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애정하는 가수는 김광석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가 부른 <서른 즈음에>,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MP3 플레이어에 넣어놓고 귀가 물리도록 들었다.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감정이 물씬 담긴 노래를 부르는 걸 듣고 있다 보면 마음 어딘가에서 뭉클함이 솟아올랐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이 중학생 무렵이었으니, 어쩌면 드라마와 더불어 김광석은 나라는 인간의 삶을 형성하는 데에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그의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을 뽑으라면 그래서 늘 어렵다. 그가 김지하 시인의 시를 노랫말로 지은 <타는 목마름>도 굉장히 좋아하고, 쓸쓸한 정취로 부른 <거리에서>도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꼭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언젠가 그의 슈퍼콘서트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녹화가 된 날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1995년 6월 29일이었다. 김광석은 무대 중간에 “상식적이지 않은 것들이 상식화되어 가는 모습이 주변에 많다.”라며 “오늘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고 그런다.”라고 꽤 충격적인 소식을 담담하게 전했다. 지금처럼 정보가 빠르게 퍼지는 시기가 아니었으니, 콘서트 중간에 이것이 얼마나 큰 사고였는지는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한 김광석은 곧바로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불렀다. 노랫말은 이렇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애드벌룬 떠있건만/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 쉰다.”
상식이라는 게 있다. 자동차는 네 바퀴로 가야 하고,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야 한다. 하지만 그의 노래에서 자동차는 두 바퀴로 가고, 비행기는 잠수함처럼 물속으로 간다. 그는 그걸 두고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이라고 했다. 물론 상식을 뒤바꾸면서 일어나는 혁신도 있다. 물과 하늘에서 움직일 수 있는 수공양용 드론이라든가, 휴대전화로도 인터넷을 할 수 있다고 발표한 최초의 스마트폰 ‘아이폰’ 같은 것들. 또 책을 꼭 종이로 볼 필요가 있냐고 말하면서 등장한 전자책, 손목시계 모양으로 만든 통신기기인 스마트워치 등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만든 것들이 이제는 우리 삶에서 당연한 것들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말 비상식적인 게 상식화되어 가는 것들도 있다. 지금도 누군가는 지구가 구형이 아닌 평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영국이 섬이라는 걸 모르는 건 상식이 없는 건가’를 두고 논쟁을 펼치는 누리꾼들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당연하게 상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굳이 그걸 몰라도 되지 않냐는 반응들도 꽤 있었다. 참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같았다. 과거에는 지식이 부족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오히려 공부하려고 한 반면에, 요즘에는 ‘그걸 왜 굳이 알아야 해?’라고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말 아리송한 세상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와 비상식적인 이야기. 그럼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인물이 초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되는 이야기는 둘 중 어디에 속할까. 누군가는 ‘장애인도 변호사가 될 수 있다’라는 게 상식이라고, 누군가는 ‘장애인이 변호사가 되더라도 초대형 로펌은 무리’라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들은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것이라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할 거다. 대체 누가 상식적이고 비상식적일까. 누구의 생각이 옳고, 그를까. 상식과 비상식, 그 사이 어딘가에서 헤엄치는 고래 같은 변호사의 이야기, 바로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2022년 그야말로 초대형 히트를 쳤다. ENA 채널이 자리가 잡기도 전이었기에 첫 회 시청률은 0.9%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 2화에서 곧바로 두 배의 시청률인 1.8%를 기록하면서 급상승세를 보이더니, 종영 당시에는 17.5%의 시청률을 보이면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방영 당시에도 ‘우영우 신드롬’이라는 말이 따라올 정도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주목을 받았다. 극 중에서 등장한 사건들이 모티브를 따온 실제 사건들이 재조명받기도 했고,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가 앓고 있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다. 장애라는 한계를 뛰어넘은 우영우의 서사가 큰 감동을 선사했다는 평들이 이어졌다.
극 중 우영우는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릴 적 그의 아버지는 우영우가 보통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 사회성이 많이 부족하고 의사소통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던 것. 하지만 우영우에게는 천부적인 재능도 있었는데, 바로 한 번 본 것은 절대 까먹지 않는 기억력이었다. 그런 우영우가 흥미를 느낀 건 ‘법’이었다. 그래서 우영우는 법을 공부한다. 한 번 본 건 절대 까먹지 않기에, 법전 외우는 건 금방이었다. 지극정성인 아버지 덕분에 우영우의 부족한 사회성도 많이 보완이 됐다. 덕분에 우영우는 서울대학교 로스쿨도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로스쿨 수석졸업생을 받아주는 로펌은 없었다. 우영우가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우영우는 국내 최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한바다에 입사하게 됐다. 모든 게 승승장구일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우영우를 바라보는 시선은 좋지 않다. 권민우(주종혁 분)는 우영우의 입사가 ‘낙하산 인사’라고 시기질투하고, 로스쿨 재학 당시에도 늘 우영우에 밀려 2등을 해야 했던 최수연(하윤경 분)도 우영우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다. 하지만 ‘우당탕탕’ 우영우는 좌절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가 만난 한바다의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강기영 분)은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더라도,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우영우의 가능성을 발견해 줬다. 또한 송무팀 직원 이준호(강태오 분)도 우영우를 적극 지원해 주면서 날개를 달아준다.
