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일이다. 평소 신뢰하던 두 친구가 있었다. 삼총사처럼 몰려다니면서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정말 다양한 인생을 나눴다. 그러다 왕래가 끊겼다. 일의 시작은 이렇다. 친구 A가 친구 B에 대한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았고, 나는 친구 B에 대해서 나의 시각을 밝혔다. 잘 풀리지 않는 친구 B의 상황을 두고 걱정하는 느낌도 강했고, 어떻게 보면 그간 가지고 있던 섭섭함을 토로하는 투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어쩌다 보니 친구 A의 입을 통해 친구 B의 귀에 들어갔다.
친구 B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런 말을 했냐?”라고 묻자, “그렇다”라고 얘기했다. 내가 어떤 감정으로 얘기했는지는 변명하지 않았다. 사실을 물으니 사실이 그렇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간 쌓아온 관계가 있었기에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말했을지는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 B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게 섭섭했던 나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친구 B와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친구 A에게도 그 말을 옮겼던 게 섭섭했던 나는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다행히 두 친구와는 다시 연락이 닿아 화해를 했지만, 이미 깨져버린 사이를 다시 예전처럼 붙여놓는다고 과거가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A와는 자주 만나서 얘기하고 있지만, 삼총사는 뭉치지 못했다. 정말 사소한 것부터였다. 내가 먼저 해명을 했다면, 그렇게까지 1년 동안 사이가 멀어지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단추의 첫 구멍이 잘못 채워졌던 것처럼, 처음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서 모든 게 망가졌다. 맞다. 항상 사소한 것에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된다.
2021년 방송된 JTBC <괴물>이 있다. 주인공은 이동식(신하균 분)과 한주원(여진구 분)이다. 두 사람은 만양파출소에서 경찰로 만나지만, 두 사람이 살아온 배경은 정말 다르다. 이동식은 20년 전 실종된 여동생 이유연(문주연 분)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쳐온 인물. 그 과정에서 용의자로 몰리기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또한 딸이 실종되고 나서는 부모님들도 연달아 충격에 사망하거나 정신을 놓아버리면서, 이른 나이에 혼자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한주원은 첫 등장부터 화려한 스포츠카를 타고 나타난다. 아버지는 차기 경찰청장의 유력한 후보에다가 돈까지 두둑하다.
이처럼 완벽한 한주원이 서울 본청이 아닌 한적한 만양 파출소로 내려온 이유가 있다. 바로 20년 전 만양에서 일어난 방주선 피살 사건이 자신이 수사하던 피살 사건과 굉장히 큰 연관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양 파출소로 온 한주원은 유력한 용의자로 이동식을 마음에 품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동식이 과거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동식은 뭔가 수상하다. 한주원을 단순히 의심 많은 사람이라고 치부하기에도 이동식은 뭔가 비밀이 많아 보인다.
이 드라마의 장르는 스릴러다. 다른 장르는 결말을 알려주더라도 스릴러는 절대 결말을 알려주면 안 된다. 시청자가 추리해 가는 과정과 작가가 드라마 속 이야기를 끌고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쫀쫀한 케미스트리가 바로 스릴러 드라마의 묘미다. 그래서 <괴물>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여기서 함구한다. 그러면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거냐고 묻는다면, ‘의심받는 이동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론, 이동식이 실제 범인인지 범인이 아닌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이동식이 어떻게 의심을 받기 시작하고, 그 의심이 시간이 지나 한주원에게까지 옮아가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동식의 과거는 이랬다. 여동생은 똑똑하고 예쁘기까지 한데, 이동식은 다방에서 제대로 치지도 못하는 기타나 띵가띵가 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던 한량이었다. 그러던 중 이동식이 자주 가던 다방의 종업원 방주선이 사망했다. 하필이면 현장에서는 이동식이 가지고 있던 기타 피크가 발견됐다. 이 시점에서 이동식의 여동생 이유연까지 실종됐다. 게다가 이유연은 손가락 끝마디가 다 잘려, 이동식의 집 앞에 전시가 됐다. 충격적인 사건 속에서 당시의 형사들은 이동식을 범인으로 확신하고, 그를 몰아세운다. 그렇게 수갑까지 차고 현장검증까지 해야 했던 이동식. 이후 그는 혐의 없음으로 풀려나지만, 세간의 좋지 않은 시선 속에서 이동식은 고향인 만양을 떠나야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여전히 의심은 불의 씨앗처럼 남아 한주원에게로 옮아갔다. 이제 한주원이 이동식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과거 이동식이 용의자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주변사람들이 이동식을 싸고도는 행세도 이상하다. 분명 이곳에는 비밀이 있다. 자신만 모르는 비밀. 그러니깐 이 비밀 때문이라도 이동식이 범인이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믿고 싶은 대로만 보는’ 한주원의 확증편향이 심해지게 만들었다. 원래 의심은 사소한 불신에서 시작돼 거대한 화마처럼 사람을 덮쳐버린다. 그리고 드라마 <괴물>은 이 사소한 불신이 어떻게 의심으로 커져가는지를 드라마 자체로서 보여준다. 단언하건대 1회를 보자마자 모두들 이런 시각을 가지게 될 거다. ‘OO이 범인 같은데.’라고. 그럼 이제 게임은 시작된다. 16회까지 당신은 자리에서 못 일어나게 될 것을 확신한다.
