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라토너 거북 맘 Jul 29. 2024

무서운 여름 뜀박질

전마협 창단 23주년 기념 대전 마라톤 축제

금요일 오후, 대전행 고속버스.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 8시 30분, 대전 엑스포 다리 아래에서 열리는 10km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여행.

굳이~대전까지 내려가서 이 대회에 참가하려는 이유는?

첫째, 여성 장년부 20위 내에 들면 케이스까지 포함된 멋진 트로피를 주는데, 이 트로피가 무척이나 탐나서이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본 결과, 적어도 순위권 안에는 들겠다는 계산하에...)

두 번째는, 마라톤 비시즌에 속하는 이 시기에 참가할만한 레이스가 별로 없는지라...


전국 마라톤 협회 창단 23주년을 기념해서 열리는 이벤트.

축제에 참가하듯 설레는 마음과 더불어 주말을 온전히 나 홀로 즐겨보겠다는 생각에 들떠 가볍게 서울을 떠났다.

"엄마 또 뛰고 올게!" 아이들은 이런 엄마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지라, 어서 다녀오라며 등을 떠민다.

초저녁쯤 도착한 대전.

지인도 없고 익숙한 곳도 아니지만, 아무렴 어떤가. 혼자서도 아주 잘 노는 나에겐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해 둔 숙소를 찾느라 좀 헤매긴 했지만, 그 또한 재미있었다.

숙소는 인터넷으로 확인했던 것 이상으로 깨끗하고 조용했으며 가성비도 좋아서 아주 흡족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먹거리를 사 온 후, 숙소에서 나 혼자만의 만찬을 즐겼다.

메뉴는 컵 떡볶이, 김밥, 컵라면에 캔 맥주였지만, 티브이 드라마를 보며 혼자 그 많은 것들을 꾸역꾸역 다 먹는 신공을 선보이며 나만의 시간을 제대로 즐겼다. 이만하면 부러울 게 없다!


다음 날 아침.

확실히 어제 너무 많이 먹긴 했다. 여전히 더부룩한 속이 불편한 나머지 연신 트림을 해댔지만, 살짝 체기까지 느껴진다. '아, 이럴 땐 우리 신랑이 손을 따줘야 직빵인데...' 너무 미련하다 정말...

소화제까지 챙겨 먹고 살짝 몸을 푼 후, 대회장으로 향했다. 엑스포 다리를 건너며 셀카를 포함한 풍경 사진도 몇 장 찍고... 그 와중에도 할 건 다한다.

대회장 곳곳에서 웜업을 위해 몸을 풀거나 가볍게 조깅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이 보인다. 저 멀리 다리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대회 부스와 무대가 보이고 흥을 돋우기 위한 신나는 음악소리와 함께 사회자의 멘트도 들려온다. 러너들의 작은 축제가 맞는 듯하다.


하지만 행사 장소에 비해 1500명이라는 너무 많은 참가자들이 모인 듯했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날씨였다.

원래 일기예보 대로라면 비가 왔어야 했는데, 대신에 어마어마하게 습하고 무더웠으며 설상가상으로 바람 한 점 없이 해가 쨍쨍했다.

출발도 하기 전에 온몸은 이미 땀으로 젖다 못해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숨이 턱턱 막혔다.

게다가 좁고 울퉁불퉁, 상태가 엉망인 주로에는 너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달리느라 서로 부딪치기도 했으며 그늘도 없는 길 위에는 벌써부터 뜨거운 햇살이 잔인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와, 이거 장난 아니겠는데... 완주나 제대로 하려나...'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이번 대회는 최악의 날씨 덕분에 모든 참가자들을 제대로 한 방에 보내버렸다.

이렇게 많은 러너들이 레이스 도중 길바닥에 누워있는 걸 보는 대회는 처음이었다. 기진맥진해서 뛰길 포기하고 비틀비틀 힘없이 걷는 사람, 길가에 누워있는 사람, 얼마나 의식이 없고 힘들었는지 위험하게 주로 중간에 대자로 뻗어 있는 사람 등 정말 역대 최악의 상황이었다.

덕분에 앰뷸런스는 잠시도 쉴 틈 없이 계속 돌아다니며 더위 먹은 열사병 환자들을 실어 날랐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닌지라, 평소 10km 대회 때 보다 훨씬 힘든 레이스를 펼쳐야 했지만 다행히 큰 불상사 없이 무사완주를 했고, 운 좋게 순위권에 들어서 완주 메달과 함께 그토록 원했던 트로피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여름 무더위 속 뜀박질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지를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됐으며,

대회 이후 유튜브나 SNS에 올라오는 참가자들의 후기나 동영상들을 보니, 다들 이번 대회에서 아주 식겁을 한 듯 보였다.

여름철이 마라톤 대회 비시즌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터. 그리고 숲 속이나 산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이 여름철 달리기로 인기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2024년 여름, 한국에서의 섯 번째 레이스였던 대전 전마협 창단 23주년 기념 10km 대회.

아주 호되고 뜨거웠던 경험으로 기억될 듯하다.

역시 여름 뜀박질은 위험하고 무서운 거였다.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살살하자. 길게 오랫동안 달리고 싶다면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피레그는 아니었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