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정말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있다. 그게 정말 쪽팔린 일이라든가, 혹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분노가 되는 기억들이다. 과거였다면 이 기억들을 굳이 다시는 끄집어내지 않거나 발설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드라마로 내 삶들을 돌아보면서 나는 느꼈다. 그 시간들 모두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완성되어 있다는 걸. 지금도 지금의 시간을 살면서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짚고 넘어가야 할 기억이 있다. 정말 쪽팔리고, 이해되지 않는 시간. 내 깊고 깊은 곳에 박혀있어, 여전히 트라우마가 되어있는 폭력의 시간들이다.
1992년생인 나에게 폭력은 도처에 깔려있는 환경이었다. 특히 학교에서의 폭력은 더욱 그랬다. 그때는 학생이 학생을 때리는 일도 비일비재했지만, 선생이 학생을 때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굳이 ‘선생님’이라고 쓰지 않는 이유는 그 트라우마를 안긴 사람을 두고 존칭을 쓰기 싫기 때문도 크다. 우선 선생들에게 받았던 폭력들을 고백해 보자면 이렇다.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당시의 급식 체계란 ‘잔반이 나오지 않게 하자’가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래서 잔반을 남기는 사람이 있는지를 영양사가 일일이 검사했다. 하루는 급식에 ‘해파리냉채’가 나왔다. 어린 나이에 그 비주얼이 너무 마음에 들지도 않았거니와, 코를 톡 쏘는 겨자향이 싫어 잔반을 남겼다. 혹시나 억지로 먹게 시킬까 봐―실제로 잔반을 남기면 억지로 먹게 했기에―나는 국에다가 해파리냉채를 넣어 잔반을 버리러 갔다. 그 순간 나를 발견한 영양사에게서 날아온 건 폭언과 따귀 한 대(짝 소리는 아니었고, 뒤통수를 치려다 따귀를 맞았다)였다. 따귀를 맞은 나는 국에 비벼진 해파리냉채를 억지로 삼켜야 했다. 그 이후 나는 서른이 넘는 나이가 되도록 해파리냉채에 들어갔던 주재료인 해파리와 오이를 먹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그걸 보면 자연스럽게 그때가 떠오른다.
중학생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음악 선생은 소위 ‘스파르타 교육’이라며, 자신이 이름이 부르면 고개를 옆으로 한 번 꺾고 자신을 바라보라는 걸 시켰다.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빠릿빠릿해야 한다”라며, 굳이 눈썹이 휘날려야 한다고 고개를 옆으로 한 번 꺾으라는 거였다. 그러다 실수하면 엎드려뻗쳐다. 그리고 다리를 벌린다. 다리 사이로 회초리가 날아든다. 고환을 ‘불알’이라고 부르기도 해서 ‘알치기’라는 게 그 체벌의 이름이었다. 이 외에도 한 국어 선생은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그 무릎을 45도 각도로 벌린 다음에 이마를 책상에 박고 있으란 체벌도 시켰다. 그러고 있다 보면 호흡이 곤란해지고, 실제로 호흡이 부족해진 나머지 정신을 잃고 책상에서 떨어진 친구도 있었다. 여전히 그 순간이 생생하게 눈앞에서 그려진다.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한 역사 선생은 소위 ‘별 모으기 체벌’이라는 걸 진행했다. 형식이란 이렇다. 잘못을 하면 각 반을 돌아다니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다른 선생에게 체벌을 당한 뒤 이마에 별을 새겨서 오라는 거였다. 별 다섯 개를 모아서 반으로 돌아오면 체벌이 끝난다. 별을 새기면서 폭력을 가한 선생들은 재밌다고 히죽이며 웃었다. 과연 한 사람의 수치심이 그렇게 재밌는 것일까.
