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클레어

육아 이야기

by 마라토너 거북 맘
'내 이 눔의 자식을 오늘은 정말... 그냥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웬일로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어김없이 학교에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을 받고

마치 성난 코뿔소 마냥 씩씩 거리며 부리나케 차를 몰고 학교로 가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참담한 마음과 함께 그동안 애써 저 밑바닥으로 꾹꾹 눌러왔던 울화가 역류하는 걸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클레어가 수업 중에 지금 또 성질을 부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엄마가 좀 오셔야 할 것 같다는 선생님의 난처한 목소리보다 수화기를 통해 먼저 들려오는 건

바로, 우리 꼴통 둘째가 분노에 가득 차서 울며 불며 난리를 치는 심란한 소리였다.


'휴... 또 시작이구나, 올 것이 왔네.'

무슨 일인지 선생님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될 만큼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들은 실감 나고 생생했으며

심지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눈앞에 훤하게 그려지기까지 할 정도였다.


둘째 녀석, 클레어가 K5 때부터 (한국의 유치원쯤 될 것이다) 대략 초등학교 3학년 정도까지

녀석은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 인사였다.

여기서는 'tantrum'이라고 불리는 클레어의 '생떼'는 대단히 악명 높았기 때문이었다.


이유나 원인은 그때그때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그다지 심각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녀석의 'tantrum'의 계기가 되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도 계속 더 놀고 싶은데 수업이 시작돼서 그만 놀아야 할 때

녀석은 아직 받아쓰기가 덜 끝났는데, 선생님이 시간 됐다고 시험지를 걷을 때

유난히 귀에 거슬리는 소리나 음악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녀석의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을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들려줬을 때

이유 없는 터치를 무척 싫어하는 녀석을 짓궂은 어떤 남자아이가 툭 하고 쳤을 때...


그렇다.

다른 이들의 관점이나 시각에서는, 심지어 엄마의 시선에서 조차 그리 큰 이슈가 아닌 일들이

녀석에겐 무척 심각하고 화가 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또래 아이들이 비록 화가 나고 속상하더라도

'학교'나 '교실'이라는 장소나 공간에서는 본능적으로 자기감정을 조절하며 참는 것과는 다르게,

녀석은 그런 힘이나 조절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


그렇게 헐레벌떡 학교에 도착해서

늘 그렇듯, 의미 심장하면서도 멋쩍은 인사와 눈빛을 선생님과 나눈 후에

온 얼굴은 물론 눈썹까지 시뻘게져서

뭐가 아직도 그리 억울하고 화가 나는지 여전히 악을 쓰며 우는 녀석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오는 길은

참으로 멀고도 힘들었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화나게 만드는 걸까

'패대기를 치고 화를 내더라도 집에 가서 하자.'

화를 삭이며 아무 말 없이 운전하기를 몇 분...

녀석도 이제는 좀 지쳤는지

희미한 흐느낌만이 차 뒷좌석에서 들려왔고,

일단 분에 못 이겨서 성질을 부리긴 했지만

집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을 후폭풍이 갑자기 걱정됐는지

자꾸 내 눈치를 살피는 녀석의 겁먹은 표정이 백미러를 통해 보이자

나는 깊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너는 왜 학교랑 집에서 하는 짓이 그렇게 다르냐?"
"집에서 하듯이 학교에서도 한 번 그래 보지, 왜 집에서만 지랄이냐?"

나의 학창 시절, 엄마가 자주 내게 하시던 말씀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참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편이었다.

그래서 조곤조곤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는

나로서는 흉내도 못 낼 불가능한 일 중 하나이며,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독설과 함께 화가 나면 엄마나 동생들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난리를 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오죽하면 엄마가, "저놈의 계집애만 집에 들어오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시끄러워 못살겠다.'라고 하셨을까.


하지만, 학교에서는 달랐다.

일부러 의도하진 않았지만, 학교에선 친구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가 많았고

친구들과 문제가 생긴 적도 없었으며

선생님들에게도 늘 인정받고 칭찬받는 학생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엄마나 동생들에겐

내가 이중인격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우리 둘째 녀석 같은 판정을 받지도 않았고

사회생활하는데 문제가 있을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녀석이 매번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서

학교로부터의 호출 전화를 받고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서는 나와

학급 아이들 앞에서 남다른 성격을 맘껏 자랑하며 난리를 치는 녀석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던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의 복잡한 시선들을 느낄 때마다

이유는 모르지만 자꾸 내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한 번만 더 학교에서 tantrum 부리면 엄마가 어떻게 한다고 했지?"


울먹거리며 녀석이 웅얼거린다.

"손바닥 열 대 맞기요."

