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일상 이야기

by 마라토너 거북 맘

사이판의 특성상, 원주민을 비롯한 필리핀, 한중일, 미국 본토 사람들이 두루두루 섞여 살고 있기에

다양한 언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미국 자치령이라 영어가 공용어이고 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다는 선배님들이나 이웃들을 봐도,

오랜 해외생활로 다져진 내공과 연륜으로 쌓인 영어를 구사할 뿐, 정작 급박하고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는 발을 동동 구르거나 가슴을 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엘에이 한인 타운에서는 영어 한 마디 못해도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개인적인 계기나 상황으로 인한 결심이 없었다면, 그저 생존 영어 수준 정도의 영어 실력과

전자사전이나 번역 어플에 의존하며 큰 불편 없이 살고 있었으리라...


제2의 고향인 사이판에서 가장 행복하고 감격스러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신랑을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것 다음으로 아마도 연년생 두 딸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힘들고 좌절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코

큰 아이가 다섯 살 무렵, 언어 발달 지연으로 인한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였던 것 같다.

"아빠 닮아서 말문이 좀 늦게 트이나 보네, 너무 조급해하거나 안달하지 말고 기다려라, 요즘 젊은 엄마들은 너무 극성스러워"라는 양가 어른들의 말씀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기다렸지만...


또래 아이들이 하나둘씩 말문이 트이고 이중언어 환경으로 인한 장점으로

영어와 한국말로 별의별 이야기를 다하는 수준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의미 있는 문장을 말하지 못하는 큰 녀석을 보며 이건 뭔가 아니다 싶었고,

한 시간 가량 의사와의 기본적인 면담과 관찰이 있은 후에 'Autism'이라는 단어를 들었었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부끄럽게도 그 당시에 그 단어의 의미를 바로 알아듣지 못했었다.

그저 뭔가 좋지 않은 듯한 느낌만 받았을 뿐...


집에 돌아와 다급하게 사전을 펼쳐 단어의 의미를 찾아 보고서야

나는 내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한동안의 깊은 우울증과 방황과 좌절의 시간을 보낸 후,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게...


하늘은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고 누가 그따위 잔인한 소릴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록, 큰 녀석과 증상도 다르고 덜 심각하긴 해도, 한 살 아래인 둘째 녀석도 같은 판정을 받았고,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정말 우여곡절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세월들이 있었다.


자기표현에 서툴고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른 두 녀석들 덕분에, 나는 학교는 물론이고 어디에서든 강인하고 전투적인 용감무쌍한 쌈닭 엄마가 되어야 했고, 이곳은 외국이므로 행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말발에서도 밀리지 않고 내 새끼들을 위해 앞장서서 싸우려면 언어 문제도 시급했다.


'내가 배우고 아는 만큼 아이들을 위하고 도울 수 있다.'

이것이 내 판단이었고, 그래서 사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팔팔하고 어린 원어민 아이들과 함께 섞여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게 됐다.


늦깎이 대학생활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사이판의 유일한 대학교

늦은 나이에 그것도 해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나의 본업은 학생이 아니기에 두 아이들 케어에 집안 살림도 해가면서, 정말 치열하고 처절하게 공부했던 것 같다.

오죽하면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그렇게 하다가 큰일 나겠다고, 좀 적당히 하면 안 되겠냐고 했을까.

누군가 지금 다시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다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겠다.

그만큼 후회 없고 미련 없이, 열심히 죽자 사자 매달렸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코로나 사태로 1년 미뤄진 졸업식을 올해 5월에 할 수 있었고,

교육학을 전공하고 무사히 졸업한 것만도 감사한데, 무려 졸업생 대표로 뽑혀서 졸업 연설까지 하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소싯적 유학 경험이 있거나 그렇다고 재미 교포 출신도 아닌 방년 48세의 한국 아줌마가,

유창하고 세련된 영어 발음도 아니면서 감히 원어민 졸업생들과 교수들 앞에서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할 줄은 나 자신 스스로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그 나이에 공부해서 뭐하게? 그 나이에 뭘 그렇게까지..."

혹자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나이가 뭐 어때서?

비록,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전적으로 믿진 않지만 (나이는 정말 못 속이는 거 맞다)

그래도 사람이 간절하게 최선을 다하면 못해낼 것이 없다는 말은 확실히 맞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두 거북이 녀석들과 함께

Algebra와 Geometry라는 적을 상대로 씨름을 하고,

미국 역사에 대한 이해를 위해, 녀석들의 눈높이에 맞는 설명이 무얼까 고민하며 나름대로의 교안을 만들면서 고군분투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렵고 힘들게 해냈지만, 늦깎이 공부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든든한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와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 거북이들에게 국내도 아닌 해외에서, 엄마표 학습 같은 현실적인 도움을 주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나이? 아직 괜찮다고!

48세의 교육학과 졸업생과 그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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