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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Aug 24. 2023

애들이 학교 갔다! Back To School!

길고 길었던 여름방학이 끝나다!

거의 3개월 만이다.

두 녀석들이 백팩을 메고 학교로 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말이다.

예정된 가족 여행 스케줄 때문에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친구들보다 일주일 먼저 방학을 맞이해서 그런가.

특히나 이번 여름 방학은 아주 지겹도록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방학은 아이들에게, 그 어느 해 보다 알차고 다양한 경험들과 여행 등으로 가득 찬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 방학은 너무 길었다.


5월 27일, 온 가족이 사이판을 출발하는 새벽 비행기에 설레는 몸과 마음을 싣고 인천 공항에 도착. 서울에 며칠간 머무른 후, 다시 13시간의 비행을 거쳐 로마에 도착.

미국에 계신 시댁 식구들과 로마에서 합류, 이태리, 스페인, 프랑스를 한 바퀴 도는 7박 8일간의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며칠 후, 남편은 생업을 위해 다시 사이판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섬촌닭들은 무려 한 달 반 동안을 서울에 더 머물며 신나는 여름 방학을 보냈었다.

그 기간 동안 녀석들은 이런저런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는 시간 없이 어찌나 타이트한 일정들의 연속이었는지, 나중엔 체력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던 내가 비명을 지를 지경이 되었다.

"엄마는 너무 힘들고 지친다, 얘들아, 제발 집에 가자~~~~! 엄만 정말로 집에 가고 싶다고!"


나이가 먹었다는 증거인지.

어딜 가든 빠르고 편리하며 눈이 돌아갈 만큼 싸고 좋은 물건들이 넘쳐나서, 솟아오르는 쇼핑본능을 억누르고 수시로 훅 들어오는 지름신을 관리하느라 힘들 지경일 만큼 한국은, 그중에서도 서울은, 작은 섬구석 아줌마에겐 천국 같은 곳이지만... 희한하게 어느 순간부턴가 한국 체류 2~3주쯤 지나가면 슬슬 심신이 피곤해지면서 볼 것 없고 갈곳 없이 온통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좁아터진 섬구석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늙어가는 에미와는 달리 그저 신나고 재밌어 죽겠다는 두 녀석들을 위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정말 최선을 다했다. 떠나는 날, 녀석들이 조금의 아쉬움이나 미련을 느끼지 않도록 삼 모녀가 참 부지런히 여기저기 헤집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한국에서 약 두 달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사이판으로 돌아온 게 7월 24일.

하지만 개학은 8월 22일.

한국에 있는 학생들이 여름 방학을 시작할 무렵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학생들이 다시 개학을 해서 등교할 때 까지도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방학 중이었다.

이러니 징글징글하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이젠 좀 학교에 가자, 응? 인간적으로 늬들도 양심이 있으면 이젠 슬슬 공부라는 것도 좀 해보고 말이지."

얼마나 오랫동안 실컷 재미난 시간들을 즐겼는지, '학교''학생'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못해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듯 화들짝 놀라는 녀석들...

너희들 아직 학생이라고!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정확히는, 엄마인 내가 바라던 시간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점심때쯤 부스스 일어나 아점을 먹고 간식도 챙겨 먹으며,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던 두 녀석이 학교에 갔다, 3개월 만에!


이제 나는

새벽 4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아직 캄캄한 새벽 바닷가 산책로를 10킬로 정도 달리고 집에 돌아온다.

달리는 도중에 서서히 주변이 밝아지면서 해가 뜨는 데, 그 시간, 그 장소에 내가 있다는 게 행복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집에 돌아와 후다닥 씻고 아이들 아침 식사와 점심 도시락을 준비한다.

오늘 아침 메뉴는 큰 녀석은 구운 감자 두 알과 사과, 우유. 작은 녀석은 참치 샌드위치와 애플, 밀크이다.

점심때 먹으라고 햄을 썰어 넣은 계란말이도 두툼하게 부쳐서 반찬통에 담고 이래저래 주방에서 바쁜 시간을 보낸다.

자, 이제 녀석들을 차에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줘야 한다. 능숙한 운전사 노릇은 물론이고 요즘 유행하는 케이팝이나 걸그룹 노래를 즐겨 듣는 녀석들의 취향에 맞춰 음악 선곡도 해준다.

다행히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무척이나 가까워서 출발하자마자 학교 도착이다.

녀석들과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오늘도 무사히 학교 생활 잘하라고 파이팅 넘치게 응원해 준 후 학교에 내려준다.


집에서 기다리는 건 이제 세 살이 돼가는 뚱냥이 두 마리뿐인데도, 마치 설레는 누군가를 몰래 만나러 가듯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바로 이거다, 이 분위기, 고요함, 적막감, 자유로움...

혼자 있을 땐 심지어 티브이나 음악도 틀지 않을 만큼 철저한 고요함을 좋아한다.

집안 청소나 정리가 돼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은 성향인지라, 후다닥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마치고 냥이들 빗질과 털관리까지 해 준후 드디어 벅찬 마음으로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준비를 한다.


옆집 윗집 누구네 엄마들이랑 만나 차 한잔하고 수다 떠는 일은 일 년 가야 한번 있을까 말까 할 만큼,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선호한다.

맛있는 커피와 과일, 삶은 달걀을 곁들인 아침을 느긋하게 즐기며 인터넷 서핑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써본다.

그러다가 피곤해지면 잠깐 침대에 눕는데, 그럴 땐 어김없이 냥이 두 마리가 침대 위로 점프해 올라와서 내 양쪽 겨드랑이를 차지하며 파고든다.

부드럽고 따스한 냥이들의 털을 느끼며 침대에서 같이 뒹굴거리는 맛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대단한 스케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 보기에 재미있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게는 눈물 나게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들... 그 시간과 고요함을 다시 찾았다.

나라를 되찾은 광복의 기쁨에 비할까.

그만큼이나, 애들이 학교로 돌아간 것은 내게 한숨을 돌리게 하고 자유를 찾은 느낌을 준다.

학교 다니면서 생길 이런저런 일들은 미리 앞서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 순간을 즐겨야 하니까 말이다.

Back to school에 관련된, 등교하는 자식들 앞에서 환호하며 열광하는 엄마들의 사진들을 보고 깊이 공감하면서 소중한 이 아침을 느긋하게 즐겨본다.

몇 시간 후엔 다시 아이들을 픽업하러 학교에 가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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