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다, 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될 줄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향'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 '태어나서 자란 곳'이라는...
태어나서 유년기를 보내고 자라난 장소 이외에, 가장 오랫동안 살아왔거나 나에게 특별히 의미가 있는 장소를 우리는 보통, '제2의 고향' 이라고들 한다.
내게는 '사이판'이 제2의 고향이다.
대한민국에서 동남쪽으로 3,000km 떨어져 있고 제주도 10분의 1 크기에 해당하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2003년 12월의 끝자락, 서른 살의 어정쩡한 내가 새벽에 도착한 곳은 사이판 국제공항이었다.
가진 기술이 있었기에, 이미 중국에서의 짧은 해외 근무 경험이 있었던 나는
다시 한번 해외 파견 근무를 선택해서 오게 된 곳이었으므로, 휴가를 즐기러 온 다른 여행객들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었지만...
한국의 매서운 겨울 추위를 잊게 만들었던 열대 지방 특유의 후덥지근한 기후와
섬 특유의 비릿한 바다 내음은, 내 가슴을 이유 없이 설레게 만들었다.
사이판의 새벽을 깨우며 도착한 첫날, 나는 이곳이 내 인생의 2막을 열게 될 장소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18년 전 그때나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내게는 볼 때마다 낮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사이판의 대표적인 오션뷰, 비치로드.
에메랄드 빛 바다와 천연 산호 방파제
유난히 파랗고 맑은 하늘과 미세먼지가 뭔지도 모르고 살만큼 깨끗한 공기.
유독 추위에 약한 나에겐 안성맞춤인 1년 365일 따뜻한(?) 기후.
과연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세상 여유롭고 느긋하다 못해 느려 터져서,
때로는 한국식 '빨리빨리' 스타일의 대표적인 주자 중 한 명인 나의 복장을 터지게도 하는 이곳 섬사람들의 분위기.
사이판에 온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는 어두컴컴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비치로드에서 새벽 조깅을 즐길 만큼 이 섬에 적응하게 되었고, 간혹 예고 없이 쏟아지는 스콜을 흠뻑 맞으며 달리면서도
행복하게 웃으며 소리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 아무래도 천국에 온 것 같아!"
이제 곧 쉰을 바라보는 나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와는 달리,
지금 내게는 연년생의 사랑하는 두 거북이 딸들과 든든한 신랑이 있지만, 여전히 나는 비치로드를 달리고 있다.
때로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었고 힘든 일들도 있었지만...
나의 제2의 고향인 이곳 사이판에서, 오늘도 나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똘똘 뭉쳐 살고 있다.
좌충우돌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면서도,
한편으로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위해 더디지만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앞으로 내밀어 가면서...
그렇다, 처음 그 느낌처럼.... 여전히 나는 지금 천국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