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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있나요?, <미씽>(2020)

by 안태현
“못 다했던 행복들을 다시 만나서 공유하고 싶어.”


2019년, 한 실종 아동의 부친을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실종 아동의 이름은 최준원, 부친의 이름은 최용진씨다. 2000년 4월 4일 오후 3시30분쯤 서울 중랑구 망우1동 아파트 놀이터에 놀러 나간 뒤, 최준원 양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실종당시에 만 4세였으니, 내가 부친을 만났을 당시 만 23세가 됐었을 그녀의 소식은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3년 2월에도, 여전히 최용진씨는 최준원 양을 찾고 있다. 그때 당시 최용진씨가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내게 남겼는데, 그게 바로 첫 문장으로 쓴 저 말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그때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쓰고 있는 이유는 어떻게든 최준원 양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꼭 부친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다.


실종 아동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난 뒤, 실종과 관련된 꽤 많은 자료들을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그 기간 동안 찾아본 기사 중에서는 최근 5년간(2019년 기준) 실종 신고 이후 행방을 찾지 못한 사람이 4614명에 달한다고 했다. 이 기간 동안 접수된 실종신고 건수만 총 45만 8368건으로, 성인 대상의 신고가 29만 3784건, 아동이 8만 3928건, 치매환자 4만 4835건, 지적장애인 3만 5822건이었다. 실종 접수 후에 숨진 채 발견된 사례는 5292건이었다. 사망자와 실종 신고 후 미해결 사례까지 포함하면 5년 사이에 9906명이 가족과 이별을 하게 됐다는 거였다.


숫자에는 그들의 사연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규모는 파악할 수 있지만, 그들의 삶과 그들의 슬픔이 담길 수는 없다. 나 역시 이들의 모든 인생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간직하면서 꾹꾹 키보드를 누른다.


지금도 도심 한복판에는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내건 현수막, 실종아동을 찾기 위한 캠페인 전단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사람들은 무심하게 그것들을 바라보지만, 20년 넘게 실종된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본 후로, 나는 혹시나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사진들을 들여다보게 됐다. 혹시 오늘 내가 지나치는 사람 중에서 그 사진 속 사람과 비슷한 인물이 없지 않을까하는 마음도 가져봤다. 또한 최준원 양의 부친 최용진씨가 내게 전해준 최준원 양의 얼굴이 박힌 명함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누군가의 사소한 관심이 기적을 만든다고 하지 않나. 실종됐던 아동이 자신의 가족을 찾아 만났던 기적 같은 사례들도 있었기에, 혹시나 그 기적에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가졌었다. 기다림이 얼마나 혹독한 고통과 슬픔을 가져다주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다림의 마음이 모인 드라마가 2020년 방송된 OCN <미씽: 그들이 있었다>였다. 지금부터는 <미씽>이라고 쓸 이 드라마는 실종자들을 찾아나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심에는 김욱(고수 분)과 장판석(허준호 분)이 있는데, 이들의 특별한 점이라면 영혼을 볼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이들이 볼 수 있는 영혼은 바로 실종자들의 영혼. 오래 전 사망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이 모인 두온마을에 이 두 사람이 흘러들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전체 극을 채운다.

4353057.jpg OCN <미씽: 그들이 있었다>

김욱이라고 처음부터 실종자들을 찾아나서는 사명감을 가진 건 아니었다. 생계형 사기꾼인 그는 불의를 보면 못 참지만, 그걸 사기 치면서 응징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사기로 벌어들이는 돈은 그 정의의 보상이라고 치자. 하여튼 사기를 거하게 치고 다닌 덕분에 김욱은 조폭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어떻게든 자신의 목숨을 사기의 대가로 받아내려고 하는 조폭들을 피해 달아나던 김욱은 절벽에서 떨어지게 되는데, 그게 김욱의 인생에 변화를 줬다. 바로 실종자들의 영혼이 모여 사는 두온마을에 들어가게 된 것.


그곳에는 오래 전부터 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던 토마스 차(송건희 분), 김현미(강말금 분), 박영호(이주원 분), 박범수(안동엽 분), 최미자(박혜진 분) 등이 살고 있다. 여느 시골 마을과 다름없는 곳. 하지만 산 자의 몸으로 이 마을에 발을 들인 김욱은 자신이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왜 자신이 영혼을 봐야하는지도 몰라 우왕좌왕한다. 그런 때에 김욱은 이곳에서 살아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장판석이었다.


장판석은 오래 전부터 두온마을과 바깥세상의 교두보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15년 전부터였는데, 그의 사연이란 이렇다. 실종된 딸 현지를 애타게 찾다가 두온마을로 발을 들이게 된 것. 이때 그는 두온마을의 주민들이 아직 시체를 찾지 못해 이곳에 발이 묶인 실종자들의 영혼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이후, 장판석은 두온마을의 다수 주민들에게 자신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걸 숨기고 실종자들의 시신들을 찾아나서는 삶을 살고 있었다. 여전히 실종된 딸 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진 그였기에, 실종자들의 가족들이 품고 있을 애타는 감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실종된 이의 생사도 알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가족들은 장판석 덕분에 애타게 찾던 실종자를 찾게 된다. 그리고 시신이 발견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두온마을의 주민은 이제 정말 마음 편하게 두온마을을 떠날 수 있게 됐다. 승천의 개념이라고 보면 편하겠다.


