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하는 거북 맘

운동 / 러닝 이야기

by 마라토너 거북 맘

사이판은 스쿠버 다이빙 등 갖가지 해양 스포츠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는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골프 마니아들에게는 1년 365일 그림처럼 펼쳐진 그린 위에서, 골프를 실컷 즐길 수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관광객들에게도 그럴진대, 하물며 이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에게 골프란, 특별한 것이 아닌 생활 체육과도 같은 일상적인 것이다.


특히나 이곳에 사는 한국 교민들에게 골프는, 중요한 친목과 사교 모임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 되기도 할 정도이다.

게다가 나이 먹은 후, 노년에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자 취미라고 하기에...

나 역시, 이곳에서의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골프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너무도 많이 보고 들어왔고, 실제로 세련된 골프웨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세트로 갖춰 입고, 공 좀 치는 아줌마가 돼 보려고 여러 차례 노력도 해 왔던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운동 신경이나 감각이 없다고 생각지 않았었는데, 희한하게 골프라는 운동에는 내 몸뚱이가 잘 적응하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여러 명 또는 삼삼오오 모여서 해야 하는 그 분위기가, 소싯적 노래방도 혼자 가서 즐기곤 했던 내 취향에 맞지 않아서, 결국엔 웬만하면 다 한다는 사이판에서의 골프를 미련 없이 포기하고 접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나 장황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저 푸른 망망대해를 향해 드라이브 샷을 날리면 가슴이 뻥 뚫린다고 한다.

친정 식구들도 친구도 없는 작은 섬에서 연년생 두 거북이들을 키우며 살다 보니,

아무리 남편이 옆에서 도와주고 신경 써줘도 해결되지 않는 스트레스와 화가 점점 쌓여서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쯤, 나는 그 돌파구로 러닝을 선택했다.


처음 헬스장의 트레드밀 위에서 시작한 나의 러닝은 채 5분도 되지 않아 멈출 만큼 짧고 싱거웠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나의 러닝 지속시간은 점점 늘어서 나중엔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도 했다, 아 물론, 트레드밀 위에서 말이다.

수년 동안을 그저 헬스장 트레드밀 위에서만 이뤄지던 나의 러닝은, 2019년 초부터 그 무대가 야외로 바뀌면서 서서히 본격적인 로드 러너의 길로 들어섰던 것 같다.


두 아이를 출산하고 나이 40대 중반이 넘어서 다시 비치로드를 달렸을 때의 느낌은,

19년 전, 갓 서른 살을 넘긴 아가씨가 달릴 때와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 쭉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서만 러닝을 해오다 보니, 후덥지근하고 습한 야외에서의 러닝은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힘듦이 러닝의 매력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어두컴컴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다가 찬란한 일출을 맞이하는 기쁨도,

뉘엿뉘엿 넘어가는 진홍빛 일몰의 광경에 나도 모르게 뛰던 발걸음을 멈추던 황홀함도

모두 야외 러닝이 주는 수많은 매력들 중 극히 일부이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점점 러닝의 매력에 빠져갔고, 발톱이 몇 번씩 빠지고 진물이 나는데도

꾸역꾸역 러닝화를 신고 달리러 나갈 만큼 홀릭이 되어 버렸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비치로드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잡생각들과 아이들 걱정으로 가득 찼던 심란한 마음은 사라지고,

그저 내 거친 호흡과 몸안에서 들려오는 본능적인 소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달리는 동안 계속되었던 나 자신과의 긴 싸움이 끝나갈 무렵엔,

온몸은 흠뻑 젖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로 내 얼굴 전체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누구도 예상 못한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내 생애 첫 마라톤 도전이자 처녀 출전이었던 2020년 3월의 사이판 마라톤 대회 10킬로 러닝을 끝으로, 공식적인 오프라인 대회는 아직 없는 상태이지만...

Virtual Marathon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맞는 신개념의 대회가 많은 러너들을 위로하고 독려해 주고 있다.

혼자서 꾸준히 대회를 준비하고 참여해서 차곡차곡 메달을 모아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요즘,

나는 아직도 여전히 하프 마라톤이 힘들고 벅차서 고민 중에 있다 (풀코스는 언감생심, 내 평생에 꿈이나 꿔보려나 싶다).

저 휘황찬란한 메달들을 보라! 마라톤은 역시 메달이지!

타고난 체력이 그다지 강골이 아닌 나는, 스피드나 거리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저 천천히 살살 달리고 있다.

내 로망 중 하나가 백발을 휘날리며 나이 70이 넘어서까지 달리는 거라, 거북이처럼 살살~ 하지만 꾸준히 달리기로 한 것이다.


닥치고 러닝!이라는 말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강조할 만큼 러닝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는 나는,

사이판에서 마라톤을 하는 유일한 한국 아줌마란다.

얼마 전 가입한 이곳 러닝 동호회 회원들이 말하길, 처음에 다들 내가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골프 치고 걷는 한국 여자들은 많이 봤어도 뛰는 아줌마는 처음 본다나.

그렇다, 나는 사이판에서 마라톤을 하는 유일한 한국 아줌마이자 두 거북이들의 엄마이다!

앞으로도 나의 도전과 레이스는 계속될 것이다, 쭈욱~!

한국 아줌마의 힘!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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