동급생에게 얻어맞은 기억도 있다. 중학생 시절 학원을 다니던 때였는데, 한 힘센 친구가 억지로 오락실을 가자고 했다. 공부를 하던 나는 오락실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온 그 친구에게 그대로 얻어 쳐 맞았다. 한 번씩 SNS로 그 친구의 얼굴을 볼 때가 있다. 그도 나도 웃으면서 각자 잘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그때 얻어맞은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내가 도대체 왜 맞아야 했는지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학원을 그만뒀다. 혼자 공부하는 것도 편했거니와 굳이 부모님 돈 내고 가는 학원에서 얻어맞아야 했던 이유를 못 찾았었다. 누군가에게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으면서 생기는 건, 다시는 맞지 않아야겠다는 비굴함 밖에 없었다. 그 비굴함을 나는 참지 못했다.
이외에도 정말 다양하게 얻어맞았다. 그러면서 굳이 나는 맞서 싸우지는 않았다. 주먹다짐을 했던 건 중학교 시절 단 한 번이었다. 말싸움이 심해져 함께 다퉜고, 그때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이후로 폭력을 쓰는 인간이 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얻어 쳐 맞을 때도 반항을 하지 않았다. 내가 폭력을 당해봤기에, 주먹 밖에 쓰지 못하는 놈과 주먹을 안 써도 자존심 지키는 내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게 나의 대항이었다. 하지만 안다. 이것도 주먹 쓴다는 사람한테는 알량한 비굴함이라는 걸. 그래서 폭력 앞에서 맞는 사람이 하는 말은 변명 밖에 되지 않는다. 그게 자존심이라던가, 신념이라 할지라도.
2022년 공개됐던 티빙 <돼지의 왕>은 폭력의 트라우마 속에 잠식된 한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20년 전, 학교 폭력을 당했던 황경민(김동욱 분)은 그 기억을 절대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겨우겨우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성인이 되어서는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서 가정까지 꾸리고 행복하게 삶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이겨내지 못하고 꽁꽁 숨겨둔 트라우마는 언젠가 폭발하게 되어있다. 황경민은 자신의 창고에서 과거와 관련된 사진을 보게 되고 다시 학폭의 트라우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힘든 상황을 지켜보던 아내가 힘들어하며 사망하자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향한 복수를 시작한다. 20년 전, 자신의 학창 시절 속 폭력의 주범들을 향해 칼을 들이민다.
그러면서 황경민은 지금은 형사가 된 학창 시절 동창 정종석(김성규 분)을 끌어들인다. 정종석도 황경민과 마찬가지로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학창 시절 그들을 구해준 이가 있었다. 바로 김철(최현진 분)이었다.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던 황경민과 정종석에게 유일하게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설 수 있음을 보여준 이가 김철이었다. 그러나 김철이 죽으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정종석과 황경민은 학폭에 반항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했던 존재가 사라지면서 처절한 패배주의에 물든다. 그런데 김철의 죽음 뒤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그래서 황경민은 김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정종석을 자신의 복수 게임에 참여시킨다. 과거 가해자들을 살해하고 난 뒤, 현장에 정종석의 이름을 남겨두는 방식이다. 어쩔 수 없이, 정종석은 범인인 황경민을 쫓기 위해 그의 복수 게임에 발을 들이게 된다.
황경민이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방식은 과거 자신이 당했던 방법 그대로다. 하지만 트라우마 속에서 더욱 커져버린 상처는 과거 방식대로만 복수하기에는 너무 곪았다. 이제 황경민은 그 방식에 더 악랄한 수법을 더해 가해자들을 죽여 나간다. 그 수위가 너무 높아서 글로 풀어내기도 거북하다. 하나의 방식만 거론해 보자면, 과거 자신의 성기에 라이터 불을 지지며 괴롭혔던 이에게는 성기를 자르는 방식의 복수다. <돼지의 왕>은 이런 복수의 순간들을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매회 유혈이 낭자하다.
복수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황경민은 이제 더 이상 폭력에 짓눌리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폭력을 향해서 더한 폭력으로 복수할 수 있는 ‘괴물’이 됐다. 과거 김철은 황경민에게 이렇게 말했다. “돼지로 살 건지, 개로 살 건지는 너희들의 판단이다”라고. 복종하는 개가 되지 말라는 일갈이었다. 그래서 평생을 개로 살 수밖에 없도록 폭력을 당했던 황경민은 스스로 돼지가 되고자 한다. 이왕이면 ‘돼지의 왕’이 되고자 한다. 폭력에 대항하는 건 오직 폭력밖에 없다는 게 황경민의 생각이었다.
