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갈대같이 흔들렸던 엄마의 첫 번째 종착지, 공동육아
애초에 육아 지향점 같은 건 없었다.
신랑과 나의 조합에서 천재가 태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저 건강하게 태어나서 본인의 앞가림을 하며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모든 엄마들이 갖고 있는 평범한 소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모나지도 않고
또 특별히 뒤떨어지지도 않은 중간의 삶.
그 속에 건강과 행복이 적당히 버무려지면 참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그 중간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평범하지 않은 것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남다른 엄마표 육아”를 이야기 하는 지적인 엄마들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
그녀들을 쫓아가지 않으면
‘우리 아이 큰일 나겠다’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미디어의 광고 때문이라고만 변명하기엔 부족하다.
그만큼 내가 흔들렸다는 증거이니.
쫓아서 해보다가 괜한 반항심이 들기도 했다.
“아니 나라고 못할 건 뭐람?
내가 만들면 ‘엄마표’ 놀이가 되는 거지!”
각종 놀이법들을 벤치마킹하기도 하고,
하루에 2번씩 온 집안을 뒤집으며
장난감 세팅을 새로 하면서 참 열심히도 육아를 했었다.
결과는? 나도 힘들고 아이의 호응도 없고!대실패!
이후에는 아이의 첫 번째 사회생활이
시작된다는 문화센터로 발길을 돌렸다.
엄마표가 부족하면 전문가의 힘을 빌려야지!
현란한 교구와 선생님의 말솜씨에 아이는
초기엔 흥미를 느끼는 듯 보였지만
아이가 흥미를 보이며 교구에 손을 뻗으려는 찰나,
다음으로 넘어가는 스피드한 커리큘럼에
‘이것도 아닌가’라며 망설였다.
때마침 문화센터를 함께 다니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하며
억지 웃음을 짓는 시간들에 나의 정신이 탈탈 털렸다.
문화센터도 몇번 다니다가 재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모든 걸 다 접고 나니 24시간의 시간이 너무나 느리게 갔다.
아이랑 대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인가.
백수처럼 한가로이 동네를 걸어 다녀보기도 하고
지하철 여행을 해보기도 했다.
어느 날은 여유로운 육아를 했고 또 어느 날은 심적으로,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기도 하며
하루하루가 지났다.
그러다 또래랑도 좀 부대끼면서
사회생활을 배워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은 마음으로 고민을 하다가
지역 카페에 가입을 했다.
카페에서 [**년생 친구 구해요] 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친구를 구한다니...
이렇게 아이러니한 말이 또 어디 있나 싶었다.
친구를 구한다고 피켓 걸고 돌아다니는 느낌이랄까.
골목길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던 문화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엄마가 만들어 준 친구와 놀아야 하는 건가 싶어서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쓸쓸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요즘 육아 트렌드가 또 이러하다면 한 번은 해봐야지.
(나는야, 열혈엄마)
나도 20대엔 각종 모임에 나가서 새로운 사람만나는 걸 즐겼는데,
이제는 아이 친구를 만들기 위한 엄마모임을 나가는 것이
꽤나 큰 도전이 되고 말았다.
정작 아이보다는 엄마의 언행과 옷차림,
사는 환경 등에 따라서 나눠질 수밖에 없는 아이 친구 모임.
혼자 지내는 게 속편하다는 많은 간증의 글들을 보았지만
그래도 똥인지 된장인지 내가 직접 해봐야 알지라는 심정으로
정성스럽게 댓글을 달았다.
[어머~우리 아이도 **년 생이예요 반가워요~]
멤버가 다 모였는지 단톡 방이 열렸다.
멋들어진 서로의 프로필 사진을 염탐하며
대충의 분위기를 살핀다.
모임 날짜가 정해졌다.
가지고 있는 옷 중 그나마 제일 “부티” 나는 것으로 장착하고
키즈 카페로 집결!
역시나 놀이 시설에 아이를 넣어두고
엄마들끼리 어색한 수다의 장으로 이어지는
이 모임은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엄마를 매번 찾는 아이 덕분에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이탈할 수 있었다.
(이럴 땐 효녀!)
모임에 다녀올 때마다 이불 킥하며
안 나가야지 싶다가도
내가 이렇게 집구석에 있으면
아이 사회성도 길러지지 않겠다 싶어서 나갔던 그 시절.
그 돈과 시간으로 아이랑 맛있는 음식이나 먹을 걸 싶었지만
돌이켜보니 그것 또한
나의 육아스타일을 알 수 있었던 경험이 되어주었다.
다행히 한두 명씩 어린이집 대기가 풀리면서
이제 못 만나겠다는 반가운 메시지들을 주고 받으며 단톡방도 서서히 문을 닫았다.
단톡 방을 나오던 날,
정말 목에 걸려있던 고구마 백 개가 쑥 내려가는 느낌!
문화센터도 별로, 친구 만들기 모임도 별로,
어린이집은 보내지도 않는 엄마.
줏대 없는 엄마의 시행착오에
아이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새삼 미안하다.
(그래도 이러면서 인생을 배우는 거란다.)
아이는 5살이 되어서야 첫 기관 생활을 시작했다.
제법 머리가 큰 지금,
본인은 왜 3,4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안 보냈냐고 투덜대지만.
(너 그때 너무 예민해서
근처에 친구가 오기만 해도 무서워서 울었거든!)
아이가 어린이집 갈 시기가 되면 그땐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육아의 지향점은 크게 없었지만,
공동육아에 대한 생각만큼은 확고했다.
구성원 모두가 의논해서 하나의
마을공동체를 꾸려나간다는 것이 꽤나 매력적이었다.
더구나 우리 아이는 외동이니
그곳에서 가족 같은 친구들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은가.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신청서를 내고 등원 결정을 하면서
치열하게 노는 공동육아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등원한 지 1년,
한 해의 생활을 마무리 하는 12월 행사 후
모든 부모가 밤늦게 이야기꽃을 피우던 날이었다.
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놀다가
나에게 뛰어와 귓가에 속삭였다
"엄마 나 너무 행복해"
아이의 상기된 표정과 목덜이에서 풍기던 땀냄새,
발그레 달아오른 두 볼.
‘너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만큼
행복하구나.
네가 행복하면 엄마는 다 괜찮아.’ 라고 생각했던
2017년 12월의 겨울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