"의자 들고 30분 서 있기요."


아니, 애를 때린다고? 벌을 세운다고?

이렇게 비난하고 한심해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무슨 짓은 안 해 봤겠는가.

백번 천 번 설명도 했다.

끌어안고 울며 사정도 해봤다.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과자를 사주며 달래도 봤다.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혼내고 지랄도 해봤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 때문이 아닌...

기본적인 감정 조절 능력 자체가 부족한 게 문제인 녀석에게는

그런 모든 것들의 '약발'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 녀석을 한없이 방치하거나 놔둘 수는 없었다.

아픈 아이라고 눈감아 주고 봐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수천번 이든 수만 번 이든

나는 엄마로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반복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믿었다.


드라마틱하고 기적적인 변화가 갑자기 일어나서

"어머님, 그동안 저 때문에 심려가 많으셨지요? 이제 걱정 마세요."

녀석이 어느 날 내게 거짓말처럼 이렇게 말할리는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언젠가는, "클레어, 너 유치원 때 교실에서 책 집어던지면서 울고불고했던 거 기억나니?"

멋쩍어하는 녀석과 옛날이야기하듯, 지금 이 고단한 시간들을 회상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기대나 희망을 단 한 번도 버리진 않았다.



어느 날, 해외 유튜브를 둘러보다가

'tantrum'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을 발견했다.

그 동영상속엔 또 한 명의 클레어가 있었다.


딱 봐도 녀석 정도 나이의 금발 소녀가

많은 학생들이 모인 학교 강당에서 울고 소리 지르며 신경질 내는

참으로 익숙하고 친근한 장면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자연스럽게 녀석을 불러서 그 영상을 보여줬고

녀석은 내 생각보다 꽤 많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인상을 쓰며 내게 물었다.

"Mom, why is she throwing a tantrum?"

'뭣이라? 네가 지금 그걸 물어볼 입장이 아닐 텐데...' 이런 생각과 함께 나도 녀석에게 물었다.

"클레어, 저 여자애 어때 보여?"

"She looks so bad. I think she is a bad girl."

'헐... 바로 네가 지금 학교에서 그러고 있거든?' 이 말을 속으로 꿀꺽 삼키며

"클레어, 근데 너도 가끔 학교에서 저런 행동 하잖아, 그렇지? 그럼 너도 나쁜 아이겠네?"

그러자, 그건 또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강하게 좌우로 젓는 녀석의 표정이 나름대로 복잡해 보인다.


그때부터였을까.

앞뒤 좌우 가리지 않고, 남의 시선은 아랑곳 않던 녀석이 조금씩,

내 행동을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

남들이 자신의 평판을 어떻게 하는지 등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선생님들이나 보조 교사 분들께 새로운 부탁을 했다.

클레어가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다른 행동을 한다든가

수업 중에 교실에서 문제 되는 행동을 할 때마다

그 장면을 사진 찍거나 녹음을 해서 나에게 보내 달라고...


고맙게도 학교에서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고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협조도 있었다.

학교의 도움 없이는, 녀석의 문제 행동을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는 걸 느끼고

나는 늘 선생님들과 아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고 체크했으며

방과 후에는 선생님이 보내주신 동영상이나 사진을 녀석과 함께 보며 확인 작업을 했다.


처음, 녀석의 불성실한 모습이 담긴 수업 중의 사진을 녀석에게 보여줬을 때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아니, 이게 어떻게...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며 당황하던 표정...

"클레어, 이때 왜 이런 거야? 엄마는 네가 학교 가기 싫다면 굳이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해. 싫으면 가지 말고 집에서 그냥 놀아도 돼."

참으로 희한한 건, 녀석은 죽어도 학교에 가기 싫다는 소리는 안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보내신 불성실한 클레어에 대한 증거사진! 클레어, 너 혼자 뭐 하고 있는 거니?


물론,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지만

그렇게 지독하던, 녀석의 tantrum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진 것도 있을 테지만

학교와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끊임없는 노력도 큰 몫을 했으리라 믿는다.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클레어.

여전히 녀석의 그 성질머리와 태도에 대한 문제점은 남아있지만

이 또한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아지리라고 믿는다.


어릴 적부터, 낯선 사람에게도 환하게 웃으며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녀석.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깔깔 거리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밝고 명랑한 소녀 그 자체인데

사소한 무언가라도 하나 엇나가게 되면 갑자기 돌변하던 녀석의 표정과 행동들...


그렇다, 녀석은 두 얼굴의 클레어였다.

마치, 집과 학교에서 다른 행동을 보여주던 학창 시절의 내 모습처럼 말이다.

고 녀석, 참 장난꾸러기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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