범죄심리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것인데,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에 처음으로 소개한 이론이다. 이론을 뒷받침하는 실험은 간단했다. 서민들이 다수 거주하는 뉴욕주의 브롱스와 부자들이 더 많이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중고차 두 대를 주차했다. 둘 다 보닛을 살짝 열어두었는데, 브롱스에 주차된 차는 24시간 만에 모든 부품을 도둑맞았고, 팰로앨토에 주차된 차는 5일 동안 아무 변화도 없었다. 이때 연구원들이 팰로앨토에 주차된 차 유리창을 깼다. 그러자 행인들이 달라붙어 함께 차를 부수기 시작했다. 이 연구를 발전시켜 윌슨과 켈링은 무질서의 방치가 지역 전체의 치안을 위협할 수 있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내게 됐다.
당장 실험해보고 싶은 욕망이 든다면, 굳이 자동차 하나를 준비해서 부수려 하지 않아도 된다. 길거리에 있는 담배꽁초만으로도 연구 조건은 충분하다. 만약 당신이 흡연자라고 생각해 보자. 흡연구역을 이리저리 찾다가 지친 당신은 두 개의 골목을 발견한다. 한 골목은 깨끗하게 정리가 된 곳이고, 또 한 골목은 이리저리 담배꽁초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당신의 발길은 담배꽁초가 있는 곳으로 향할 거다. 흡연자들이란, 누군가 담배를 피웠을 법한 곳에서 꼭 담배를 피우게 돼있다.
흡연자가 아니더라도 이미 연구 결과가 입증된 것들이 많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유독 쓰레기들이 많이 버려져있는 곳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면 고발조치할 것’이라는 경고 문구도 소용없이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곳이다. 그곳의 건너편에는 쓰레기통이 놓여있다고 치자. 당신은 당장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 어디에 버리겠는가. 아마 이미 쌓여있는 쓰레기 사이에 구겨 버릴 것이다. 이게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만약 길거리가 깨끗하다고 친다면, 당신은 쓰레기를 버리는 것에 양심을 가책을 느껴 쓰레기통까지 건너가 쓰레기를 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 쓰레기를 버려놓았기에, 당신은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나마 덜어버릴 수 있다.
세상은 그런 곳이다. 양심의 가책을 덜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순간의 틈만 보인다면, 인간은 언제든 꼿꼿하게 세워둔 양심을 구겨버리려 한다. 그래서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은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예방도 중요하지만, 사소한 문제가 발견된 즉시 시정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옷에 난 구멍을 기우는 것도 한순간이지만, 구멍이 더 크게 늘어나는 것도 한순간이다. 옷을 다 망가뜨리기 싫다면, 당장 옷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 바늘 도둑 소 도둑 된다고 하지 않나. 다 비슷한 맥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건 사소한 것부터다. 깨진 유리창 하나의 변화가,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 하나와 쓰레기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내가 친구 A와 친구 B에게 먼저 건네지 않은 화해와 해명처럼, 사소한 것이 한 관계를 바꿔 놨다. 한주원의 마음속에서 피어난 불신도 그랬다. 의심 하나가 계속된 의심을 만든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데, 의심도 티끌들이 모이면 완벽한 불신으로 돌아선다. 그리고 이제 믿음은 사라진다. 후에 첫 시작이 잘못된 오해였다는 것이 밝혀져도 상관이 없다. 첫 시작점을 잊어버리고 우리 마음속에는 의심과 불신만 가득 차게 된다. 친구들과 1년의 시간이 멀어져 있던 때도, 그랬다. 사소한 미움은 큰 미움으로 번져갔다.
모든 관계의 파탄과 범죄의 시작은 사소함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그 사소한 것들이 너무 작아서, 너무 보잘것없어서 쉽게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다. 만약 한주원이 의심을 품기 전, 이동식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면 그를 의심할 수 있었을까. 편견을 가지기 전, 그를 알았더라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이동식을 바라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의심의 물꼬를 틀고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기에, 점점 한주원은 확증편향의 늪으로 빠져든다. 시청자들 역시 자신이 생각한 용의자를 마음에 두고 <괴물>을 보기 시작하면, 그 용의자의 모든 의심되는 행동들을 캐치하는데 바빠 다른 인물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 그러면서 추리의 길을 잃게 된다.
항상 의심 없는 믿음은 의미가 없는 믿음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괴물>을 만나고 나서는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의심 없는 의심이라는 생각을 마음에 심었다. 타인을 의심하는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 것.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함몰되어 버리는 인생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목격했다. 친구 B가 나를 오롯이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나의 감정조차도, 그 반대를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오만함이었듯이 항상 모든 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봐야 한다. 그 사소한 발걸음이 사소한 실수들과 사소한 엇갈림을 빨리 다시 되돌릴 수 있게 하는 위대한 발걸음이 된다.
결국 사소함이 사소함을 바꾸고, 앞으로의 길을 바꾼다. 이제야 첫 단추를 제대로 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그 자신감에도 사소한 의심 하나만은 남겨둬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