이 복수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당연하다. 복수는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위일 뿐이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상대와 나는 다르다’라는 자존심까지 구겨버린다. 그래서 결국 상대보다 더한 ‘악의 존재’가 된 육신만 남을 뿐이다. 이미 복수를 하면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최고의 복수는 보란 듯이 잘 사는 거라고 했다. 물론, 내게 그렇게 큰 상처를 준 인물도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 번씩 어딘가가 아파온다. 배가 아픈 건 아니고, 저 깊숙한 기억 속 폭력을 당하고 있는 내가 아파오는 거다. 그래서 아픈 걸 포기하고, ‘너도 아프게 해 주겠다’라고 사람들은 복수를 결심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복수의 마음을 아득바득 품었던 때가 있었다. 언젠가 나를 때린 저 선생에게 똑같은 형벌이 가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계속 품었다. 하지만 죄와 형벌은 등가교환이 아니다. 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세상에 판을 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차라리 법으로 안 되면 ‘너 죽고 나 죽자’가 된다. 그래서 나는 나 죽기 싫어서 알량한 자존심일 수 있는 ‘나는 너 같은 놈은 안 된다’로 복수의 마음을 돌렸다. 그게 나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다.
하지만 이게 어느 누구에게나 최고의 복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린 영혼들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2011년, 대구광역시에 살던 당시 15세의 A군이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다. 그가 그 마음을 품고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의 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엘리베이터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훔치던 A군의 등을 그 누구도 토닥여주지 않았다. 혼자 꾹꾹 터져 나오는 눈물을 닦으면서 A군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내가 당했던 폭력들을 말하지 못하고 내 속에서 삭여야 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사회에서도 학교 폭력에 대한 문제를 계속해서 성토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보다 더 지난 지금, 세상은 달라졌을까. 여전히 <돼지의 왕> 속 황경민이 만들어지고, A군처럼 홀로 눈물 흘리고 있는 어린 영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가해자들은 더 악랄해져서는 육체적 폭력에다가 정신적 학대까지 자행한다. 가해자들의 부모들은 더하다. 오히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며 소송까지 불사한다. 내 자식 귀한 줄만 알고 남의 자식 귀한 줄은 모른다. 정작 자신이 그런 폭력의 피해자가 됐다면, 자신에게 소송을 걸어오는 가해자 부모에게 어떤 마음이 들까를 생각이라도 할까. 전혀 아닐 테니, 그런 짓을 하는 것이겠지.
<돼지의 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내게 폭력을 가했던 사람은 이 드라마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수많은 학교폭력 기사들이 쏟아지고, 학교폭력과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들이 쏟아지는데 그걸 보고 있기는 할까 생각했다. 그랬다면 찔리기라도 할까 싶다. 하지만 그 사람 생각할 만큼 내가 여유롭지는 않다. 찔리는 게 있다면 그나마 양심이라도 있는 거겠지 싶을 뿐이다. 하지만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잊고 사는 게 아니라 반성해야 한다. ‘어린 날의 치기’라고 술자리 안주처럼 웃어넘길 게 아니라, ‘내가 황경민 같은 괴물을 만들었을 수도 있겠구나’를 떠올려야 하는 거다. 그럼, 이제 발 쭉 펴고 잘 잘 수 있을까. 언젠가 당신이 만든 괴물이 당신을 옥죄어올 때가 분명히 온다.
맞다.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다. 그래서 언제나 트라우마의 몫은 피해자다. 가해자는 편하게 사는데, 피해자는 이렇게 ‘정신승리’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정의는 오겠지 하며, 그래도 복수는 안 되겠지 하며, 씁쓸한 마음만 곱씹어야 한다. 언제쯤 <돼지의 왕> 같은 드라마가 안 나올 수 있을까. 아니다. 적어도 가해자들이 보고 찝찝함이라도 느꼈으면 좋겠어서, <돼지의 왕> 같은 드라마가 필요하다. 계속 쏟아져 나와서 꼭 보게 해야 한다. 어쩌면 그게 내 유일하고도 옹졸하면서 가장 큰 복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