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 담배도 하지 않으셨던 아빠는, 그 흔한 저녁 약속이나 모임도 거의 없이 늘 같은 시간에 칼퇴근을 하는 분 이셨다.
그 시간이 다가오면 자유롭게 깔깔 거리며 널브러져 있던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 나는,
갑자기 가슴이 콩닥 거리기 시작하고 자동 반사적으로 긴장을 하면서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
'오늘 아빠가 확인하신다고 한 게 영어 교과서 본문 암기였나, 아님 천자문 책 열 장 암송이었나... 제대로 못 외우면 또 한바탕 불벼락이 떨어질 텐데...'
이렇듯 우리 자매에겐 어렸을 적부터 아빠의 퇴근 시간이 그다지 기다려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어쩔 땐 공포스럽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이윽고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시면, 우리 자매는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현관문까지 나가서 인사를 드리고 슬쩍 아빠의 눈치를 살핀다.
'어쩌면 오늘은 아빠가 피곤해서 공부한 거 확인 안 하실지도 몰라, 아니면 깜빡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의 그런 기대는 늘 보기 좋게 빗나갔고, 공포의 시간은 여지없이 평화롭고 화목해야 할 저녁 한때를 천둥소리 같은 꾸지람과 두려운 흐느낌으로 뒤덮어 버렸다.
생각해보면, 우린 자라면서 가족 여행이라는 걸 제대로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지방으로 이사 갈 때를 제외하고,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족이 낯선 장소로 이동했던 기억은 없으니 말이다.
당연히 여행 가서 찍은 가족사진이 있을 리도 만무하며 우린 늘 아빠 없는 아이들 마냥, 늦둥이 동생을 둘러업은 고단한 엄마와 함께 간간히 찍었던 초라한 사진 몇 장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랬다.
내 기억 속의 아빠는 항상 어렵고 무서웠고, 워낙에 학구열이 높았던 양반이라 항상 뭔가를 읽고 쓰며 배우는 걸 좋아하셨지만 자식들에게도 같은, 아니 그 이상의 기대치를 가지고 늘 학교 시험이나 학과목 공부를 검사하고 확인하셨다.
때문에, 우리가 티브이 만화영화를 보며 깔깔거린다거나 빈둥거리는 모습이 아빠 눈에 띄면
그날은 어김없이 불호령과 함께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점검하셨고, 만약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제대로 눈물 콧물을 다 빼야 하는 날이 되었다.
그뿐인가.
도대체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는 '여행'이나 '휴가'라는 단어만 들어도 불같이 화를 내며 혐오하는 희한한 반응을 보이셨어서, 나머지 가족들도 덩달아 가족 여행은 감히 꿈도 못 꾸며 살아야 했을 만큼 참 유별나고 독특한 분 이셨다.
하긴, 어쩌다 아빠와 함께 시골 할머니 댁에 가거나 성묘를 가느라고,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는 길은 너무도 불편하고 힘들어서, '차라리 집에 있을걸' 하는 후회가 여행 내내 밀려왔었던 기억이 날 정도였으니 어차피 가족여행을 갔어도 즐겁고 좋은 추억을 만들긴 어려웠을 게다.
그도 그럴 것이
자고로 고속버스나 기차여행에서는 중간중간에 군것질도 좀 하고 기념품 구경도 해야 제 맛인데,
아빠는 그런 것들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차 창밖으로 특이한 건물이나 역사적인 기념물이 보이면, 우리를 가까이 불러 마치 백과사전처럼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 강의를 하곤 하셨다.
어느 날 건너편에 앉은 어떤 아주머니가 그 광경을 보고는, "아유~~ 아빠가 참 자상하시네."라고 하셨었는데,
그때 나는, '속 모르는 소리 하지도 마세요, 아줌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었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그런 나들이 이후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어김없이 아빠의 확인 작업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까 아빠가 그 건물에 대해 우리에게 뭐라고 설명했었고 역사적 의미가 뭐였는지, 기행문까지 써야 할 때도 종종 있었으니, 어찌 아빠와의 동행이 어린 우리들에게 즐겁고 편안할 수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다음에 커서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어린 딸들로 하여금 이런 말을 하게 만드는 아빠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누군가 그랬는데...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즈음 나는 나도 모르게
아빠와 비슷한 외모나 목소리 말투, 성격 등을 가진 상대를 만나면 자동적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으며, 반대적인 조건을 가진 남자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Mom, when will daddy come?"
