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온다. 또 겨울도 온다. 매년 가을이 되면 ‘가을 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말은 살찌고 하늘은 높은데, 마음은 공허해진다는 거다. 쓸쓸하게 떨어지는 낙엽과 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가고 쌀쌀함이 오면서 외로움도 커진다. 쓸쓸함과 쌀쌀함. 시옷은 서로 붙어있을 때 오히려 외로운 것 같은 감정을 준다. 이렇게 외로움이 커질 때면, 우리는 늘 생명들의 생기가 요동치는 봄을 회상한다. 그때의 따뜻함을 다시 느낀다면 외로움과의 싸움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가을 탄다.’라는 말을 ‘봄을 기억하는 일’이라고 썼다.
봄은 항상 반갑다.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맞이한 봄의 시작. 겨울잠에서 많은 생명들이 눈을 뜨듯이 우리의 마음도 다시 온기를 되찾아가면서 긴긴 잠을 깨고 기지개를 편다. 그러면 꼭 마음이 붕 뜬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마음을 간질거리게 하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온다. 사랑에 빠질 것만 같고,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이 든다. 이제 심장에 쌓인 눈이 녹아내리면서,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온기가 가득하게 차오르면서 뜨거움으로 내달리기 직전, 우리는 5월을 맞는다.
1979년 가을, 유신의 심장이 총탄에 관통 당했다. 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그때, 더욱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하나회의 수장 전두환이 탱크를 밀고 서울로 향하면서부터였다. 그렇게 군권을 장악한 반란군은 ‘신군부’를 구축하면서 1980년을 열었다. 하지만 그때 민중들은 조금씩 봄을 찾아 나서기 위해 기지개를 폈다. 여기저기서 독재 정권을 끝내고 진정한 참정권을 얻기 위해 봉기하고 일어났다. 빠르게 뛰기 시작한 심장들의 봄. ‘서울의 봄’이었다.
그 시기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청춘들은 뜨겁게 사랑하기도 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자기 곁에 있는 연인, 가족, 친구들을 사랑했다. 어쩌면 그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 이의 힘을 키워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매캐한 최루탄의 연기 속에서도 그들은 살아갔다. 이 연기가 걷어지면 더욱 찬란하게 자신들을 비추게 해 줄 햇빛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먹은 청춘들의 이야기가 2021년 방송된 KBS 2TV <오월의 청춘> 속에 담겼다.
<오월의 청춘>은 1980년의 봄, 광주에서 만난 황희태(이도현 분)와 김명희(고민시 분)의 이야기를 그렸다. 황희태는 미혼모의 아들로 자랐지만, 그 편견을 깨부수기 위해 피 터지는 공부를 해 의대생이 된 청춘. 학생 시위대였던 친구 김경수(권영찬 분)의 치료를 도와준 이후에 학생 시위대의 비공식 주치의로 활동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황희태에게 새아버지가 생겼다. 하필이면 보안부대 대공수사과장이다. 학생 시위대를 돕는 새 아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황기남(오만석 분)이 바로 황희태의 새 아버지다.
김명희는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늘 고생만 하는 장녀의 삶을 살고 있었다. 광주 평화병원 응급실 간호사이기도 했던 김명희는 고되게 돈 벌어봤자 자기를 위해 모을 수도 없는 삶에 좌절했다. 대학에 가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었던 김명희는 광주 성당에서 우연하게 독일 의대 유학생에 선발되지만, 이 역시 비행기 삯을 구할 수 없어서 좌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김명희의 친구 이수련(금새록 분)이 달콤한 제안을 해온다. 자기 대신 맞선 자리에 나간다면 비행기 삯을 내주겠다는 것. 그러니깐 이게 황희태와 김명희가 만나게 되는 기제가 됐다.
