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차까기의 기록
2018년. 어느 날 갑자기 학교 북카페에서 만난 <곤마리 씨, 우리집 좀 정리해주세요>을 계기로 미니멀에 눈을 뜬 지 6년. 그 동안 뭔가 변했긴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독서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되었고, 문구용품 구매도 줄었다. 하지만 크게 달라졌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 5월 초에 빌리고 계속 미뤄두던 주디스 러바인의 <굿바이 쇼핑>을 읽었다. 이 글은 1년 동안 1년 동안 생필품만 구매하면서 든 생각들을 담은 책이었다. 그리고 우리 방을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그리고 내 물건의 행태를 보고 열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도 미니멀을 지향하고 있지만, 미니멀이 습관이 된 사람들처럼 물건이 적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우린 겨울에 현재 이 집을 떠나 이사를 갈 예정이며, 그 동안 쌓인 종이가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객관적으로 따지면 학생치곤 물건이 많지도 않지만 여전히 필요없는 물건도 많이 보였다. 나는 내 물건들을 둘러보면서 선언했다. 물론 D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이 나를 이상하게 볼테니 속으로만.
'내일부터 1년 동안 아무 것도 안 사지 않을 거야!'
시작일 2024년 5월 26일
종료일 2025년 5월 25일
1년간 無소비 생활에 도전한다.
대망의 첫 날. 첫날에는 당연히 재고 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건 오후에 하기로 했다. 오전에는 당장 급한 과제부터 처리하기 위해 아침 8시에 D의 컴퓨터에 앉아 과제를 했으며, 중간에 아침을 먹으려고 했다. 그러다 들려오는 엄마의 말. 어제 우리 집 가스가 떨어졌다고 한다. 아침을 평소처럼 엄마님 수제 통밀빵+계란후라이+방울토마토로 먹으려고 했는데 계란후라이를 할 기회가 날아간 셈이다. 다행히 우리 집에는 전기렌지가 항상 구비되어 있으며(사용 빈도는 낮다), 그 전에 마지막 가스까지 쥐어짜내 계란후라이를 겨우 해냈다. 물론 당장 가스를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 며칠은 전기렌지로 살아야 했다.(추가 : 다음 날 바로 가스를 샀다고 한다)
13시 50분부터 해서 16시에 재고 조사 끝. 파악한 물건은 다음과 같다. 너무 많으니까(파악된 것만 A4 1/4 기준 10장 나온다) 줄여서 적어본다.
- 책 19권(대출한 책 8권, 내가 소장하는 책 11권)
- 문제집 3권(박물관학, 일본어, 한국사)
- 옛날 폰 : 내 폰이지만 D가 <검은방> 한다고 못 처분하게 한다
- 스티커 34종류
- 견출지 3종류
- A5 6공 다이어리 커버 3개
- 불렛저널 3개 : 내용은 디지털화시키고 처분 예정.
- 테이프 5개
- 마테 12개
- 떡메모지 12종류
- 포스트잇
- A5 다이어리 속지 90매
- 사무용 집게 13개
- 컵받침 3개
- 가위 2개
- 수정테이프 3개
- 자 2개
- 형광펜 9개
- 싸인펜 2개
- 지우개 9개 : 1개 빼고 전부 D가 산 미술용
- 펜 4개
- 인덱스 2개
- 연필 8자루
- 색연필 1개
- 네임펜 3개
- 3단 서랍 2개
- 2단 서랍 2개
- 북스탠드 4개
- 필통 3개
- 펀치 1개 : 핵심부분만 남아버린 펀치.
- 핀셋 1개
- 파우치 2개
- 포카 15장 : 놀랍지만 나는 책갈피 대용으로도 사용함.
- 엽서 23장
- 키링 6개
- 자석 8개
- 책갈피 2개
- 머리끈 7개 : 1개만 주구장창 쓰고 있음.
- 폰케이스 3개 : D와 같은 폰으로 바꿔서 생김.
- 연필깎이 2개 : 1개만 멀쩡함.
- 포스터 1개
- 액자 2개
- 목각인형 1개
- 건전지 6개
- 충전기선 12개
- 충전기 전원장치 5개
- 공책 20권
- L자 파일 22개
재고 파악 이후인 22시 30분. 자기 직전 D가 가방을 보다 학교 근처에서 또 받았다며 포스트잇 2개를 던져줬다. 다행히 접착제가 좋은 ㄹㅅ쪽이다. ㅇㅅ은 접착제 좀 신경써주지.
그 동안 한 과제 파일 정리 조금 하고, 사진 정리 조금 했다. 계속하면 좋지만 한꺼번에 다 하기 싫은 탓이다. 나는 이렇게 뭔가에 쉽게 질리는 편인 것 같다. 엄마가 해준 말도 있다. 넌 너무 물건에 쉽게 질려서 물건을 쉽게 버린다고. 좋아하는 음식만큼은 잘 질리지 않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소비단식일기>는 작년에 처음 읽어본 책이었는데, 덕분에 소비를 줄이는 노력을 했다. 다만, 그 때는 결국 실패했고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다시 읽는다.
읽으면서 몇 가지 원칙을 확립했다.
1) 필요한 곳에는 쓴다. 다만, 정말로 필요한 곳만.
나는 D와 집에 같이 있으면 게임 빼고 대부분 집중을 못하는 사람이다. D는 나와 정반대의 성격 소유자라 그녀와 같이 있으면 기본적으로 시끄럽고 정신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D가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는 도서관을 가는 편인데, 이때 버스비 사용은 적절한 소비다. 엄마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 소비다. 그러나 책 읽을 때 애용하는 인덱스는 필수템이 아니다. 만약 인덱스가 다 떨어지면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든 해결한다.
2) 나만 한다.
D는 나와 달리 소비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다. 나의 소비단식을 D에게 강요할 수 없다.
3) 물질적인 선물은 거부한다.
이전부터 기념일에 연연해 하지 않는 사람인데다 딱히 원하는 물건이 없어서 가족에게는 선물로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다.(친구는 없어서 이럴 일도 없다) 앞으로도 이렇게 기념일을 보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4)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만약 원칙에 어긋난 소비를 했더라도 반성하고 다음날부터 다시 재개한다. 진정한 실패는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오늘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돈과 빚을 한 번 살펴보았다.
1) 현금
18800원
2) 은행
농협 약 3만원
토스 약11만원
3) 빚
장학재단 대출금 약 600만원
계산해보니 갖고 있는 돈은 약 16원인데, 빚 때문에 실제 돈은 약 -600만원이 된다. 대출금은 우리 집이 가난해서 내가 취업할 때까지 이자가 붙지 않는 구조이긴 하지만 저 빚을 다 갚으려면 한참 멀었다. 미리미리 갚던가 해야겠다.
D가 빌린 책에 물을 묻히는 바람에 배상할 책을 대리구매하러 삼산에 가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읽을 것 같지 않은 책을 알라딘에 팔아 3,800원을 벌었고, 책장에는 책이 1권 줄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도, 밀리의 서재에 있는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책장의 책을 우선으로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후데코의 <사지 않는 생활>을 읽었다. 쓸데없는 물건을 사면 유지비, 회수 및 폐기비용, 일반 쓰레기 처리 비용, 행동의 제약, 죄책감과 열등감 등 다양한 금전적, 감정적인 대가가 따라 붙는다고 한다. 예전에 다른 책에서 한 말에 따르면 물건이 살 곳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있다. 즉, 단순한 삶이 여러 의미로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