살짝 찌푸린 얼굴로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아빠의 귀가 시간을 묻는 큰 딸아이의 표정이 뭔가 못마땅해 보인다.
아마도 평소보다 조금 늦어지는 아빠의 귀가 시간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음... 글쎄, 아빠가 오늘 약속이 있으셔서 좀 늦으실 것 같은데?"
그러자 갑자기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 아빠에게 전화를 한다.
아빠가 언제 올 건지, 왜 늦는 건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마치 취조하듯 묻더니 시무룩하게 전화를 끊는다.
바가지 긁는 아내가 아니라, 잔소리하는 딸내미들이 더 무서운 우리 남편이다.
아빠가 밤늦게 귀가할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는 두 딸들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함과 동시에 그 모습이 내게는 참 낯설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우리 자매는 어쩌다 아빠가 출장을 가셔서 집에 안 들어오시면 그렇게 맘이 편하고 자유로웠었는데
저 녀석들은 아빠가 조금만 늦어도 난리가 나는구나.'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
비록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와의 즐겁고 신났던 추억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분명히 당신 자식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있으셨을 텐데...
왜 동생들과 나는 아빠의 그 마음을 느끼지 못했을까.
자식을 사랑하고 염려하셨기에 항상 뭐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 하셨을 것이고
가족을 위하는 마음과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셨기에
그 많은 고생과 어려움들을 기꺼이 겪으셨을 텐데 말이다.
슬픈 결과이긴 하지만, 우리 자매들은 아빠가 자식을 사랑하셨던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남녀 간의 사랑이나 부모 자식 간의 사랑에,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하며 위하고 있으니, 넌 나의 헌신과 사랑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논리나 규칙이 적용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미 '사랑' 본연의 의미를 망각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지천명'이라고 하는, 나이 50을 바라보는 아줌마가 되고 보니
이제 조금씩 정말 소중하고 귀한 게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사랑'에 대해서도 그렇다.
거창한 의미부여나 미사여구도 필요 없다, 사랑은 그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다.
내 욕심이나 기대와 눈높이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이 바라보는 곳을 같이 바라봐 주고
함께 기다리고 애쓰면서 상대에게 믿음을 주는 것.
힘들고 절망적인 순간에 목소리와 얼굴만 떠올려도 위안이 되고
어깨에 기대고 가슴에 안겨 한없이 편할 수 있는 상대가 바로 나 일 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의 사랑,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부모가 자식들과 함께 뒹굴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의외로 짧다는 것을, 나는 두 딸아이들을 키우며 깨닫게 되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부모는 자식들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쏟아붓고 싶어 한다.
이것저것 가르치기도 해야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추억도 쌓아야 하고, 내가 못해본 것들도 시켜보고 싶고, 좀 더 좋은 학교로의 진학을 위해 때로는 아이를 혹독하게 밀어붙이기도 해야 하는 등, 부모의 욕심과 기대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끔씩이라도, 아직은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살고 있는 부모님들이 떠올려 봐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이 정말 우리 아이가 원하는 것일까? 혹시, 내 욕심이나 만족감에 취해서 아이도 행복해한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무조건 모든 것을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맞춰주거나 방목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항상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회상할 때마다 씁쓸한 기억들만 떠올리는 것과는 달리,
우리 딸들은 엄격한 잔소리 마왕 역할 담당인 엄마보다 푸근하고 다정하며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기보다 때로는 장난스러운 친구처럼 아이들과 온몸으로 놀아주고
모든 걸 다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한 아빠를 더 좋아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아빠의 퇴근 시간을 눈 빠지게 기다린다.
퇴근해서 집에 오기가 무섭게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자전거도 태워주고, 수영도 같이 하고, 테니스도 함께 쳐 주는 만능 아빠가 빨리 와야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이런 게 일상의 행복이고 사랑이 아닐까?
함께 시간을 보내고 몸으로 같이 부딪치면서 내가 널 정말 아끼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내가 아주 어린 시절 막연하게 원했던 아빠의 사랑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