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의 짝꿍

당신이어서 고맙습니다.

by 마라토너 거북 맘
"누나, 내 생각에 누나는 그냥 혼자 사는 게 낫겠어. 누나가 말하는 이상형은 공장에서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불가능해."


이런 잔인한 녀석을 봤나.

노산으로 너를 낳고 완전히 방전되신 엄마를 위해

내 너를 갓난아기 때부터 업어 키운 세월이 얼만데...


아니, 내가 뭐 재벌 2세를 만나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니고

영화배우 급 외모를 가진 남자를 원한 것도 아닌데

서른을 넘긴 외로운 누님에게 팩폭을 날리는 녀석이라니...

아홉 살 터울 막내 녀석의 핀잔에 은근히 마음이 상한다.


나는 그저...

집안의 장녀로서 그동안 제법 마음의 부담감을 느끼며 살았었기에 내 평생 베필이 될 남자는,

나를 잘 이끌어 주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보수적이고 권위적이었던 아버지의 완고함에 질려 버렸던 기억들 때문에

마초맨 같은 사람은 절대 싫지만, 그렇다고 또 너무 우유부단한 사람은

내가 속이 터지고 답답해서 못 살 것 같으니...


한마디로, 고집 세고 강한 성격의 나를

때로는 남자답게 잘 리드하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내가 존경할 수 있고 대화가 잘 통하는 유쾌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을 뿐이다.


이것이 그리 불가능한 요구 사항이란 말인가.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나보다 앞서 결혼을 하고 나자, 엄마는 괜히 혼자서 초조해하셨다.

사실, 결혼 생각이 그다지 간절했던 것도 아니었건만

엄마는 서른을 넘긴 딸년이 낼모레면 또 해외로 파견 근무를 간다고 하니, 적잖게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외화벌이 하러 또다시 해외로 나가기 전, 엄마의 소원을 들어드리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한 달 동안 열심히 맞선을 보러 다니는 일이었다.

점심과 저녁, 이렇게 하루에 두 명의 사람을 만나기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선을 보러 다녔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나의 인연은 이렇게 해서 찾아질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사이판에서 1년 동안만 근무를 하기로 하고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한국을 떠났으나

19년째 사이판을 떠나지 못하고 지금 현재까지 계속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인연'을 믿지 않았던 나였지만

과연 '인연'이 있기는 한가보다 싶었던 남편과의 만남...


19살 때부터 해외 생활을 하며 살아왔던 남편은

나를 만났을 때 서른다섯의 오래 묵은 총각이었다.

소개로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나는 직감했다.

'내가 바라던 외모 하며... 우리 뭔가 인연이 될 것 같은데?'

참고로 내가 바라는 남성 외모의 기준은 다소 특이하고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걸 밝혀 두고 싶다.


샤프하고 호리호리하거나 어깨 떡 벌어진 근육질의 몸매보다는

퉁퉁한 옆집 아저씨 같은 스타일을 선호하며

'나도 내가 잘난 거 알아' 하는 듯 뺀질뺀질하게 잘 생긴 외모보다는

나만 바라볼 수 있고 뭔가 안심이 되는 편안한 외모에 더 끌리는 편이다.


그뿐인가.

남편은 음악 분야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팝, 클래식, 가요, 록 음악, 가수나 노래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 수 있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어느새

밤늦은 시간까지 소주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논하게 되었고, 만난 지 6개월 만에 부부가 되었다.




지난달은 우리 부부의 열여덟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참으로 희한하고도 감사한 건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한 해 한 해 쌓일수록,

'아,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비록 결혼은 6개월 만에 했지만

연애 기간과 사랑의 깊이가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걸 남편을 통해 느끼게 됐다.

친구 같고 오빠 같으며 때로는 든든한 아빠 같은 남편

내 인생 최고의 술친구이자 맘 놓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상대...


때로는 다소 투박하고 세련되지 않은 말투로 옆사람을 놀라게 할 때도 있지만

그 속에 숨은 진심이나 따뜻함을 나만은 느낄 수 있으니 그걸로 됐다.


부러질지언정 잘 휘지 않는 강한 성격의 나를

세상에서 가장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

그 크고 두터운 손으로 내 손을 꽉 잡아주면 그렇게 든든하고 미더울 수가 없다.


점심시간이든 저녁 시간이든, 운동을 하든 영화를 보든...

늘 둘이서 똘똘 뭉쳐 다니는 우리 부부는 이미 이 작은 섬 사이판에서 유명하다.

오죽하면 맨날 둘이서만 다니냐며 간혹 어이없는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을까.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기다림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우리 두 거북이들에게

이런 아빠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다 싶다.


감히 다른 남편들은 흉내도 못 낼 만큼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

남편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내 평생의 짝꿍이 남편이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한 시간들이다.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아끼고 삽시다!"
언젠가 꼭 둘이서 다시 한번 오자고 약속했던, 그랜드 캐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