주인공이 뒤바뀐 맞선 자리에서 황희태는 김명희에게 푹 빠진다. 황희태는 사실 김명희가 부잣집 딸도 아니고 이수련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황희태는 김명희에게 직진한다. 황희태가 왜 이토록 김명희에게 푹 빠지게 됐냐고? 맞선 자리에 가던 중 사고가 난 한 아이를 치료해주는 김명희의 모습에서 황희태는 직감했다. 자기는 저 여자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황희태는 계속 멀어지려 하는 김명희를 붙잡는다. 김명희는 이제 한 달 후면, 자신이 독일로 떠나야하는 것을 알기에 황희태를 밀어내려는 거였다. 하지만 황희태는 ‘거리가 무슨 문제인가.’ 싶었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런 황희태의 마음을 확인한 김명희는 그를 받아들인다. 평생 공부 밖에 모르고 살았던 황희태의 마음에도, 돈 밖에 모르고 살았던 김명희의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다. 청춘과 봄이 만나자 찬란한 로맨스가 펼쳐졌다. 나 역시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꽤 간질거렸다. 저런 사랑을 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었다. 헌데 그러면서도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이들에게 닥쳐올 시련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바로 그해 5월, 광주에서 벌어졌던, 그리고 곧 이들에게 벌어질 일이 무엇인가를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들의 사랑이 깊어지던 때, 광주에서는 서울의 봄처럼 많은 사람들이 머리에 띠를 둘러매고 민주화를 외쳤다. 대학생들이 주축이 됐고, 그 속에는 중학생, 고등학생, 직장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겁이 없었다. 아니 겁이 있었다고 해도, ‘죽지는 않는다.’라고 생각했기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몰랐을 거다. 그 목소리가 총성에 묻히게 될 줄은.
황희태는 새아버지 황기남의 반대에 결국 김명희와 이별을 맞이한다. 황기남은 부잣집 딸인 이수련을 등에 업으면 자기가 가지게 될 명예와 재력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명희의 독일 유학도 무산시켰으며, 이수련의 아버지까지 협박하면서 결국 황희태를 이수련과 결혼시키고자 한다. 그렇게 광주에서 떠밀려 이수련과 함께 서울에 오게 된 황희태는 계속해서 김명희를 떠올린다. 광주에 홀로 남은 김명희 역시 마찬가지다. 황희태를 잊지 못하고 메말라가는 자신을 보면서 김명희는 ‘호감’이 ‘사랑’이 됐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광주에서 재회한다. 1980년 5월 17일의 일이었다.
참혹한 5월 18일부터의 일련의 사태 속, 김명희와 황희태는 성당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다. 아스팔트에서도 꽃은 피어오른다고, 활짝 피어오른 두 사람의 사랑을 더 이상 그 누구도 떨어뜨릴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결혼의 행복도 잠시, 김명희는 동생과 함께 광주를 탈출하려고 했던 자신의 아버지가 결국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곧장 장례식장으로 간다.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하고 망연자실해 있던 그때, 김명희는 자신의 어린 동생 김명수(조이현 분)이 홀로 나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김명희와 황희태는 김명수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때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어디로 김명수가 향했는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황희태와 김명희는 잠시 갈라진 길에서 흩어지기로 한다. 그리고 그 갈라짐은 ‘잠시’가 아닌 ‘영원’이 됐다. 그렇게 1980년의 봄은 여름을 맞이하기도 전에, 끝나야 했다. ‘서울의 봄’도 끝이 났다. 정권을 완전히 잡은 신군부는 ‘유신’이 사라진 자리에 ‘제5공화국’의 깃발을 꽂았다. 다시 삼엄한 군부 정권의 겨울이 시작됐다.