덕분에 우영우는 자신의 남다른 기억력을 활용해 사건들을 풀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우영우를 탐탁지 않게 바라봤던 최수연도 우영우의 든든한 우군으로 변모한다. 그러면서 ‘초보 변호사’였던 우영우는 조금씩 ‘진정한 변호사의 길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질문하면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해 나간다. 의뢰인들도 처음에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를 바라보면서 신뢰하지 않지만, 점점 그가 자신들을 위해 노력하는 걸 알고는 마음을 열어간다. 마음을 열어간다는 것부터가 우영우가 장애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제목처럼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우영우는 정말 이상하다. 회전문 하나도 통과하지 못해서 당황하기 일쑤이며, 다른 음식은 거의 먹지 않고 김밥만 먹는다. 재료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예상 밖의 식감이나 맛에 놀랄 필요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그리고 고래에 대한 집착과 비슷한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고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외우고 다닌다. 또한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고래의 삶과 비교해 풀이하기도 한다.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면 다소 ‘이상하다’라고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대개 평범한 것을 상식적이라고 얘기한다. 평범하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고,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게 상식적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 범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비상식적이라고 얘기한다. 사실 상식이라는 건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상식이라고 줄 긋고 이야기할 수 없다. 평범한 것도 그렇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평범한 것일까라는 건 인류의 역사의 시초부터 생겨난 의심일 거다.
인간은 인간끼리의 사회 속에서 부대끼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를 생각하고, ‘나는 왜 저 생각을 못 했지?’라고 자책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평균치를 맞춰간다. 그렇게 사회가 정해놓은 규범의 평균치 안으로 자신을 맞춰간다. 그걸 우린 ‘사회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에 맞춰가기 위해서는 내 몸이나 정신의 어떠한 부분들을 깎아나가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평범해지기 위해서 몸에 있는 커다란 점을 뺀다든가, 평범해지기 위해서 체형을 교정하는 과정 같은 것들. 또한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서 남들과 다른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들도 비슷하다.
그렇다고 상식을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너무 상식에만 갇혀있어서 보지 못하는 가치들도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그게 우영우다. 우영우는 정말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지만,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비상식적인 인간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정명석, 이준호처럼 그의 가치를 발견해 주는 사람을 발견하면서, 사회가 비상식적이라고 낙인찍었던 우영우도 상식적인 사람보다 더 뛰어난 가치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게 정말 현실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인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기 전, 스마트폰의 아이디어를 들은 사람들도 ‘그게 가능하겠어?’라고 얘기했다.
지금의 현대를 만든 정주영 회장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늘 “해봤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결국 해본 사람만이 이뤄냈다. 우영우를 이끌겠다고 생각한 정명석, 우영우와 함께 발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한 최수연, 우영우의 곁에 있겠다고 결심한 이준호,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을 도우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행동한 우영우까지. 이들은 모두가 안 된다고 했을 때, “된다”라고 얘기하면서 앞으로 나아갔고, 사회가 비상식적이라고 규정지은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비상식적인 것의 상식화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각각 다르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돌아보면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서 틀리다고 규정하는 것들도 많이 있다. 물론 영국이 섬이라는 걸 모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두고 비상식적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비상식적이다. 또 '그게 왜 상식이냐?'고 화를 내는 것도 비상식적이다. 서로 다른 걸 인정하고 그걸 서로 맞춰가는 게 상식적인 거다. 모른다면 배우고 알려주는 게 상식적이다. 김광석의 노래에서 등장한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가 이상할 수 있지만,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는 또 이상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지금의 세상 아닌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세상에 맞춰가지 않아도 신념만 가지고 나아간다면 언젠가 세상을 바꿔나갈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물론 옳은 신념과 그른 신념을 구분해 낼 능력도 필요하다. 상식을 뒤엎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상식을 뒤엎어서 혼란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자신이 비상식적이라고 느끼는 걸 상식화시키는 거다. 그렇게만 된다면 또 다른 삼풍백화점 비극과 또 다른 우영우들의 슬픔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