장판석은 실종된 딸을 찾다가 두온마을에 오게 됐다지만, 김욱은 왜 두온마을에 오게 됐고, 실종자들의 영혼을 볼 수 있게 된 걸까. 그건 그 역시 실종자의 가족이었으며, 오래 전부터 애타게 실종자를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것이 중반부에 드러난다. 이 이야기가 그려질 때는 정말 눈물이 자연스럽게 흘렀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건 그런 문제였다. 어딘가에서 무얼 하는지 알고 기다리는 것은 버틸 수 있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기다려야 하는 건 엄청난 괴로움이다. 미결된 그리움과 진행형의 기다림이 합쳐지면 차가운 불이 켜져 마음을 타들어가게 한다지 않나. 차가운 불에 덴 상처는 어떻게 치료할 방법도 없다. 그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만을 바라고 바라야 할 뿐이다.


<미씽>은 김욱과 장판석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두온마을에 사는 실종 영혼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그린다. 물론, 이 사연이 지금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실종자들의 사연을 대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숫자로 말해지는 사례 뒤에 숨겨진 삶의 이야기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기에는 충분했다. 이런 사연들에서 특히 내 마음을 동하게 했던 건 장미(이주명 분)의 사연이었다.

catjjj.jpg OCN <미씽: 그들이 있었다>

장미는 생전 유흥업소에서 일하다가 실종된 인물. 죽은 후 아무도 찾지 않다가 실종 1년 만에야 업소 매니저가 신고하면서 그가 실종됐다는 걸 사회가 알게 됐다. 사회라고는 하지만 경찰뿐이다. 슬프게도 그를 기다리는 가족은 없었다. 죽은 뒤에 두온마을에 들어온 장미는 처음으로 자신을 막 다루지도 않고, 가족처럼 대하는 두온마을 사람들과 사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남자친구가 자신을 살해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두온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 남자친구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시체가 발견이라도 된다면, 이 두온마을을 떠나야 하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장미에게 토마스와 김현미가 건네는 말은 이랬다. 두온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결국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라는 것과, 그렇기에 언젠가 마음 붙인 이들과도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 이 말에 마음을 다잡은 장미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자기를 죽인 범인이라는 걸 김욱과 장판석에게 알리게 된다.


그렇게 장미의 전 남자친구(남자친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범죄자)가 잡히게 되고, 장미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렇게 장미는 정들었던 두온마을의 가족 같은 주민들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을 알고 있을 장미는 모든 것을 정리하는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장미는 자신이 직접 기른 장미꽃을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웃으면서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밝히고 두온마을을 떠난다.


정든 모든 것은 결국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이야기와 그것을 알기에 준비할 수 있는 이별은 내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 이별도 있음을 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는 것처럼. 모두들 무한한 영원을 꿈꾸지만, 세상에 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끝이 없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나. 끝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 그것을 이별이 오기 전 하는 준비라고 본다. 이 준비란 최선을 다하는 거다. 이별을 했을 때, 그 대상과의 마지막 안녕이 너무 슬프지 않도록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그와의 순간에 집중하는 것. 이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에서 우리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일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종은 준비된 이별이 아니다. 갑자기 세상과 이별해 두온마을로 오게 되는 것처럼, 정말 ‘너무나’ 갑작스럽다. 최선의 삶을 살기도 전에 박탈당하는 건, 억울하다. 실종자의 가족들은 실종자와 함께 쌓고 싶은 추억도 많았을 것이고, 함께 이어가야 할 삶에 대해서도 생각했을 터다. 그러나 그 추억을 쌓기도 전에 준비되지 못한 생이별을 맞아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추억을 다시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마음을 품고, 여전히 실종자들을 찾고 있다. 누군가는 정말 못된 목소리로 “이제 그만 찾아야 하지 않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위로라고 하는 말일 수 있지만, 나는 그것보다 가슴에 못 박는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박탈당한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어떻게 그만둘 수 있겠나. 삶을 되찾기 위한 과정을 멈추라는 말은, 삶을 그만두라는 말과 똑같다고 본다.


생사라도 알고 싶다는 마음은 그래서 더욱 아프다. 이별했지만, 정말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음. 살았는지 죽었는지라도 안다면, 알지 못해서 전전긍긍하지는 않을 터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다행이고, 만약 생에서 다시 못 만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 ‘나는 여전히 너를 잊지 않았어.’라는 마음이라도 전하고 싶은 절절함. 이러한 슬픔, 괴로움, 처절함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감정들이 남은 자들이 겪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미씽>은 이런 마음들을 세심하게 어루만진다. 그러면서 실종자들의 가족들에게 ‘어딘가에서 분명히 실종자들도 그리워하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거예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드라마는 우리에게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한다. 난 그 중에서 가장 큰 역할이 ‘희망’과 ‘위로’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지만, 드라마에서 이뤄지는 기적 같은 일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또 한편으로는 현실에서는 세밀하게 볼 수 없는 감정들을 영상과 세세한 이야기들로 보여주면서 ‘위로’를 전한다.


<미씽>은 언젠가 실종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전달하면서, 막연한 그리움을 막연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두온마을이라는 공간으로 위로를 만든다. 나 역시 <미씽>을 보면서 이 위로가 실종자들의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의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이 바람의 마음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또 다른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최준원 양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녀가 빠른 시일 내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실종자들이 다시 가족들을 만나 못 다했던 행복들을 공유했으면 한다. 안타까운 “보고 싶어.”라는 외침이, 언젠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하는 “보고 싶었어.”라는 말이 됐으면. 그리고 더 이상 준비되지 않은 이별들이 많아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품어본다.


-아동권리보장원 홈페이지에 방문하시면 실종아동에 대한 정보를 더욱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missingchild.or.kr/home/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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