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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지 Jan 13. 2023

레이스 스타트

난임 일기 5

임신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주변에 물어보면 그들 역시 생각보다 쉽게 되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계획도 않고도 잘만 생기길래 으레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고 영화는 영화였다.


한 달을 넘게 금주를 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자 우리 둘 다 처음의 강한 의지가 좀 꺾여버렸다. 

금주는 절주로 바꾸고 커피도 카페인은 하루 한 잔 정도는 마시는 걸로 타협을 봤다. 

간절할수록 더 안 생기고, 마음 놓고 있으면 생긴다고들 하니까.


비교적 여유로운 마음으로 임신 시도 두 번째 달. 

그날이 예정대로 시작되지 않길래 조금 기대했었는데 섣부른 기대였다.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한 줄을 봤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실망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소식은 없었다.



일찍 결혼한 친구 중에 비슷한 일을 겪은 친구가 있다. 

일 년 정도 신혼을 즐기다가 이제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다음 일 년 정도 임신 시도를 했는데 잘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친구의 건강 상태도 안 좋아졌다. 

부가 함께 본격적으로 몸 관리를 시작하면서 아이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시간이 흐른 후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지만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지 않았다고 했다. 

내 한 몸 돌보는 것도 이렇게 제대로 못하는데 아이는 무슨 아이. 

내 몸이나 잘 건사하자는 결론에 자연스레 다다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임신 시도를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듣는데 남 일 같지 않았다. 

충분히 우리 얘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도 이렇게 한 달, 두 달, 흘러가다 일 년, 이 년 지나면 자연스레 딩크 족이 되는 걸까? 

아니지. 친구 커플과 달리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므로 그냥 아이를 갖고 싶지만 못 갖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둘만 살게 된 부부가 되겠지. 

그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데.


한편으로는, 어차피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리고 나면 그냥 다 내려놓고 친구 커플처럼 둘만 꽁냥 거리며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가 있음으로 생길 수 있는 걱정은 없을 것이다. 

물론 아이가 있음으로 생길 수 있는 크나큰 행복도 없을 테지만.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혼자 생각했다. 

나도 딱 일 년만 노력해봐야겠다고. 

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한 모든 최선을 다해봐야겠다고. 

그 정도 시간이면 어떤 이유로든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


물론 몇 년씩 계속 노력하는 부부들도 있지만 감히 상상만 해봐도 그 삶이 너무 지옥 같을 것 같다. 

매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지 못하고 2주는 희망에 부풀고 2주는 절망하는 삶. 

몇 년 간 그걸 반복하다니. 난 도저히 자신이 없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이 사랑하는 일뿐이다. 

물론 건강 관리도 잘해야겠지. 

매 달 결과를 보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일종의 마라톤이라고 생각할 거다. 

천천히, 풍경을 보면서, 내 호흡대로 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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