황희태와 김명희가 결혼식을 올리던 때, 김명희는 남몰래 결혼 기도문을 썼다. 김명희는 “주님 예기치 못하게 우리가 서로의 손을 놓치게 되더라도, 그 슬픔에 남은 이의 삶이 잠기지 않게 하소서. 혼자되어 흘린 눈물이 목 밑까지 차올라도, 그것에 가라앉지 않고 계속해서 삶을 헤엄쳐 나아갈 힘과 용기를 주소서.”라고 썼다. 황희태도 결혼 기도문을 썼다. “주님, 우리 앞에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어렵게 맞잡은 이 두 손 놓지 않고, 함께 이겨낼 수 있기를, 무엇보다도 더 힘든 시련은 명희씨 말고 저에게 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라고.
이 기도문처럼 갈림길에서 김명희와 헤어진 황희태는 홀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더 힘든 시련은 김명희가 아닌 자신이 받고자 했는데, 김명희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그래서 황희태는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김명희를 잊지 않았다. 실종 전단지를 뿌려가면서 김명희를 찾고자 했고, 더 이상 김명희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걸 실감할 때면 깊숙한 바다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슬픔에 가라앉지 않고 계속 삶을 헤엄쳐 나갔으면 한다는 김명희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죽음은 계속해서 황희태를 밀어냈다. 계속해서 삶을 헤엄쳐 나가라고, 황희태를 차가운 바닷물에서도 밀어냈다.
그렇게 수많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났다. 군홧발로 민중을 짓밟았던 신군부는 물러났고, 그토록 모두가 열망했던 민주화가 도래했다. 1988년의 일이었다. 또 그 이후로도 수많은 세월이 흘러 2021년이 됐다. 검은 머리의 청춘 황희태는 희끗한 머리카락을 가진 중년이 됐다. 하지만 중년의 황희태는 끊임없이 김명희를 그리워하고 기억한다. 그해 5월의 봄이 지나고 평생을 가을 타면서, 봄을 기억하면서 청춘은 이제 중년이 됐다. 2021년은 1980년에서 이미 41년의 시간이 흐른 뒤다. 하지만 그토록 그가 김명희를 그리워했던 건, 미결된 사랑 때문도 아니었고 그 사랑이 진정한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희태는 41년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김명희를 맞으며 이런 편지를 쓴다.
“참 오랜 시간을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로 살았습니다. 그 해 오월에 광주로 가지 않았더라면, 그 광주에서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갈림길에서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살지 않았을까 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명희씨가 돌아와 준 마흔한 번째의 오월을 맞고서야 이 모든 것이 나의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그 해 5월 광주로 내려가길 택했고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며 좀 더 힘든 시련은 당신이 아닌 내게 달라 매일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내가 죽고 당신이 살았더라면 내가 겪은 밀물을 고스란히 당신이 겪었겠지요. 남은 자의 삶을요. 그리하여 이제 와 깨닫습니다. 지나온 나의 날들은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음을.”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잊지 않은 뜨거운 사랑. 하지만 이 속에는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잊지 못한 아픔도 있다. 그게 5월의 광주였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해 5월을 기억한다. 그 속에는 찬란함도, 행복도, 사랑도 있으며 아픔도 슬픔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삶을 살면서 꼭 겪어야 하는 감정이지만, 그게 너무 강렬하고 처절한 감정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그래서 <오월의 청춘>은 그 처절함 속에 찬란함과 사랑을 담았다. 슬픔으로 살지 말고, 어떻게든 슬픔에서 헤엄쳐 나가기를 바란 마음이었다.
이 드라마가 종영하고 4개월이 지난 2021년 11월 23일, 당시 신군부의 수뇌였던 전두환이 사망했다. 어떤 사과도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매년 5월은 찾아왔다.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어떻게 또 그 시대를 돌아봐야 할까.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대지만, 돌아볼 수는 있다. 봄이 지나간 가을의 우리가 봄을 기억하듯이. 이제 또 봄이 올 거다. 또 5월이 올 거다. 하지만 기억하면서 나아가는 게 우리가 해야 할 필연의 몫이다. 황희태가 끝없이 삶에서 나아갔듯이. 그리고 그 황희태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앞으로 나아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