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를 극단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거의 여분의 물건을 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사용하는 것이 수명을 다할 때쯤 새로운 물건을 사는 식이다. 쇼핑의 주기가 너무 짧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들은 필요한 것이 별로 없으니 사야 할 물건도 별로 없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여분의 물건을 당연시 여긴다. 나 또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지만 아직 미니멀 라이프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고 여분의 물건을 두는 것을 마음 편해하고 좋아한다. 칫솔, 휴지, 식료품 등 생필품이나 옷, 속옷, 신발 등 의복에 관련된 것, 펜, 노트 등 학용품, 이불, 그릇, 수저 등 수많은 물건에 여분을 둔다. 필요한 순간에 그 물건을 바로 쓰지 못해서 일상에 지장이 생기는 상황이 싫다. 일종의 불안이나 강박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은 항상 예기치 못한 일의 연속이며 당연히 모든 일에 대비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의 일정 부분이라도 여유분의 물건으로 인해 막힘없이 부드럽게 흘러간다면 예고 없이 찾아오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마주할 때 조금은 덜 힘들고 더 머리가 맑은 상태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여분을 준비해놓는 일이 일상이 덜컹거리지 않고 흘러갈 수 있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건 맥시멀 라이프와 미니멀 라이프 중간에 어중간하게 낀 나의 생각일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분의 물건이 주는 안정감과 편리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분의 물건을 소유하는 것의 장단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분의 물건이란 어디까지나 곤란한 상황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너무 많은 여분의 물건들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물건 자체를 쌓아두는 것이 습관이나 목적이 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긴다. 너무 많은 여분의 물건 때문에 집을 늘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물건을 줄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여분의 물건들은 어느 정도 두는 것이 좋을까? 나는 물건이 다 떨어져 갈 때쯤 쇼핑을 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것이 왠지 불안하다. 필요한 양보다 조금 더 많이 사놓고 여유 있게 쓰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그 편이 시간과 돈도 절약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때로는 여분으로 샀던 물건을 다 쓰지 못했는데 필요가 없어져 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싫증이 나서 쓰기 싫지만 억지로 다 써야 했던 경험이 있었다. 또한 여분의 물건은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공간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 여분의 물건들이 있어도 괜찮지만 지금보다 더 작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면 여분의 물건들도 줄여야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나의 경우 모든 물건에 여분을 두는 것은 아니지만 소모품의 경우 대용량 제품을 사거나 여러 개를 한꺼번에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세제의 경우 6개월 전에 대용량 제품으로 4개를 한꺼번에 구매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1개 반 정도 분량을 사용했다. 그러면 아직도 1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세제의 경우 사용 기간이 길기 때문에 기준을 사용하는 기간에 맞추는 것이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년 치 정도를 비축해도 별 문제는 없지만 공간이 좁은 경우 하나만 사는 게 공간적으로 이득이다. 세제는 어느 마트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롤 휴지의 경우 소량으로 사면 비싸다. 4 롤, 6 롤짜리 소포장 제품도 있지만 일반 마트에서 잘 팔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사면 한 달에 몇 번이나 휴지를 사야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공간이 허락한다면 휴지 같은 건 30개들이를 사도 괜찮을 것이다. 소모품이더라도 교체 주기나 사용 기간을 잘 생각해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해야 할 만큼 많은 양을 구매하진 않아야 할 것 같다.
이불 같은 경우 부피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여분을 잘 비워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계절마다 덮는 이불이 다르고 세탁을 할 경우 여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원수 x(까는 이불+덮는 이불의 개수) x 두께에 따른 종류 x2(세탁 시 여분) 하다 보면 개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따라서 추운 계절엔 조금 얇은 이불을 겹쳐서 덮고, 종류를 어느 정도 통일하면 개수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불이란 게 아무리 통일성을 주려고 해도 들어온 시기에 따라 디자인도 다르고, 재질도 다르고, 두께도 다르다. 그래서 차라리 다 비우고 새로 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지금 가지고 있는 이불이 아까우니 선뜻 그럴 수가 없다. 이것이 이불 정리의 어려움이다. 하지만 잘 쓰지 않고 디자인이 안 어울리는 이불 위주로 정리해 나가다 보면 어느 정도 양이 줄어들 것이다.
옷의 경우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들 중에는 옷장 한 칸 정도의 공간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옷이 없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옷의 개수를 줄이는 것은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옷을 점차 줄여가되 옷장에서 몇 년 동안 소외되기만 한 옷은 없는지 가끔 살펴보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도 1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고 지나가는 옷들이 많다. 그런 옷들을 과감히 정리한다면 나의 옷장에도 여유가 생길 텐데 쉽지 않다.
주방용품 중 그릇과 수저는 여유분 없이 딱 식구 것만 구비하면 단출하고 좋겠지만 때로는 설거지를 바로 하기 힘들 때도 있고 손님이 올 경우도 있다. 그래서 너무 많이 줄이는 것은 비추이다. 내 기준으로 2-3인 정도가 손님으로 와도 가지고 있는 식기로 상을 차릴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좋은 것 같다. 텀블러는 계속 쓰던 것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자리만 차지하게 될 뿐이어서 과감한 정리가 필요하다. 컵은 많이 꺼내놓으면 (특히 아이들의 경우) 매번 새로운 컵을 쓰게 되어 설거지거리가 엄청나게 많아진다. 따라서 여유분을 갖고는 있되 각자 자신의 컵을 정해놓고 식구수만큼만 꺼내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신발도 여분이 좀 있다. 하지만 매일같이 신고 다니는 신발은 단 하나다. 운동화를 자주 신고 매일 비슷한 스타일로 옷을 입다 보니 신발도 다양한 디자인이 필요하지는 않다. 지금 신는 신발은 뒤축이 닳을 때까지 신었지만 다른 신발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이처럼 나에겐 신발도 여분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 중 하나이다. 자주 신는 신발의 종류는 한두 켤레 정도는 여분이 있어도 괜찮지만 그 이상이 되면 그저 신발장에서 세월만 보내다가 밑창의 고무가 삭아 갈라지거나 탄력을 잃고 인조가죽의 경우 표면이 쉽게 바스러져서 버리게 된다.
전자제품 중 여분을 두는 것은 노트북 컴퓨터이다. 가격에 상관없이 노트북 컴퓨터가 고장 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 사실을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고 여분의 노트북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스마트폰 액정 보호용 강화유리 등 소모품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여러 개를 사두어야 마음이 편하다. 전자기기의 충전 선도 예외다. 콘센트에서 충전기를 뽑아서 여기저기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너무 귀찮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 공간마다 충전선을 꽂아둔다. 그러면 충전선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나의 경우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것 만큼은 나의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각각의 라이프스타일이 있으니 일률적으로 어떤 기준을 정하기는 힘들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분은 없어도 불편하지만 너무 많아도 안된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분의 물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양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그래서 여분의 물건에 대해서도 계획이 있어야 한다. 물건이 공간을 점령하게 되면 그 공간은 창고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죽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공간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행동은 제약되고 일상은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해지게 된다. 홀가분하다는 느낌과도 점점 멀어져 갈 것이다. 따라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던지 그렇지 않던지 여분의 물건에 대해서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