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라토너 거북 맘 Apr 01. 2024

냥이는 꼬리로 말한다.

시크한 냥이들의 표현법

"어라? 베리야, 너 왜 그래, 응?"

"이 녀석, 꼬리가 갑자기 왜 이러지?"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와중에도 문 밖에서 구슬픈 소리로 애원하듯 냥냥 거리는 녀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놓고 볼 일을 봐야만 하는 내게 다가와 계속 얼굴을 문지르고 비벼대던 삼색냥 베리 녀석의 꼬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도깨비방망이처럼 커졌다.

이건 냥이의 꼬리라기보다는 흡사 몸집 큰 너구리의 통통하고 뭉툭한 꼬리처럼 보인다.


삼색냥 베리 녀석이 우리 집 식구가 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태어난 지 한 달이나 채 됐을까 싶게, 마치 쓰다 버린 털실 뭉치처럼 작디작았던 녀석은,

어미를 잃고 우리 집 문 앞에서 하루종일 울고 있던 '고아냥'이었다.

이미 냥이 한 마리를 집 안에서 키우고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우리 집 현관으로 들어오려는 녀석을 차마 내 칠 수가 없어서 받아들이게 되고 그렇게 '업둥냥'이 된 녀석.


수많은 냥이들을 키워 봤지만, 이 녀석처럼 내게 유난히 집착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하루종일 따라다니며 징징대고 나만 바라보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녀석의 나에 대한 집착에 대해 올렸던 작품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라며~


https://brunch.co.kr/@4814db11e9814ef/56


남편이나 두 딸내미들, 그 누구에게도 애교를 부리지 않고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새침한 녀석이

유일하게 내게는 온갖 애정표현과 다양한 감정들을 쏟아낸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있는 그 순간에도 내 주변을 냥냥 대며 돌아다니고, 종아리며 발등에 녀석의 얼굴을 마구 문질러 대며 어서 자기를 쓰담쓰담하라는 녀석의 눈빛과 성화에, 손으로 턱 밑을 간지럽혀 주며 쓰다듬어 주자,

갑자기 꼬리가 거대한 먼지떨이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급기야 파르르 떨리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전까지는, 냥이의 꼬리가 부풀어 오르는 건 몹시 화가 나거나 겁을 먹었을 때라고만 알고 있었던 나의 냥이 상식이 깨지던 순간이었다.

마치 사람이 짜릿한 전율이나 흥분을 느끼듯, 녀석도 뭔가 속에서 찌르르한 걸 느끼는지

북실북실 하게 커진 꼬리를 바르르 떨며 더욱더 열정적으로 얼굴을 비벼댔다.

"베리야, 엄마가 그렇게 좋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나도 녀석을 더 열심히 쓰다듬어 줬다.


그때부터 우리 집 두 냥이 녀석들의 꼬리 언어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냐옹' 하는 냥이들의 울음소리 외에도 녀석들은 꼬리로 생각보다 많은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우리 집 두 쫄보 냥이 녀석들은 관리실에서 경비 아저씨가 방문하거나

집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인기척만 느껴도 꼬리를 땅에 질질 끌듯이 확 내리고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낮은 포복 자세로 후다닥 자기들만의 은신처로 몸을 숨겨 버린다.

 

한가로운 오후 시간, 녀석들의 털을 정성스럽게 빗겨주고 맛난 간식까지 주고 난 후에는,

온몸은 물론, 꼬리까지 축 늘어 뜨리고 가끔 꼬리로 바닥을 탁탁 치기도 하면서 자신들이 팔자 좋은 냥이들임을 확인하곤 한다.


냥이들 특유의 시크한 애정 표현을 때는 어김없이 주위를 슬슬 배회하면서, 도도하게 세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몸을 터치하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가 두 녀석이 장난을 치거나 뭔가 서로 티격태격할 때는, 온몸의 털을 세우고 꼬리도 같이 커지면서 경계 태세를 취하기도 한다.


'어라, 이건 또 무슨?...'


컴 앞에서 열심히 글을 쓰다가 문득 뒤통수가 따가워져서 돌아보니, 책상 아래에서 우리 삼색이 베리 양이 이러고 있다.

눈 부시게 하얗고 보들보들한 털 사이로 얼핏 얼핏 보이는 연한 핑크빛 뱃살을 드러내며 발라당 하늘을 보고 누워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이 녀석...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을까.

'웬만하면 좀 봐라 좀, 이 눔의 집사야!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네가 나를 안 봐?'

'어서 지금 당장 나를 쳐다보고, 냉큼 내려와서 나를 쓰다듬어주고 만족시키란 말이다!'

녀석의 눈빛만으로도 완벽하게 음성 지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집사로서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배우고 알아야 할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베리 녀석은 요즘 부쩍 저렇게 내 앞에서 발라당 허연 배를 보이며 자빠져서 뚫어져라 쳐다보곤 한다.

그러다가 마치 유격 훈련이라도 받듯, 좌로 굴러 우로 굴러를 몇 바퀴 시연하기도 한다.


이렇게나 유난한 냥이라니...

어쩔 땐 이 녀석이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집안을 어질러 놓거나 사고를 쳐서 혼이라도 내고 있으면, 살짝 기죽고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아몰랑 하며 눈을 찔끔 감아버리기도 하고...

빨리 녀석의 밥을 챙겨줘야 하는 데 바빠서 계속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숨도 못 쉬게 쫓아다니며 달달 볶거나 재촉을 하는데, 진짜 사람의 아이가 보채는 것과 똑같다.


두 딸내미들한테는 다소 엄하고 깐깐한 엄마이지만, 냥이들한테는 더없이 관대한 캣맘.

나름 머리 굵어지고 사춘기라고 가끔씩 복장 터지게 만드는 딸내미들보다, 때로는 맹목적으로 나만 바라보며 애정 표현을 하고 애교를 부리는 냥이 녀석들에게서 위안을 받을 때도 있다.


'흠... 저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냥이는 꼬리로 표현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꼬리를 숨기고 돌아앉아 궁둥이를 보이며 저러고 있는 건?

러브~~~!!

매혹적인 러브 쉐이프 궁둥이를 자랑하며 집사에 대한 무한 애정을 표현하는 우리 삼색냥 베리.

아프지 말고 오랫동안 엄마 곁에 있어줘야 한다, 알았지?

매거진의 이전글  털과의 전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