것이 그렇게까지 실례는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어, '이름을 한 번에 못 알아들었을 때의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어졌다.
여전히 조금 남은 문제는 내 안의 장유유서다.
최근 이웃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기가 있어, 그 조부모님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하신다. 아기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을 보고도 옆에 다가가 "Wow, he is so cute!"라든지 "She is adorable!" 같은 감탄사를 외치지 않는 건 이곳의 예의가 아니다. 그렇게 나는 이웃집 Liz 여사를 알게 되었고, 내 마음속의 유생님이 “Ms.”라도 붙여야 하지 않겠냐고 매번 내 혀를 살짝 붙잡지만, “Oh, call me Liz.”라고 하신 이상은 "Liz”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어딘지 미안하거나 쑥스러운 표정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인사한다.
“Hi, Liz! How’s it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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