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빵과 우유를 먹고 있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 길가의 편의점 테이블이었던가 아니면 테이블과 의자도 갖추지 못한 건물 외부의 어딘가에 그냥 걸터앉았던가. 눈은 약간 초점이 없다. 허공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피곤해서 그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왔는지 작업복 차림이다. 급하게 대충 때우는 식사인 것 같았다. 그 사람을 보고 나서 든 미묘한 감정은 꽤 오랫동안 그 남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슈퍼나 편의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유통기한이 긴, 비닐에 밀봉된 빵이 있다. 갓 구운 제과점 빵이 아니다. 그러한 빵과 200ml 우유의 조합이란 어떤 의미인가. 요즘은 음료가 다양해져서 '우유엔 빵'이란 공식이 잘 맞지 않지만 예전엔 그랬다. 빵을 먹을 땐 우유를 마시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래야 영양의 균형이 맞다고 교육받아왔다. 그러한 공식을 순순히 따르고 있는 조금은 나이 든 사람. 삶이 고단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음미할 시간 없이 넘기기 바쁜 식사. 그는 혹시 변변한 식당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시간도, 돈도 없어서 그렇게 한 끼를 때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에게 빵과 우유란 조금 뒤에 있을 활동에 대한 단순한 준비 같은 것이어서 차에 주유를 하듯 몸에 그럭저럭 쓸만한 무언가를 넣어 주는 것에 불과했을까. 주유를 하면서 기름의 품질을 따지지 않듯이 그저 먹어야 하니까 먹는 그런 것 말이다.
당신이 만약 3000원을 가지고 한 끼의 식사를 해야 한다면 무엇을 사겠는가? 요즘 가장 저렴한 빵도 1000원~1500원 정도는 할 것이다. 우유는 1000원 정도. 빵과 우유의 조합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영양소를 다 갖추고 있으면서 저렴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적당한 포만감도 준다. 2~3000원대에 살 수 있는 음식 중 몸에 안 좋은 걸 먹었다는 죄책감도 별로 없는 데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중적인 음식은 흔하지 않다. 김밥이나 컵라면 등도 있지만 왠지 빵과 우유의 순수하고 무해한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빵과 우유를 먹고 있는 그 남자를 보고 무언가를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빵과 우유라는 조합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였다. 최소한 내 몸을 막 다루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고 할까? 이 음식을 먹고 어떻게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의지, 지금은 비록 여유가 없고 힘들지만 그래도 내 삶을 꿋꿋하게 꾸려나가겠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너무 비약일까. 우유 산업의 마케팅에 길들여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먹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땅에 튼튼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살라고 등을 두드려주고 싶기도 하고, 어딘가 모르게 짠하기도 하지만 삶의 의지에 대한 숭고함이 함께 느껴진다.
여자가 버스 터미널 대합실 의자에서 조금은 초조한 모습으로 먹는 것, 아이가 혼자 먹는 한 끼 식사. 할머니가 없는 입맛에 그래도 꼭꼭 씹어 넘기려 애쓰는 것, 바쁠 텐데 이거라도 먹으라며 슬쩍 챙겨주는 손길에 있을법한 그것.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굳세게 지탱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